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래호 작가 / 뉴스티앤티
김래호 작가 / 뉴스티앤티

가난한 사회의 경우에는 분배할 것이 거의 없기 때문에, 어떤 정당이 민주주의를 거부하다가 패하더라도 잃을 것이 거의 없다. 부유한 사회의 경우에는, 제아무리 반란을 통해 특정 집단이 기대하는 소득이 민주주의하에서 그 집단이 기대하는 소득보다 높다고 하더라도, 독재를 수립하기 위한 싸움에서 이길 가능성이 거의 없다. 1인당 국민소득이 증가할수록, 독재가 수립될 확률은 민주주의가 수립될 확률에 비해 더 낮아진다. 그러므로 소득수준이 어느 정도가 되면, 민주주의가 독재보다 선호된다. 이런 위험 회피의 동기 때문에, 부유한 사회의 경우 모든 사람이 선거 경쟁의 결과에 승복하게 되는 것이다. - 아담 쉐보르스키(2003)『민주주의와 법의 지배』제5장「정당은 왜 선거결과에 복종하는가?」

캐나다 출생의 미국 정치학자 이스턴(D. Easton: 1917-2014)은 정치를 ‘가치의 권위적 배분’이라고 규정했다. 여기에서 말하는 가치의 척도, 권위의 위임, 배분의 변천이 곧 정치학사이다. 그 시원으로 서양에 플라톤의『국가론』이 있다면, 동양에는 공자의『논어』가 있어 ‘14자’로 표방되었다. 불환과이환불균 불환빈이환불안 不患寡而患不均 不患貧而患不安(제16편「계씨季氏」)-

공구는 “백성이나 토지가 적은 것을 걱정하지 말고 분배가 균등하지 못한 것을 걱정하고, 가난한 것을 걱정하지 말고 평안하지 못한 것을 걱정하라!‘ 권면했다. 문덕文德- 이런 외적인 문화와 내적인 덕망을 추구하는 정치의 위정자들에게 멀리 있는 사람들이 모여들어 한 나라가 부강해진다는 것이다. 훗날 법술지사法術之士 한비가 등장해 법에 의한 ’균등한 배분‘의 통치를 주창하는데 이는 서양에서 마키아벨리의『군주론』, 몽테스키외『법의 정신』의 발아이다.

아무튼 2020년 경자년의 봄은 정치의 계절이요, 선거라는 민주주의의 ’꽃‘이 활짝 피는 철이다. 동서고금 그 자연의 꽃은 변함없지만, 민심이라는 ’꽃‘은 시대와 국가에 따라 모양이 다르기 마련이다. 특히 제21대 국회의원선거는 준연동형 비례가 도입된 최초의 선거라는 점에서 어떤 모습일까 궁금하기 짝이 없다. 국회의원 총 300석에서 지역구 253에 새로운 47개 의석이 더해지니 말이다. 코로나 19의 팬데믹 속에 치러지는 한국의 선거는 세계가 주목하는 ’꽃‘이 된 것이다.

인간들이 어떤 것을 항상 그리고 유일하게 소통해야 했다면, 엄밀히 말해 정치란 없었을 것이다. 오로지 교환과 갈등, 신호와 응답만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들은 무엇보다 순수한 소통 가능성을 소통하기 때문에, 정치는 인간의 얼굴이 그 자체로 출현하는 소통적 텅 빔으로서 떠오른다. 정치가들과 미디어 통치자들은 이 텅 빈 공간을 확실하게 통제하려고 애쓴다. 그것의 고유화할 수 없음을 보장해주는 영역 속에 텅 빈 공간을 분리시키면서, 소통 가능성 자체가 백일하에 드러나는 것을 방해하면서 말이다. 이것은 카를 마르크스의 분석이 다음의 사실로 보충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자본주의는 생산활동을 수용할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언어활동 자체를, 인간의 소통적 본성 자체를 소외시키는 방향으로 간다는 말이다. - 조르조 아감벤(2009)『목적 없는 수단: 정치에 관한 11개 노트』제8 얼굴

소통적 본성의 통제와 소외- 정치의 최전선은 ’말‘이다. 색과 음의 순수한 의미의 미술과 음악이 문학보다 얼마간 어려운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시나 소설 등 문학적 갈래는 언중의 일상적 ’입말과 글말‘로 표현하기 때문에 접근성이 높은 편이다. 하지만 ’전시회나 연주회‘ 속의 그것은 다소의 ’교양‘과 울림의 폭이 비례한다. 진정 눈이 밝은 아감벤이 말하는 ’정치와 얼굴‘의 본령이 이것이다. 텅 빈 공간의 게슈탈트gestalt- 정당과 정치가들은 그 장場을 채우는 공론화 속에 공감을 얻고자 눈물겹게 애쓰는 것이다. 그런 노력에 ’소외‘가 현실화된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사회의 상품을 ’사회적 상형문자‘라고 정의했다. 하나의 상품이 되려면 ’사용가치‘만으로는 안 되고, 거기에 ’교환가치‘가 덧붙여져야만 한다. 상품이 신비한 이유는 구체적인 쓰임새나 물적 형태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성격, 즉 교환가치가 생겨나는데 ’노동의 소외‘가 발생한다. 헤겔의 적자인 마르크스는 ’노동‘을 가장 인간적 특성으로 자아실현을 위한 근원적인 활동으로 제시했는데 아감벤은 언어, 특히 정치적 언술과 동일시한 것이다.

프레임이란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형성하는 구조물이다. 프레임은 우리가 추구하는 목적과 우리가 짜는 계획, 우리가 행동하는 방식, 우리가 행동한 결과의 좋고 나쁨을 결정한다. 정치에서 프레임은 사회 정책과 그 정책을 실행하기 위해 만드는 제도를 형성한다. 프레임을 바꾸는 것은 이 모든 것을 바꾸는 일이다. 그러므로 프레임을 재구성하는 것은 곧 사회 변화를 의미한다. ... 우리는 언어를 통해 프레임을 인식한다. 모든 단어는 개념적 프레임과 연관되어 정의된다. 우리가 어떤 단어를 들으면 우리 뇌 안에서 그와 관련된 프레임이 활성화된다. - 조지 레이코프(2004)『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서론

저 유명한 조지 오웰의 장편소설『1984』에 등장하는 대형big brother의 당은 ”혁명은 언어가 완성될 때 완성된다!“ 는 슬로건 아래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이라는 ’프레임‘을 각인시키기 위해 새로운 사전을 편찬한다. 늦어도 2050년까지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말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없기 위해서... 묶어보면 정치의 어려움은 ’말로 표현‘ 하는 것으로, 프레임 그 ‘의미망의 회로’를 새로 짜야 하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고대 중국의 명가들의 명제가 매우 유용하다. 그것들 중에서 두 가지를 제시하면 ‘닭의 다리는 세 개다’와 ‘구狗와 견犬은 다르다’이다. 플라톤의 이데아 같은 관념 속의 ‘다리’라는 회로가 존재할 때 눈앞의 닭은 비로소 두 개의 다리를 갖게 된다. 똑같은 형체의 개도 부르는 말이 다르기 때문에 엄연히 다른 것이다. 목불견目不見- 그렇다. 빛이 있어 우리는 사물을 보고, 인식한다. 그 바탕에는 인간의 빛나는 정신이 그리는 세상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는 것이다.

동양 법치주의의 총화인『한비자』에 나오는 일화는 이렇다. 춘추전국시대 제나라 왕의 초상화을 맡은 화가가 있었다. 연회 자리에서 왕이 하문했다. ”무엇을 그리기가 가장 어려운가?“ 빈객은 서슴없이 답변했다. ”개와 말이 그리기가 가장 어렵습니다.“ ”... 그렇다면 무엇이 가장 쉬운가?“ ”그야 귀신이 가장 쉬운 법이죠. 대체로 개와 말은 사람들이 잘 알고 있고, 늘 눈에 보여 유사하게 그릴 수 없기 때문에 어렵고, 귀신은 형체가 없는 것으로 사람들의 눈앞에 보이지 않기에 쉽습니다.“

생텍쥐페리의 아포리즘일 것이다. ”당신이 배를 만들고자 한다면 사람들에게 바다를 동경하는 마음을 품게 하라!“ 개, 말, 귀신, 배, 바다- 정당과 후보자들의 정책, 공약이 난무하는 선거철- 그 프레임을 꿰뚫어 보는 유권자들의 눈이 빛나야 한다. 과연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내게로 와서 꽃이 되는, 그런 꽃망울은 어느 것이며 과연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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