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준원 박사의 Issue Brief] 민생탐방, 포템킨의 망령을 잊었는가?
[서준원 박사의 Issue Brief] 민생탐방, 포템킨의 망령을 잊었는가?
  • 서준원 박사
  • 승인 2020.02.21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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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원 박사 / 뉴스티앤티
서준원 박사 / 뉴스티앤티

민생을 살피는 일은 지도자의 덕목이자 책무다. 조선시대에도 왕이 직접 민생탐방에 나선 일이 허다했다. 허술한 복장으로 민초들이 주로 드나드는 시장에 나타나 민생을 직접 살폈던 것이다. 탐방 이전에 기획된 틀에 맞추는 구색맞추기 민생탐방이 아니었다. 왕의 신변안전을 위한 호위병도 평복을 입고 함께 동행했다.

1787년 제정 러시아 때의 일이다. 여제 예카테리나 2세가 시찰을 나간다는 소식을 듣고,  ‘포템킨’ 총독은 여제의 환심을 사기 위해 기이한 발상을 선보였다. 낙후된 마을을 그럴듯하게 포장하여 강을 따라 움직이는 배를 탄 여제가 보도록 한 것이다. 마을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서 강을 따라 전시한 것이다. 현실을 감쪽같이 숨기고 인위적으로 조작한 곳 즉, ‘포템킨 빌리지(Potemkin village)’는 권력에 대한 아부와 음모의 상징이 되어 버렸다.

포템킨과 유사한 의미로 파싸데(Fasseade)란 것도 있다. 건물 맨 꼭대기 층 전면에 그럴듯한 장식벽을 만들어 외형적인 미를 강조했다. 예를 들면, 5층건물에 파싸데가 세워지면 6층으로 보이는 시각적 눈속임 효과를 노린 것이다. 올라가 보면, 전면 벽만 덩그러니 있고 여타 층과 달리 텅 비어있다. 포템킨이 상대를 속이기 위한 사기에 가깝다면, 파싸데는 그래도 외형적 미 즉 건축학적 예술 강조가 특징이다.

소련연방 해체 이후에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Paul Krugman)은 외형만 그럴듯하고 속이 부실한 경제상황을 ‘포템킨 경제’로 지칭하면서 경제학의 개념으로 정착했다. 경제관련 통계조작에 의한 허장성세가 전형적인 ‘포템킨 경제’다. 정치학에서도 포템킨은 포퓰리즘의 전형적인 형태로서 독재와 기만의 상징으로 취급되고 있다. 파싸데가 텅 빈 것을 알면서도 외형적인 아름다움을 즐기는 것이라면, 포템킨은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꾸민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아산지역 상가에서 장사가 어떤지 물었다. 돌아온 답은, “거지같고 참 힘들다”는 솔직담백한 답이 나왔다. 충청도에선 거지같다는 표현은 일상적인 면이 강하고 스스럼없이 내뱉는 언어구사라고 본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 지지자들은 모욕적이라면서 심할 정도로 상인을 괴롭혔고, 급기야 문 대통령의 이해심(?)이 발휘되면서 좀 가라앉는 분위기다. 문 대통령의 민생탐방은 청와대 경호실이 중시하는 의전의 한 부분이다. 신변보호와 안전을 위해 당연히 경호실에서 사전에 이런저런 챙길 것이 많다. 그렇다고 특정 상인을 내세우거나, 사전에 입 맞추기 식으로 리허설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런 식으로 접근하면 대통령도 시정의 물정을 모르고 지나칠 수밖에 없다. 

정세균 국무총리의 남대문 시장 탐방도 구설수에 올랐다. 사전에 현 정권에 우호적인 상인을 물색해 둔 모양이다. 대통령과 총리의 시장탐방은 민생을 챙길 수 있는 기회이자 관련정책의 피드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장사가 안 되어 속상한 상인들을 위로한답시고, 이럴 때 편히 지내라는 덕담마저도 단순한 농담으로 수용하기가 불편한 최악의 경제상황이다. 이럴 때일수록 숫자놀음에 취해있지 말고 상인들이 내보이는 한숨과 불평을 귀담아들어야 한다.

엊그제는 김정숙 여사가 시장에 등장했다. 문 대통령이 아산지역을 살폈다면, 김 여사는 시장에서 진천과 음성을 챙기려는 의도가 뚜렷했다. 아마 신종코로나 관련하여 아산과 진천지역에 대한 감사와 관심을 내보이고 싶었던 모양이다. 문 대통령의 아산시장 건 탓인지, 이번에는 사전에 철저하게 기획된 것 같다. 특정 물품구입과 상인과의 대화 내용도 철저하게 준비된 것처럼 여겨진다. 대통령과 총리의 민생탐방에서 불거진 구설수를 고려한 탓인지, 이번에는 중소벤처기업부의 협조를 톡톡히 받은 것 같다. 건어물 상회에서 꿀이 대량으로 사전에 준비되어 있었고, 각본(?)에 따라 김 여사는 이를 구입했다. 사전에 철저하게 기획되고 움직인 것이 드러나자 경호실은 중소벤처기업부의 과도한 관심과 배려 탓으로 책임을 돌렸다.

민생시찰이든 탐방이든 포템킨식으론 안 된다. 진정성 없는 민생살피기에 국민이 더 이상 속지 않는다. 차라리 파싸데식으로 나선다면 이미 텅 빈 것을 알기에 외형적인 아름다움이라도 만끽 할 수 있으련만, 포템킨식 보여주기 행위는 자제되어야 한다. 지금은 조선조나 제정 러시아 시대가 아니다. 21세기 개명의 시대다. 그런데도 포템킨 망령이 떠 오르니 참 답답하다. 국민을 어설프게 대하면 어떤 일이 펼쳐질지 모른다. 그래서 지도자는 늘 깨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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