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삼 전 육군참모총장 일대기

이진삼 전 육군참모총장(전 체육청소년부장관, 전 국회의원) / 뉴스티앤티
이진삼 전 육군참모총장(전 체육청소년부장관, 전 국회의원) / 뉴스티앤티

브레이크 없는 벤츠

2005년 초, 나는 칠순의 문 앞에서 천성관 검사에게 편지를 띄웠다. 억울함으로 정신적 고통과 육체적 고통, 그리고 경제적 손실과 명예 실추를 떠안고 산 지 12년이 경과한 즈음이었다.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없이 권력에 무릎 꿇고 자기 출세를 위해서 사건 조작을 하는 천성관 검사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김용원 변호사가 쓴 《브레이크 없는 벤츠》를 보면 새파란 검사의 열정에 사사건건 정치검사의 참견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마찬가지로 천 검사 또한 그저 출세하기 위해 권력에 빌붙은 권력의 노예, 황금의 노예, 향락의 노예였을 뿐이다.

1947년 초등학교 4학년 어린 시절에 본 ‘검사와 여선생’이란 영화에선 검사가 된 제자가 ‘남편을 죽였다’는 누명을 쓴 선생님을 살려내는 정의로운 검사가 나온다.

본디오 빌라도 총독에게 고난을 받으신 예수님께서 많은 사람에게 존경을 받으니까 죄를 뒤집어씌우고 십자가에 못 박은 본디오 빌라도 역시 자책감에 자살을 하게 된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 천 검사가 의미를 새겨듣길 바라며 17개의 질의를 넣어 함께 편지를 썼다.

1. 소환 전, 2주 이상 검찰에서 허위 추정, 과장한 정보를 언론에 유출시킨 이유

2. 검찰 출두일에 청사 입구에 기자들을 동원한 이유

3. 본 사건을 참고인 자격으로 조사하겠다고 통보 받았는데 구속한 이유

4. 시효(7년)가 지난 사건을 취급한 이유.

5. 도피한 한진구를 끝까지 검거하는 데 주력하지 않은 이유

6. 내용도 모르는 한진구 처(윤서인)를 소환, 회유 조서를 작성한 이유

7. “총장까지 지낸 분이 이런 일을 할 수 있습니까?”를 훈시조로 말하는 천 검사에게 “이 사람아, 사단장 할 때 자네들을 내가 이렇게 가르쳤나” 다그치듯 묻자 이상한 표정을 지은 이유

8. 구치소에서 1차 소환 시 내가 “아무리 생각해도 사건 당일의 일이 생각나지 않는다.”며 “혹시 내가 매년 4월~5월 전후로 외국 출장을 다녀왔는데 그때가 아닌지 모르겠다.”고 말하자, 천 검사는 출입국 관리소에 확인, 내가 출장 중이었다는 것을 알고 피의자를 재 소환해 진술을 번복시켰는데, 이처럼 허위 진술을 유도한 이유

9. 구치소에서 2차 소환 시 사건내용에 대한 질의 없이 “만약 이번 사건에 불응하면 6개월 간 구속 조사하겠다.”고 공갈친 이유

10. 내 앞에서 어느 지방지청장과 통화하면서 “잘 되겠지요?” 하며 차후 보직에 대해 거침 없이 대화를 했는데 출세를 위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권력형 검사로 비쳤다. 누구와 통화했는지.

11. 구치소에서 2차 소환조사 시 사건내용에 별다른 조사 없이 5~6공과 관련 자료 입수를 위한 10·26, 12·12, 5·18 등의 사건을 문의한 이유

12. 구치소 수감자 중 나를 1개월 15일 만에 신속하게 재판 후 석방한 이유

13. 재판 시에 변호사 변론 후, 검사의 형식적인 공소이유를 설명하고 2년 구형한 이유와 방청석에서 웅성대며 야유를 보내자 고개를 숙이고 있었던 이유

14. 1차 항소 시 변호사 변론 후, 대리 참석한 검사가 사건 당일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백승목 참고인에게 “옛날 상급자이기 때문에 말하기가 곤란하지요?”만을 묻고 아무런 질문을 하지 못한 이유

15. 사건 핵심 당사자들의 형은 가벼운 처벌에 비해, 죄 없는 나에겐 일방적인 진술을 기초 로 중죄를 구형한 이유

16. 예상 외로 나를 신속한 기일 내에 사면한 이유

17. 2004년 6월 14일, 내 아내 상(喪)에 어떤 심정으로 문상 왔나.

2017년 2월이 된 지금껏 그에게선 응답이 없다.

천성관 검사에게 보낸 편지
천성관 검사에게 보낸 편지

2014년, 김한길 의원의 아버지 ‘김철 사건’이 30년 만에 무죄 판결이 내려진 사실이 신문 기사에 실렸다. 그밖에도 2013년 5월에는 간첩으로 오인 6년여를 복역한 납북 어부 이병규 씨에게 18년 만에 국가가 10억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내려졌고, 2013년 8월에는 ‘유신 반대’를 했던 인명진 목사가 39년 만에 무죄판결을 받았다. 2014년 2월에는 부산 지역 최대 공안 사건인 ‘부림 사건’ 또한 33년 만에 무죄 판결을 받았다. 나 역시 무죄 판결로써 명예를 회복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더욱이 나를 난도질했던 천 검사가 맡았던 많은 사건이 논란이 되거나 무죄 판결이 확정되는 것을 보면서 더더욱 다짐을 공고히 했다.

천 검사는 1998년 9월, 부산지검 공안부장 시절, ‘영남위원회’라는 반국가 단체를 결성한 혐의로 15명을 구속 기소한 사건에 대하여 2000년 1월에 부산고등법원은 대법원 파기 환송심에서 12명에게 무죄를 확정했다. 2001년에는 강정구 동국대학교 교수를 비롯한 8·15 민족통일대축전 방북단 일부가 사전 지령을 받았다는, 확인되지 않은 피의 사실을 연행 조사 단계에서 공표하였다가 이를 취소하는 소동을 벌이기도 했다. 그리고 강정구 교수를 만경대 방명록에 “만경대 정신을 이어받아 통일 위업 이룩하자”는 내용을 적었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했으나, 사전 지령 내지 사전 교감에 대한 증거를 찾아내지 못했다. 2008년에는 여간첩 원정화 사건을 수사하면서 그녀의 계부 김동순을 기소한 것을, 1심 재판부가 “구체적 직접 증거가 없어 간첩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라고 무죄를 선고, 검찰이 면밀한 수사 없이 간접 사실만을 가지고 간첩이라 지목하고 체포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2009년에는 용산 참사 사건을 지휘, 농성자 20명과 용역업체 직원 7명을 기소하는가 하면 MBC ‘PD 수첩’의 사건을 수사, 방송작가의 7년에 걸친 이메일을 압수 수색하고 그 일부를 언론에 공개하는 것으로 여론몰이를 하다가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수사 중, 당시 임채진 검찰총장에게 구속에 대한 의견을 묻자, 절반 이상이 불구속을 주장한 반면, 천 검사는 당시 광주고검장인 신상규와 함께 구속영장 청구를 주장했다. 천 검사가 맡았던 대부분의 사건들은 항상 무리가 따랐던 수사였음이 밝혀졌다. 나를 겨냥했던 사건 또한 검찰이 조작한 사건으로 초등학교 수준의 질 낮은 시나리오에 지나지 않는다.

양순직 의원에게 보낸 편지
양순직 의원에게 보낸 편지

양순직 의원은 진단서를 첨부하지 않았다. 치료 미상이라는 애매한 표현을 썼을 뿐. 그리고 검찰 말대로 ‘혼만 내주라고 했다’는데 이는 ‘겁을 먹고 행동을 자제하도록 위협하겠다.’는 뜻으로 미친놈들이나 하는 창피한 행동이다.

자기의 잘못을 시인하는 용기가 가장 위대한 용기이다. 그는 모 변호사 포럼에서 재벌 롯데 변호인으로 죄를 감면시켜주는 굵직한 사건을 수임하였는바 많은 무죄를 유죄로 만들었던 비겁하고 철면피한으로 사회로부터 격리시키고 언론에 공개해야한다. 사회정의와 민주주의를 위하여 특별법을 제정, 처벌해야 한다. 나는 보안부대 대공분야에서 7년 근무하며 회개한 간첩들을 모두 도와주고 국민의 품으로 끌어안았다. 공안 정국 시 나는 훈장을 못 탈망정 민주주의 원칙을 지켰다. 권력이나 황금의 노예가 되지 않으려고 노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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