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준원 박사 / 뉴스티앤티
서준원 박사 / 뉴스티앤티

오매불망 고대했던 남북 간의 화해와 평화의 꿈이 일장춘몽이 되어버렸다. 우리 정부는 그간에 북한으로부터 직접적인 욕설과 비아냥을 들으면서도 눈만 껌뻑였다. 문재인 대통령을 직접 거론하면서 갖은 욕설과 비방을 일삼던 북한에게 이렇다 할 언급조차 아꼈다. 우리 국민의 자존심도 함께 일그러져 왔다.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등을 입에 달고 살던 분들의 심경이 어떨까.

문 대통령은 왜 그리 북한 눈치 보느냐는 일각의 비난과 우려 섞인 지적에도 눈 하나 깜짝 않았다. 북미회담의 중재자를 자처했던 문 대통령이 침묵하자, 청와대가 나서서 좀 더 지켜보자는 식으로 수동적으로 대응해왔다. 통일부는 청와대 눈치나 보는 데 익숙해진 모양이다. 전문가답게 현 사태를 정리하고 넘어갈 능력도 소신도 안 보인다. 국제사회의 도움이 절실한 형국임을 고려하면 외교부와 통일부의 협조체제가 제대로 굴러가는지도 의문이다. 청와대, 통일부와 외교부 등의 북한 눈치보기가 참 답답하다. 통일부의 존재가치 여부마저 따져봐야 할 시점이다.

아무튼, 남북연락사무소가 처참하게 무너지면서, 감성적 민족주의의 허상이 백일 하에 드러나 버렸다. 평양 주민 앞에서 연설, 옥류관 식사와 백두산 등정 등은 남북이 함께 손잡고 펼친 그럴듯한 퍼포먼스였다. 이젠 퍼포먼스의 효력이 다한 탓인지, 북한은 연일 우리를 향해 말 폭탄을 쏟아내고 있다.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진짜 폭탄이 쏟아질지도 모르는 엄정한 시국이다. 이 와중에 북한여행 가자는 부류도 나타났다. 코로나 탓에 국가 간의 교류도 막힌 상태에서 가당한 일인가. 퍼포먼스도 분위기를 봐서 펼쳐야지, 뭐 하자는 것인지 참 남사스럽다.

전쟁과 평화는 한순간에 펼쳐지고 닫혀진다. 권력은 포퓰리즘의 유혹에서 쉽게 벗어나기 힘들다. 그렇다고 권력이 대중의 환호를 이끌어 내는 화려한 퍼포먼스를 통해 꿈과 희망을 마냥 부풀리면, 민초는 점점 현실에 둔감해지고 춘몽의 달콤함에 빠져버린다. 이게 포퓰리즘의 위력이자 함정이다. 이런 퍼포먼스를 통해 자연스럽게 권력은 집중과 확산 과정을 거치면서 견고한 지지층을 형성시킨다. 북한의 권력 체제는 유례없는 사례다. 북한체제는 통치의 힘을 군부에 기대면서 속칭 선군(先軍)정치를 펼친다. 권력의 정통성이 취약할수록 군부부터 장악해야 통치가 수월하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북한 역시 살기 위해서 몸부림을 치는 중이다. 코로나와 대북제재 탓에 먹고 살 힘이 점점 빠져가는 중이다. 재선에 여념이 없는 트럼프 대통령도 북한을 거들떠보지 않기에 국면전환용 기회 마련이 궁색해진 북한이다. 이번 사태에 김여정이 직접 앞장선 것을 보면, 김정은의 건강상태와 북한사회의 불안감 확산이 우려되는 현실인 것 같다. 대북전단 살포중지 운운은 한낱 구실에 불과하다. 코로나 탓에 더 힘들어진 대내외 환경 극복과 내부단속을 위한 퍼포먼스가 절실했을 것이다. 북한이 쏟아 낸 이른바 “말 폭탄“은 이미 수위조정력마저 상실했다. 철부지 아이들 말싸움도 아니고, 대외적 언행치곤 저급하기 짝이 없다. 이런 못된 버릇을 마냥 방관해 왔던 현 정권의 때늦은 대응이 못마땅하다. 앉아서 매를 번 셈이다.

우리 인명과 재산에 대한 손상은 훗날 통일되더라도 꼭 응징해야 마땅하다. 막연하게 책임을 묻겠다는 식으로 해봤자, 그간의 경험으로 볼 때 허언이라는 걸 간파한 북한이다. 통일 전 동서독 관계에서 한 수 배워야 한다. 동독은 월경하는 자에게 직접 사격을 했다. 서독은 사격을 가한 자들을 대상으로, 훗날 통일이 되면 꼭 응징하겠다고 선언했다. 실제로 통일 직후 가장 먼저 손댄 곳이 동독 국가보안부(Stasi)였다. 슈타지 서류를 파헤쳐 응징에 나선 것은 물론이다. 차제에 독일 사례를 접목해서, 훗날 통일이 되더라도 인명살상과 폭파된 개성사무소 등의 재산손괴는 기필코 책임을 묻겠다고 선언해주길 기대한다.

1948년 5월 북한은 합의를 깨고 남한으로 보내는 전기를 끊었다. 남한 전 지역은 한순간에 암흑천지로 변했다. 이번엔 우리 정부가 개성공단의 단수-단전 조치를 취했다. 무고한 개성주민만 엄청난 불편을 감내해야만 하는 딱한 처지다. 우리 기업들에게 수 조 단위의 피해를 준 개성공단과 외화벌이 창구인 금강산 관광 등을 생각하면 맘이 아득하다.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었을까. 대북제재의 틈새조차 돌파하지 못하는 무능력한 우리 외교. 국위를 고려하면 국제사회에서 충분히 풀어낼 수 있는 사안으로 여겨지는데, 현 정권의 외교력 부실과 국제사회로부터의 신뢰성 결여가 참 안타깝다.

통일은 지고지선(至高至善)일 수 있으나, 절대지선(絶對止善)이 아니다. 막연한 통일의 꿈에 취해있을 것이 아니라 지극히 현실적인 관점에서 하나하나씩 헤쳐나가야 한다. 평양에서 냉면 먹고 백두산에 올랐다고 마냥 들떠 있을 순 없지 않은가. 게다가 남북관계를 퍼포먼스의 카드로만 여긴다면 지금과 같은 흉측한 일을 당하게 된다. 일시적인 남북관계의 물꼬에 국민이 들떠있더라도 자제와 평정심을 챙기도록 주문하는 게 정부의 역할이다. 남북이 손잡고 민족과 통일 운운하면서 전개했던 퍼포먼스가 제대로 실효를 거둔 적이 없다. 언제까지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이런 과오를 되풀이할 것인가. 어느 누군들 평화와 화해를 부정하던가, 그간에 정부의 소극적인 대응에 속앓이를 하면서도 묵묵히 지켜봐 왔다. 참 안타깝고 한편으론 서글프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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