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래호 작가의 밑줄 이야기] ‘최고의 세월’ 혹은 ‘최악의 세월’
[김래호 작가의 밑줄 이야기] ‘최고의 세월’ 혹은 ‘최악의 세월’
  • 김래호 작가
  • 승인 2020.03.17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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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래호 작가 / 뉴스티앤티
김래호 작가 / 뉴스티앤티

건강이 좋았던 사람들이 갑자기 머리에 심한 열이 나고, 눈이 충혈되고 염증이 생기고, 목젖과 혀 같은 데가 핏빛으로 변하고, 숨이 부자연스럽고 구린내를 풍겼다. 이런 징후들이 생긴 다음에는 재채기가 나고 목이 쉬었으며 곧 고통이 가슴에까지 이르러 심한 기침을 일으켰다. 그것이 위에 자리를 잡으면 온통 엉망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의사들이 말하는 온갖 담즙이 생기고 큰 고통이 따랐다. 또한 대부분 헛구역질과 함께 격렬한 경련을 일으켰는데 곧 중단되거나 장시간 지속되는 경우도 있었다. - 투키디데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제2권 49장

B.C. 431년 그리스의 아테네를 덮친 역병- 투키디데스는 “나 자신이 이 병에 걸렸었고,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여러 차례 목격했기 때문에 이것을 설명하는 데 적합한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고백하고, 증세를 상세히 기술했다. 이렇듯 신빙성뿐만 아니라 과학성도 매우 높아 후세 ‘역병기’의 전형이 되었다. 지금까지 그 전염병의 병명이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의학자들은 대체로 여러 괴질이 한꺼번에 발생했으리라 추측하고 있다. 3년 뒤 다시 역병이 돌았고 전쟁과 질병으로 도시국가 아테네는 급속히 멸망하기 시작했다.

요한 호이징가(1872-1945)는『중세의 가을』제2장에서 “모든 시대가 보다 아름다운 삶을 열망한다.” 전제하고, “사실 매시대마다 행복한 기억보다는 불행과 고통의 흔적을 더 많이 남긴다. 주로 불행한 일들이 역사에 남는 것이다.” 규정했다. 그런 흔적 중에 ‘전쟁과 빈곤, 질병’은 순환적 재앙으로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이들은 종종 한꺼번에 나타나 더 불행하게 만들었는데 희생자와 해당 국가가 많을수록 혹독했다. 문명이 고도화될수록 ‘질병의 역사’는 ‘역사와 사회 속의 질병’으로 인식되었고, 전 인류적 과제로 부상했다. 물론 시대와 국가의 대응책도 변모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수나라 문제 때 신공의辛公義가 민주 자사岷州刺史 가 되었는데, 민주 풍속에 전염병을 두려워하여 환자가 생기면, 전 가족이 문을 닫고 피해버려 그대로 죽는 자가 많았다. 신공의는 명을 내려 모두 가마에 태워 관청으로 옮겨다 놓도록 하였더니 여름날 청사의 행랑이 가득 찼다. 신공의는 평상을 설치하고 밤낮으로 거처하면서 녹봉으로 의약품을 공급하며 몸소 그들을 문병하였다. 병이 나은 후에는 그들의 친척들을 불러놓고 깨우치길, “죽고 사는 것은 천명이다. 만일 서로 전염하게 되는 것이라면 나는 이미 죽었을 것이다.“ 하니 모두 부끄럽게 여기며 사죄하고 돌아갔다. - 정약용(1818) 『목민심서』4편「애민」제5조 관질寬疾: 병자를 돌봄

다산은「애민愛民」을 여섯 가지(양로養老, 자유慈幼, 진궁振窮, 애상哀喪, 관질救災, 구재救災)로 나누어 석명했다.『주례』의「보식육정保息六政」에 따르면서 역사적 사건을 제시하고 주석했는데 수나라 신공의는 이렇다. ”무릇 전염병이 전염하는 것은 모두 콧구멍으로 그 병의 기운을 들이마시기 때문이다. 염병을 피하는 방법은 마땅히 그 병의 기운을 들이마시지 않도록 환자와 일정한 거리를 지켜야 할 것이다. 무릇 환자를 문병할 때는 마땅히 바람을 등지고 서야 한다. 신공의는 그때 기운이 충실했기 때문에 전염되지 않았을 따름이다.“

다산은 ‘관질’에서 이렇게 덧붙였다. ”내가 강진에 있을 때인 기사년(1809)과 갑술년(1814)에 큰 기근을 당했고, 그 이듬해 봄에 전염병이 크게 유행하였다. 내가 성산자聖散子의 처방을 전해주어 살아난 사람이 또한 그 수를 셀 수 없을 정도였다. 수령이 된 자가 만약 전염병이 유행하는 때를 만나면 수만 전을 써서라도 이 약을 많이 제조하여, 질병을 치료하는 일을 맡은 아전에게 하여금 헐값에 팔게 하면 널리 구제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값이 본래 헐하여 한 첩이 돈 7닢에 지나지 않으니 비록 가난한 백성이라도 복용하기 어렵지 않다.“

질병관리본부, 확진자, 동선, 슈퍼 전파자, 집단/지역감염, 음압병동, 자가격리, 폐쇄명령서, 유연근무, KF94 공적 마스크 5부제, 사회적 거리 두기, 드라이브/워킹 스루 선별진료소, 팬데믹, 홈코노미home+economy... 코로나 19가 지속되면서 이제 새로운 용어들과 친숙해진 한국사회- 2009년 신종플루와 2012년 메르스를 겪으면서 ‘면역력’이 강화된 덕인지 패닉 상태는 일어나지 않는 듯하다. 그저 높은 전파력으로 ‘국민행동수칙’에 따라 극도로 위생에 신경을 쓰고, ”어서 끝나길 바라는 마음“들 뿐이다.

홍콩에 있을 때는 홍콩 전체를 높은 벽으로 간주해 그것을 마주 보면서 깊이 생각했으며, 미국에 간 뒤에는 로키산맥, 더 나아가 하늘과 우주 전체를 높은 벽으로 삼아 깊이 생각하였다. 벽을 마주하고 깊이 생각하는 상태는 실제로 생각이 구름처럼 떠돌고 자유롭게 노니는 상태로, 몸은 벽 안에 있지만 마음은 높고 넓은 하늘에 있으며, 또한 후손 만대에 이르기까지의 긴 시간의 앞과 뒤에 있었다. 구름처럼 떠도는 와중에 시간과 공간의 경계는 완전히 소실되었고 벽을 마주하는 것 또한 커다란 자유를 직접 대면하는 것과 같았다. - 류짜이푸劉再復(2007)『면벽침사록面壁沈思錄: 벽을 마주하고 홀로 생각하다』

‘자발적 자가격리’가 달포 넘게 이어지면서 책 10권을 선정하고, 톺아보고 있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 온당하다면 거꾸로 ‘존재는 말의 집’이라는 말도 가능하다. 입말이 봉쇄당한 현실에서 글말을 읽으면서 마지널리안marginalian으로 지내는 것도 차선책이 될 것이다. 1989년 텐안먼 사건으로 추방당해 디아스포라로 떠도는 현대 중국의 사상적 대가 류짜이푸(1941- ). 그의 글은 장자가 말한 ‘치언과 중언, 우언’의 총화로 짧지만 동서양의 씨줄과 날줄을 엮어 존재 그 집의 벽을 세웠다.

편언절옥하자면 추사 김정희(1786-1856)선생이 유배지 제주도에서 남긴 현판과 맞닿아 있다. 소창다명 사아구좌小窓多明使我久坐: 작은 창문의 많은 빛이 나로 하여금 오래 앉아 있게 한다- 그렇다. 몸은 비록 위리안치의 가시 울타리에 갇혔지만, 집이 없어 가장 오래 사는 무언의 빛처럼 마음은 자유로운 것이다. 몸의 손과 발 그 길이 막혔다고 마음의 눈 그 길까지 폐쇄된 것은 아닐 터. 무엇에도 구속되지 않고, 동시에 모든 것과 함께 하는 자유의 표상인 햇빛을 닮으면 꿈길이 실현되리라. 저 요한 볼프강 폰 괴테(1749-1832)의 유언이 ”나에게 좀 더 빛을!“ 이었다.

수천 권의 책으로 벽체를 올린 집보다 딱 4권의 그것이 공고하다 믿는 축들이 무서운 법이다. 그런 몇 권의 책을 추스르며 한뉘에 걸쳐 읽는 것이 지상 최고의 독서이다. 이는 바로 성 아우렐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354-430)의 자문과 상통한다. ”세상에는 내가 이해하고 싶은 게 너무 많은데 그중 제일 이해하고 싶은 게 내 자신이다.“ 그의 자서전『고백록』은 존재의 집 자체이자, 말의 집인 책으로 완성되었다.

과연 인간적인 작용의 최고가치는 ‘하다’일까, 또는 ‘있다’일까, 또 어떤 쪽의 해결이 채택되는 간에, ‘가지다’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존재론은 이 문제에 관하여 우리에게 가르치는 바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뿐 아니라 만일 대자對自가 행동에 의해서 자기를 규정하는 존재라면 이것은 존재론의 본질적 과업의 하나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행동일반에 관한 연구, 및 ‘하다’, ‘있다’, ‘가지다’의 사이에 어떤 관계의 연구를 조잡하게나마 그리지 않고는 이 저작을 끝낼 수 없다. - 장 폴 사르트르(1943)『존재와 무』제4부 「가지다, 하다, 있다」

류짜이푸가 존경한 레프 톨스토이(1828-1819)- 톨스토이가 19세기 최고의 문호로 꼽은 찰스 디킨스(1812-1870)의 장편소설『두 도시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최고의 세월이요, 또한 최악의 세월이었다. 지혜와 우둔의 시대요, 광명과 암흑의 계절이요, 신앙과 불신앙의 기간이요, 희망의 봄이요, 절망의 겨울이기도 했다. 우리들 앞에는 온갖 것들이 갖추어져 있었고, 또한 아무것도 갖추어져 있지 않았다.“ 지금, 여기의 우리는 어느 도시에 살고 있는가? 짜장 어떻게 해야만 다른 도시를 갖고, 그곳에 있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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