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래호 작가 / 뉴스티앤티
김래호 작가 / 뉴스티앤티

어떤 영화의 이미지는 영화작가 자신의 감정과 상상력의 정수로 충만되어 있으며, 그 이미지는 물리적일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이미지가 된다. 그것들은 감각뿐만 아니라 상상력을 잡도록 의도되어 있으며, 관객 자신의 내적인 사고의 변화하는 움직임을 교묘하게 따라감으로써 감정을 폭발시키는 다이나믹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자연 풍경은 ‘거기에’ 그냥 존재하는 것이다. 초연하게 존재한다. 그것을 즐길 수는 있으나, 그대로 변함없이 멀리 서 있다. 그러나 예술작품으로서의 영화는 우리들을 공격하도록, 우리의 감정과 우리의 신념으로 파고들도록 만들어진 것이다. - 랄프 스티븐슨 / 장 R. 데브릭스.『예술로서의 영화』제1장 서문( 열화당. 1982)

영화가 ‘제7의 예술’로 불리는 것은 그만큼 뒤늦게 등장했다는 뜻이다. 1838년 사진이 발명되었는데 1894년 윌리엄 폴과 H. 웰스의 영화 관련 특허증에는 이렇게 기록되었다. “움직이는 사진의 도움을 빌려 역사를 이야기한다.” 그 ‘다이나믹한 힘’에 실린 이야기는 앞선 장르들의 핍진성을 단숨에 뛰어넘어 대중들의 ‘감정과 신념’을 그러쥐었다. 전통적인 입말과 글말로 창작 활동을 하던 문학가들은 이런 충격에 우려와 기대를 품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전쟁과 평화』(1869),『안나 카레니나』(1877),『부활』(1899) 등의 위대한 대문호- 레프 니콜라이예비치 톨스토이(1828-1910)는 영화의 태동을 지켜보면서 초기의 무성영화를 ‘위대한 벙어리’로 불렀다. 인류 문화사에 ‘말과 그림’은 각기 독립적이고 동등한 기호로 보완적 관계였다. 유성지화有聲之畵 무성지시無聲之詩: 시는 소리 있는 그림이고, 그림은 소리 없는 시다. 미술과 문학, 음악은 한유의 ‘불평즉명不平則鳴’ 곧 무언가 응어리진 인간의 속내를 드러내는 표식으로 동일시 되어왔다. 그러나 톨스토이의 ‘벙어리’는 빠르게 말을 배워나갔고, 사람들은 새로운 소통의 총화인 영화에 열광하기 시작했다. 

영화에서 상징을 사용하고 또 수용하는 범위는 거의 무한정하다. 이를테면 대개의 이야기에서 무대는 강력한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인물이나 그들이 이야기 속에서 담당하는 갈등 또한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그러므로 우리는 필히 영화에서 사용되는 상징적인 의미전달의 특수성을 숙지해야 한다. 어떤 이야기 형태에서든지 상징은 복잡한 개념, 태도, 느낌 등을 암시하거나 대표하는 어떤 것, 이를테면 특정한 대상물, 영상, 인물, 음향, 사건, 장소 등을 가리키며 이에 따라서 그 자체 이외에 의미나 중요성을 갖게 된다. 그러므로 상징은 강력한 의사소통의 단위로서 의미의 창고 같은 역할을 담당한다. 일단 상징이 연상장치로 기능하게 되면 언제든지 어떤 의미를 저장하게 되는 것이다. - 조셉 보그스『영화 보기와 영화 읽기』제3장 극적 요소(제3문학사. 1991) 

나는 영화관에 둘이나 여럿이 함께 가지 않는다. 기실 특정한 책에 대해 토론할 수는 있지만 독서 자체는 결코 함께할 수 없는 독단적 행위다. 수상작 중심으로 선정해 ‘읽는 비평적 영화 감상자’로서 더욱 그렇다. 되도록 맨 뒷 열의 가운데 좌석에서 영화의 시간과 공간으로 여행을 하며 메모한다, 책에 밑줄을 긋듯이. 방송사 TV 프로듀서라는 직업상 그렇게 습관적으로 ‘상징’을 읽어왔는데 이제 퇴직하면서 좀 자유로워졌다. 그런데 작년 5월에 개봉한 봉준호감독의「기생충」은 세 번이나 꼼꼼히 배독했고, 지난 2월 10일에 제92회 아카데미시상식 중계를 지켜보았다. 

총 24개 부문을 14개 섹션에 걸쳐 시상한 아카데미상- 사실 쿠엔틴 타란티노의「원스 어폰의 타임... 인 헐리우드」, 토드 필립스의「조커」, 마틴 스코세이지의「아이리시맨」이 3편을 제외하고는 대다수 국내 미개봉작들이어서 몇 개 부문의 후보인지가 ‘관전’의 포인트였다.「조커」가 11개,「1917」과「... 인 월드」가 각각 10개, 타이카 와이티티의「조조 래빗」과「기생충」이 각각 6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었다. 그런데 세 번째 섹션에서 봉준호감독이 각본상을 수상하면서 기대감이 증폭되기 시작했다. 영화의 밑그림인 시나리오의 작업에 감독이 직접 참여하면 완성도는 그만큼 높아지기 마련이다.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기 때문이다. 

일반인들에게 악보가 그렇듯 한 편의 시나리오를 읽는 것만으로 영화적 체험을 했다고 보기에는 지극히 어렵다. 일단 감상한 다음이 아니라면 그 독해는 가치가 없는데 각본상은 10번째 섹션의 국제장편영화상 수상으로 이어졌다. 촬영 카메라 전방의 사건들: 세팅, 조명, 의상, 배우...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직접 작곡하듯 탄탄한 시나리오의「기생충」이 과연 감독상으로 이어질 것인가? 스콜세이지와 타란티노, 멘데스... 전설적인 거장 감독들을 제치고, 미국 본토가 아닌 변방의 51살 감독이 수상할 것인가? 

마침내 봉감독이 호명되었고, 마지막 섹션의 최우수 작품상Best Film 마저 차지하고 말았다. “아카데미상이 미쳤다”는 탄식이 무색한 개벽적인 사건이었다. 물론 제72회 칸 국제영화제의 대상인 황금종려상에 이어 세계 여러 영화제에서 수상한 만큼 작품성이 높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그러나 흑백영화 시절부터 TV 주말극장 화면에서나 볼 수 있는 오스카 트로피를 4개나 거머쥐다니 믿기지 않았다. 영화평론가를 비롯한 신문기자와 극장업자, 팬들이 투표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판의 현역 출신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 회원들만 행사하는 ‘권리’의 결과였다. 

영화는 우리와 이야기한다. 영화가 이야기할 때 내는 많은 목소리들은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복합적인 대위법을 이루고 있다. ... 언어의 영역에서는 전언의 메커니즘을 그 내용으로부터 구별해 내는 것, 즉 무엇을 말하는가에서 어떻게 말하는가를 구별해 내는 것이 필수적이다. 언어를 논할 때 전자에 집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지만 예술에서는 전언에 의해 전달되는 내용과 언어와의 상관 관계가 다른 기호학적 체계에서와는 다르다. 언어는 내용이 될 수도 있으며 때때로 전언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런 점들 모두가 영화 언어와 관계된다. 특정한 이념적–예술적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영화는, 그 목적을 위해 봉사하며 그 목적과 융합된다. 영화 언어의 이해는 20세기의 가장 대중적인 예술인 영화의 이념적-예술적 기능에 대한 이해로 나아가는 첫걸음일 뿐이다. - 유리 미하일로비치 로트만「영화 기호학」(민음사. 1994)

「기생충」의 아카데미상 4개 부문 수상의 축하, 한류를 비롯한 연일 한국적 문화 현상에 대한 기사들이 쏟아지고 있다.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 그 프로파간다 깃발 아래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 자본화에 내몰린 1960, 70년대의 대한민국- “나도 말 좀 하자!” 80, 90년대 민주화를 거쳐 21세기를 살지만 여전히 급박과 대박, 천박한 3박자의 “너나 잘하세요!” 반목과 편견이 횡횡하는 사회-「기생충」의 공간적 ‘지하와 반지하, 지상’ 그 가족들의 ‘냄새’는 대물림 되고, 발톱이 닳도록 오르락내리락 해도 ‘계단’의 사다리는 이미 걷어 차여졌고, 시간적 ‘빗물과 오물, 핏물’은 지표에서만 한순간 반짝할 뿐 잦아들면 기억조차 없다. 

우리는 전원백수인 송강호 기택네 가족에서 ‘장남’에게 주목할 시점에 이르렀다. 네 번이나 대입에 실패한 장남 최우식 기우는 ‘산경수석’을 발판삼아, ‘계획’을 짜고, 일시적으로 ‘기생충’ 신세를 벗어난다. 하지만 회두리에 눈 쌓인 계곡의 물속에 그 욕망의 ‘돌’을 되돌려 놓는다, 자신의 머리를 찧을뻔했던. 이제 한국사회는 진지하게 성숙한 미래의 시민문화를 논할 때가 되었다. 봉준호감독은「기생충」포스터에서 이렇게 권면한다. ‘같이 살아가는 어려움’에 대한 발제이니, 저마다 ‘갖가지 생각이 다 드는 영화’ 잘들 읽어보시고 토론해보시기 바랍니다.        

미국의 계층간 갈등도 나름 다르지 않다. 박사장 집 아들 다송이는 왜, 그렇게 저택 마당의 인디언텐트를 고집하는가? 이런 측면에서 데이비드 트렌드가『문화 민주주의』에서 내린 결론은 진정 온당하다. “문화는 억압받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억압받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수단이자, 변화의 방법을 찾아내기 위해 분투하는 시민들을 도와주는 매개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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