김래호 작가
김래호 작가

구신과 사람과 넋과 목숨과 있는 것과 없는 것과 한줌 흙과 한점 살과 먼 넷조상과 먼 훗자손의 거룩한 아득한 슬픔을 담는 것 – 백석「목구」제3연

미국의 인류학자 마거릿 미드(1901-1978)는 “한민족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 사는 민족”이라고 규정했다. 우리 민족은 4대 방안 제사와 5대 이상의 시제를 통해 조상을 기리는 전통을 면면히 이어오고 있다. 그녀는 다른 종족과 차별되는 제례를 한인 공동체의 심리적 원형성으로 파악한 것이다. 여기에서 ’목구‘는 불변의 물증이다.

‘수원 백씨 정주 백촌’ 출신 백석(1912-1996)은 1940년 2월 『문장』 제14호에 「목구」를 발표했다. 그는 오산고보를 거쳐 일본 도쿄의 아오야마(靑山) 학원에서 영문학을 공부하고 귀국해 신문기자와 교사, 측량보조원, 소작농을 전전하면서도 시작을 멈추지 않았다. 당시 어느 문학동인이나 유파에 속하지 않았던 백시인은 북관의 토속방언을 시어로 한민족의 맛과 멋을 은성하게 구현했다. 그런 시편들은 박용철(1904-1938)의 평론으로 함축된다. 전반적으로 침식받고 있는 조선어에 대한 혼혈작용 앞에서 민족의 순수를 지키려는 의식적 반발의 표시-

그동안 돌비는 깨어지고 많은 은금보화는 땅에 묻히고 가마귀도 긴 족보를 이루었는 데 / 이리하야 또 아득한 새 녯날이 비롯하는 때 / 이제는 참으로 이기지 못할 슬픔 과 시름에 쫓겨 / 나는 나의 녯 한울로 땅으로- 나의 태반으로 돌아왔으나 // 이미 해는 늙고 달은 파리하고 바람은 미치고 보래구름만 혼자 넋 없이 떠도는데 – 백석「북방에서: 정현웅에게」제4 ,5연

마틴 하이덱거는 프리드리히 횔덜린의 시를 분석하면서 헌사했다. “역사라는 시간을 앞질러 가는 시의 본질을 건설한 시인 중의 시인”이라고 말이다. 가버린 신들과 다가올 신들 사이 그 궁핍한 시대를 살아야만 했던 백석- 어머니의 뱃속부터 하늘과 땅, 달마저 황잡해지고, 백성은 바람과 구름처럼 떠도는 신세가 된 모국. 하지만 절망보다 희망을, 오늘보다 내일을 노래한 그에게 민족적 “시인 중의 시인”이라는 상찬도 부족하리라.

사람은 사람과 자연에게서만 배우는 법. 전자는 입말과 글말, 후자는 24절기와 명절로 구현된다. 여기에서 태양계 그 천문의 운행을 전혀 모른다 해도 사는 데 불편함이 없다. 하지만 유전되지 않는 학습의 인문은 저마다 배우고 익혀야 사회생활을 할 수 있다. 나는 오래전부터 ‘편과 판, 평’을 통해 한뉘를 새겨왔다.

먼저 편은 웃음과 울음 그 바다에서 태어나고, 죽는 동안 영원히 내 편인 피붙이들 곧 직계 존비속을 비롯한 친척들이다. 혈연에서 시작해 학연과 지연 맺으며 나름 학력을 마치고 나아가는 게 판이다. 사회적 동물이라고 부르듯 무리를 짓지 않으면 어떤 판도 형성되지 않는 법. 마지막의 평은 바로 세간의 평가다. 세상에서 재물을 비롯한 유무형의 평판은 한 사람에게 중차대한 문제다. 이런 이행을 인류학 용어로 관혼상제나 통과의례로 부른다. 아무튼 이 ‘3판’에서 가장 알짬은 무엇인가? 궁리컨대 편에서 처음 익히는 말과 글이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는 명제가 참이라면 ‘존재는 언어의 집’도 지극히 온당하다. 일찍이 캐나다 출신 미국의 언론학자 맥루한은 진정 눈 밝은 이야기를 했다. 미디어 자체가 인간 감각작용의 연장이다- 그렇다. 백색전화에서 삐삐와 모바일폰으로, 전보와 편지에서 메일과 카톡, 문자메시지로 존재자의 말과 전달 방식 매체는 급변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한글이라는 ‘집’을 중심으로 존재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지난 2017년 4월 19일 혁명아처럼 나의 손자가 태어났다. 경주 김 상촌공파 32세손이 직(稙) 항렬이라 이름을 ‘동직’으로 지었으나 부르기 어렵다는 아들의 애걸에 이안(利安)으로 했다. 이제 어지간히 입말을 튼 녀석이 글말에 관심을 갖고 곧잘 한글과 영어를 읽어낸다. 물론 어린이집에서 배운 바가 크지만 며느리도 틈틈이 가르쳐왔다. 지금은 대전에 있지만 초등학교 입학 전후한 4년 동안 할아버지가 기거하는 충북 영동에서 함께 지내기로 한 친손. 그런 날이 되면 무엇보다「훈민정음」부터 가르칠 것이다.

이미 하나인 이상 말이 없다고 해서 되겠는가. 대상으로서의 1과 그것을 표현한 말로써 2가 되고, 본래 분리되기 전의 1과 합쳐서 3이 된다. - 장주『장자』내편「제물론」제2

이보다 정치한 언어론을 본 적이 없다. 현대언어학의 비조라 불리는 페르디낭 드 소쉬르(1857-1913)의 ‘통시와 공시, 랑그와 파롤, 시니피앙과 시니피에’ 등 모든 개념을 아우르는 장자의 말본이다. 여기에 장주의 친구인 혜시의 궤변학파의 주창을 더하면 언어가 왜 존재의 집이고, 존재가 어떻게 언어의 집인가 깨치게 된다. 편언절옥 해서 “닭의 다리는 세 개다”를 살펴보자. 분명 닭의 다리는 두 개이지만 보는 이의 머릿속에 ‘다리’라는 개념이 있어야 비로소 언어로 완성되는 것 아닌가? 어찌 보면 치매는 이런 선순환이 막힌 상태가 아닌가 싶다. 내 나이 환갑을 넘었으니 앞으로 미셸 푸코가 『말과 사물』에서 말한 대로 “표상과 존재, 자연과 인간 본성이 교차하는 언어”는 희미해질 것이고, 회두리에 잊고, 살붙이들의 울음바다로 떠날 터.

하늘, 땅, 해, 달, 별, 불, 물, 사람, 나무, 오늘... 순우리말을 자꾸 불러보면 오롯해지는 뜻이 참 웅숭깊다. 유영모(1890-1981) 선생은 토박이말 풀이의 선구자이시다. 오늘은 “오! 늘 감탄하며 감사한 나날”이라고 석명하셨다. 진달래는 “이녁의 짐을 내가 질 테니 달라”는 뜻이고, 살피다는 “저마다의 살과 피를 자주 돌보라”이고, 이는 “무와 유 그것을 합친 사람‘을 이른다는 것이다.

『천자문』, 『격명요결』, 『소학』... 해도 『훈민정음』이 먼저다. 하늘과 땅, 사람을 우주의 삼재라 칭하고, 시간관 공간에 인간을 더 삼간이라 부른다. 『훈민정음』은 삼재를 본떠서 만들었는데 삼간에 살면서 ’바르게 발음하는 소리‘라는 의미이다. 모쪼록 이 땅의 손자와 손녀들이 영어와 한자에 앞서 『훈민정음』의 서문 109자부터 외우기를 비손해 본다.

세종어제 훈민정음,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 문자와로서르사맛디아니할쎄하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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