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9회 제헌절에 헌법학자가 바라본 우리 헌법(憲法)

이한태 법학박사(충남대 법학연구소 전문위원)

17대 국회에서부터 개헌문제가 계속 제기됐다. 하지만 '5년 대통령 단임제'라는 권력구조 문제를 건드릴 수밖에 없는 개헌 문제는 정치적 민감성 때문에 계속 뒤로 미뤄져왔다. 심지어 국정농단의 사회적 파장을 흡수하기 위해 개헌카드를 내밀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하였다. 이번 대선에서도 후보들 마다 개헌의 필요성을 강조하였고, 현 정부 역시 내년 지방선거를 헌법 개정의 기점으로 삼으려 하고 있다.

우리 헌법은 1987년 제9차 개정 후 30년이 되도록 개정이 없었다. 그야말로 헌법은 헌 법이 되어버렸다. 독일의 경우 1949년 헌법이 제정된 이후 현재까지 60여회에 걸쳐 헌법이 개정됐다. 거의 매년 헌법 개정이 이뤄진 셈이다. 헌법 환경이 바뀌면 상응하는 헌법 개정이 있어야 한다. 1987년 개헌 당시까지만 해도 생소했던 세계화, 지식정보사회 등의 새로운 환경을 헌법에 반영해야 한다는 요구와 함께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각과 정치적 비판능력, 지식수준 등이 모두 향상됐다. 현 시점에서의 개헌은 우리나라의 정치문화에 보다 적합한 통치구조의 구축, 국민의 기본권 보장 확대, 다문화사회로의 발전에 따른 법적 대응, 선진국가로의 진입을 대비하기 위한 경제제도의 개혁, 그리고 진정한 지방분권국가의 구현을 통한 국가역량 제고 및 통일에 대비한 법적 토대의 구축 필요성 등의 견지에서 그 필요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또 현재의 헌법 환경은 과거 비민주적 상황과는 다른 시대에 직면해 있다. 기존의 헌법 개정이 대부분 비상적인 정치적 상황 속에서 이뤄진 것이라면 현재 헌법 개정에 대한 논의는 평상시에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 즉 극도의 정치적 혼란 속에서 졸속으로 추진되는 개헌이 아니라 여유를 가지고 헌법 현실과 헌법 규범을 일치시키고 변화된 시대적 상황에 부합하는 헌법 개정을 모색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특히 몇 해 전부터 간간이 거론돼 왔던 헌법개정론이 현 정부를 중심으로 활기를 띄고 있는바 비상시가 아닌 평상시에 전개되는 개헌 논의인 만큼 과거 대통령이 주도하는 방식이 아니라 국민의 공감대를 기초로 국회에서 여야가 합의해 개헌안을 발의하는 것이 대한민국 민주주의 발전과 정치적 성숙을 가늠할 수 있는 큰 의미를 가질 수 있다.

현재 논의 되고 있는 헌법 개정에 대한 주된 주제는 국가권력구조의 분산에 관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대통령제냐 의원내각제냐 또는 이원집정부제냐’하는 식의 수평적 권력구조 형태로서 정부형태에 대한 논의이다. 이는 우리가 아직 우리 현실에 맞는 통치구조를 찾지 못했다는 이야기이고 통치구조의 민주화를 이루지 못했다는 것을 방증해 주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지방분권을 통한 수직적 권력구조의 분권화에 대한 것이다. 지방자치는 민주주의, 권력분립, 기본권보장이라는 중요한 헌법적 기능을 하고 있다. 그러나 현행 헌법은 지방자치관련 조항을 단지 두 개만 둠으로써 헌법이 의도하는 지방분권의 실질적 내용과 수준이 명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구체적 실현에 대해서도 법률에 유보함으로써 국가권력구조의 근본이라고 할 수 있는 수직적 권력분립의 골격이 입법자의 재량에 맡겨져 있는 현실이다. 지방자치법에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간의 사무배분의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하더라도 오랜 시간동안의 중앙집권적 국가체제하의 국가행정중심의 행정체제를 극복하지 못함에 따라 실질적인 지방자치가 구현되지 못하고 일부에서는 무늬만 지방자치라고 하는 비난을 하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과연 우리나라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지방분권의 내용과 수준이 무엇인가 하는 명확한 틀을 헌법에 명시해 지방자치에 관한 법률유보의 한계를 명확히 하고 지방자치제도에 대한 법 논리적 모호함을 종식시켜 실질적 지방자치제도의 구현을 통한 진정한 지방분권을 달성해야 할 것이다.

지난 12~13일 한국리서치에서 실시된 개헌에 대한 국민인식조사 결과 개헌 찬성률이 75.4%로 나타났다. 또 개헌이 국민 삶의 질 향상에 도움 된다는 응답률도 72.8%에 달했다. 이렇게 개헌에 대한 국민의 관심과 열망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 역시 제69회 제헌절을 맞이하여 더 많은 국민들의 개헌의견을 청취하고, 폭넓은 개헌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마련한 개헌 논의 일정을 공개하기도 했다. 그러나 국민투표뿐만 아니라 국회의 재적의원 2/3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하는 개헌절차를 놓고 보았을 때 집권세력이 의석수 120에 불과한 여소야대의 현재의 정치지형 하에서 개헌의 가능성과 그 과정이 녹록치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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