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비판적인 것도 중요하지만, 인간 본질의 깊은 구조를 다뤄보고 싶었습니다. 인간의 영원한 숙제이자 해독제가 없는 사랑 이야기를 쓰고 싶었죠."

소설 '인간시장'의 작가 김홍신(70)이 신작 소설 '바람으로 그린 그림'(해냄 펴냄)을 내놨다. 주로 사회적·역사적 메시지를 전하는 소설을 써왔던 작가는 가슴 깊이 묻어둔 첫사랑을 다시 만나 그 사랑을 완성하는 연인들을 그린 전작 '단 한번의 사랑'(2015)에 이어 또다시 사랑을 주제로 삼았다.

신작은 성당에서 복사(服事)로 활동하며 신학대학 진학을 꿈꾸던 청년 '리노'와 7살 연상의 성가대 반주자 '모니카'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다.

'리노'는 성가대 반주를 하는 '모니카'에게 한눈에 반한다. 리노를 신학대학 대신 의사로 만들고 싶었던 어머니는 소문난 모범생이었던 모니카에게 리노의 공부 지도를 부탁하고 이를 계기로 두 사람은 연인처럼 가까워진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모니카의 옛 약혼자가 나타나고 모니카는 아픈 과거에서 벗어나기 위해 갑자기 결혼을 선언한다.

소설은 사랑의 상처 때문에 더 이상의 사랑을 두려워하는 여성과 가톨릭 신부가 되려던 삶의 진로를 그 여성 때문에 바꾼 남자의 애절한 이야기를 1인칭 시점의 화자로 번갈아가며 그려낸다. 실제 세례명이 '리노'인데다 복사 생활을 했고 사제가 되려 신학대학을 준비하다 어머니의 반대로 의대를 지원했다 낙방한 작가의 추억에 살을 붙이고 상상력을 버무려 완성한 이야기다.

신작 소설 '바람으로 그린 그림'을 소개하는 김홍신 작가[해냄 제공]

김홍신은 8일 서울 프레스센터 외신기자클럽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신작에 대해 사랑 이야기이자 인간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사랑의 본질은 생각하면 할수록 답을 내기가 너무 어려워요. 사랑은 인류가 사라질 때까지 숙제로 남을 것 같아서 사랑 이야기를 써보고 싶었어요. 이제부터는 사회비판적인 것도 중요하지만, 인간의 본질에 관한 더 깊은 구조를 다뤄보자는 생각에서 사랑으로, 인간의 본질로 돌아온 것으로 이해해주면 좋겠습니다."

1976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한 그는 애초 등단 40주년인 지난해 이 소설을 발표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어수선한 시국 탓에 출판이 미뤄졌다.

"'소설을 읽으면 바보'라고 할 만큼 지난 2년간 세상사가 소설보다 100배는 재미있었죠. 데뷔 40주년 맞아 장편 한 편 쓰고 제자들이 조촐한 작은 잔치를 해주겠다고 했는데 작년에 하도 세상이 어지러워서 포기하고 올봄에 내려고 했는데 탄핵정국이 와서 결국 여름에 내게 됐습니다."

그는 고은, 한강, 공지영 같은 작가들과 함께 이른바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2015년 펴낸 소설 '단 한 번의 사랑'은 친일세력의 불완전한 청산을 비롯한 한국 현대사의 모순을 비판적으로 조명했다는 이유로 '문제도서'로 분류돼 정부의 '세종도서' 선정에서 배제됐다.

"저는 평생 '블랙리스트'였어요. 이전 정권에서 블랙리스트였으면 다음 정권에서는 화이트리스트가 돼야 하는데 바른말을 하면 여전히 블랙리스트가 됩니다. 블랙리스트 문제가 한창 시끄러울 때 조윤선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저녁 식사를 하자고 그러더군요. '지금 나랑 한가하게 밥 먹을 때냐, 나중에 수습되면 하자'고 했더니 전화를 끊으면서 '블랙리스트 절대 안 만들었다. 저를 믿어달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 순간 블랙리스트였던 걸 알았죠. 글 쓴다는 것이 죄를 짓는 게 아닌데도 이런 세상에서 글을 써야만 하고 글을 쓸 수밖에 없는, 쓰지 않으면 못 견디는 저 자신이 아쉽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랑스럽습니다."

그는 "앞으로도 사랑 이야기를 몇 편 더 쓸 것 같다"고 말했다.

"사회를 조명하고 역사를 규명하는 소설, 민족사 정리하는 소설, 남과 북을 합일할 수 있는 통일에 관한 소설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사랑에 관한 소설은 계속 써야 하고 쓸 것 같아요." 352쪽. 1만4천원.

저작권자 © 뉴스티앤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