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회 가톨릭대학교 전 부총장 

산수(傘壽)의 나이를 넘고 보니 다시 되돌아가고 싶은 고교시절.

학창시절의 추억은 누구나 다 그렇듯 항상 그리운 것. 많은 참고서와 문제지들, 그리고 배고파 꽁보리밥이라도 싫컷 먹고 싶던, 그러면서도 몇십 리 비포장된 돌길을 걸어 다녀야만 했던 추억.

같은 공간 안에서 60여 명의 친구들이 취업이나 대학이라는 높은 문턱을 향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함께 했던가? 그 가운데 가장 추억에 남는 것은 몇 십리 자갈길을 오가던 추억이 그리움에 젖어들게 하고 있다.

나는 미루나무가 어느 나라 수종인지도 모른 채, 미루나무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을 가지고 있다. 그 이유는 어느 날 거리거리에는 미루나무 대신 벚꽃나무가 화사함을 자랑이나 하듯 뽐내고 서 있기 때문이다. 

인문학적인 시각에서 나무를 읽어내는 작업은 계명대 강판권 교수가 쓴 ‘어느 인문학자의 나무 세기’를 비롯해 우리나라에서도 여러 책이 나와있다. 영국인이 쓴 ‘길고 긴 나무의 삶’은, 동아시아의 문화적 전통·역사와 관련해 나무를 바라본 책들에서는 접하지 못했던 색다른 정보와 시각을 제시한다. 같은 나무에 대해 우리와 전혀 다른 의미와 감정이 투영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이들 교수가 쓴 어느 책에도 미루나무에 관한 이야기는 보지 못했다.

나는 그 옛날 중고등학교 시절 충남 홍성군 광천에 위치한 오서산 밑에 자리한 장곡이란 곳에서 태어나 토굴 새우젓으로 이름난 광천이란 소읍 도시에 있는 광천중학교와 광천 상업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그래서 미루나무가 십여M 간격으로 버티고 서 있는 시골 신작로를 한 시간 반 동안 걸으며 학교를 다녔기에, 미루나무는 나에게 더없이 좋은 친구였다. 무더운 여름에는 그늘막이가 되어 주었고, 겨울에는 바람막이 겸 길 안내자 노릇을 한 셈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그 미루나무가 오늘날 더욱 그리운 것은 그 나무 때문에 하루 왕복 세 시간을 걸으면서도 지루함을 잊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시간도 때우고 지루함도 이겨내는 데에는 미루나무 보다 좋은 게 없었다. 십여 미터 간격으로 서 있는 미루나무 한 그루 한 그루를 벗 삼아 영어단어 하나하나를 외우려 발버둥 치다보면 어느새 쉽사리 학교에 도착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 때의 새벽 등굣길은 미루나무 하나하나의 간격에 인생을 걸며 과정에 충실하려 했던 새벽의 등굣길이었다.

그 덕에 오늘날 내 다리며 허벅지는 통나무 못지않게 굵어졌고, 그로해서 탄탄한 근육탓으로 오늘의 건강을 지켜나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그 미루나무를 볼 수 없는 오늘의 이 따뜻한 봄날이 아쉽고 그립기만 하다.

요즘은 새벽마다 잠이 없어 어렸을 적 고향 생각과 미루나무 생각을 자주 하곤 한다. 그 미루나무 한 그루 한 그루 사이와 단어 하나하나에서 온갖 시름을 달랬던 그 시절이 너무나도 그립기 때문이다. 그 미루나무 사이사이는 내 인생의 소중한 과정이 배어 있고, 생의 길잡이 역할을 해주었던 것이다.

저작권자 © 뉴스티앤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