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래호 작가의 밑줄 이야기] ‘5월의 어느 아름다운 아침’을 위하여
[김래호 작가의 밑줄 이야기] ‘5월의 어느 아름다운 아침’을 위하여
  • 김래호 작가
  • 승인 2020.02.04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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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래호 작가 / 뉴스티앤티
김래호 작가 / 뉴스티앤티

마을 사람들은 되나 안되나 쑥덕거렸다. / 봄은 발병났다커니 / 봄은 위독하다커니 // 눈이 휘둥그레진 수소문에 의하면 / 봄은 머언 바닷가에 갓 상륙해서 / 동백꽃 산모퉁이에서 잠시 쉬고 있는 중이라는 말도 있었다. // 그렇지만 봄은 맞아 죽었다는 말도 있었다. / 광증이 난 악한한테 몽둥이 맞고 / 선지피 흘리며 거꾸러지더라는 ...... // 그렇지만 눈이 휘둥그레진 새 수소문에 의하면 / 봄은 뒷동산 바위 밑에, 마을 앞 개울 / 근처에, 그리고 누구네 집 울타리 밑에도, / 몇날 밤 우리들 모르는 새에 이미 숨어 와서 / 몸 단장들을 하고 있는 중이라는 // 말도 있었다. - 신동엽 시(1970년)「봄의 소식」부분 

24×15=360. 보름 간격으로 드는 24절기 그 일습이 1년이다. 지구는 스스로 돌면서 밤낮의 하루를, 달은 대괴를 한 바퀴 돌아 1달을 각각 만든다. 그런 운행에서 지구가 해를 크게 360도 한 번 선회하면 한 해가 된다. 태양은 뜨거나 지지 않는 붙박이로 우주의 유일한 광원이다. 달은 그 빛을 반사해 밤을 적이나 밝힌다. 윤년과 윤달은 해와 달의 서로 다른 주기를 얼추 맞추기 위한 지혜다. 부다익과裒多益寡 칭물평시稱物平施.  현재까지 이런 천문이 밝혀졌는데 앞으로 어떤 무늬가 더 드러날지 알 수 없다. 

2020년 2월 4일- 오늘은 올해 스물네 번 절후의 첫 번째 입춘이다. 그런데 윤년인 경자년의 새봄은 가없이 더디게 올 성싶다. 바로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탓이다. 동엽(1930-1969)의 시구대로 ‘광증이 난 악한’ 한테 몽둥이찜질 당했다, ‘자살해 장사를 지냈다’ 그 풍문이 사실이런가? 설령 뒷동산과 개울, 울타리까지 ‘숨어들어 왔다’ 해도 마중할 사람들 정신없어 ‘서운한 봄’이 몽니를 부릴 수도 있다. 여하튼 봄은 ‘보다’의 명사형으로 무채색에서 무지개 색깔들 되찾는 새뜻한 세상을 보는 계절인데 말이다.  

왜 우리가 눈이 멀게 된 거죠. 모르겠어,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싶어요. 응, 알고 싶어. 나는 우리가 눈이 멀었다가 다시 보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나는 우리가 처음부터 눈이 멀었고, 지금도 눈이 멀었다고 생각해요. 눈은 멀었지만 본다는 건가. 볼 수는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들이란 거죠. - 주제 사라마구 장편소설(1995년) 『눈먼 자들의 도시』    

199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포르투갈의 주제 사라마구J. Saramago(1922-2010)는 환상적 리얼리즘 문학의 대가로 현실과 허구 속에 신랄한 풍자로 인간의 의식 밑바닥을 가차 없이 폭로했다. 1995년에 발표된 『눈먼 자들의 도시』는 대표작으로 전염병 환자에 대한 야만적 폭력을 그리면서도 동시에 인간에 대한 신뢰를 뜨겁게 보여주고 있다. 실인증이나 흑내장 질환이 아닌 그저 눈을 뜨고 있지만 보이지 않는 안과학계에 보고된 바 없는 신종 ‘백색 어둠증’- 

안과의사의 아내는 환자로 가장하고 남편과 함께 임시수용소로 틈입한다. 그녀는 눈먼 자들의 경멸스럽고 외설적인 집단행동에 경악하지만 “다른 사람이 나를 볼 수 없다면, 나도 다른 사람을 볼 권리가 없다!” 다짐하며 그들을 관찰하고, 회두리에 탈출을 돕는다. 이 여성은 ‘194×년 오랑에서 발생한 페스트’의 서술자 곧 의사인 베르나르 리유의 분신이다.        

그래도 그는 이 연대기가 결정적인 승리의 기록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 기록은 다만 공포와 그 공포가 지니고 있는 악착같은 무기에 대항하여 수행해 나가야 했던 것, 그리고 성자가 될 수도 없고 재앙을 용납할 수도 없기에 그 대신 의사가 되겠다고 노력하는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개인적인 고통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수행해 나가야 할 것에 대한 증언일 뿐이다. - 알베르트 카뮈 장편소설(1947년) 『페스트』5부

무서운 전염병으로 일시에 폐쇄된 알제리의 해안 도시 오랑- 리유는 인구 20만 도시의 생이별 그 감옥과 귀양살이, 탈출 시도, 당국의 대처 과정을 가감 없이 기록했다. 1년여의 사투 끝에 페스트가 사라지고 일상으로 복귀하게 되자 의사는 이렇게 상기한다. “페스트균은 결코 죽거나 소멸하지 않으며, 아마 언젠가는 인간들에게 불행과 교훈을 가져다주기 위해서 또다시 저 쥐들을 흔들어 깨워서 어느 행복한 도시로 그것들을 몰아넣어 거기서 죽게 할 날이 올 것이다.”

첫 구상부터 탈고까지 7년이 걸린 『페스트』- 알베르트 카뮈(1913-1960)가 『작가수첩』에 남긴 글은 이 작품을 이해하는 단서가 된다. “한가하고 습관에 젖은 삶 속으로 예고도 없이 들이닥치는 전쟁은 질병이나 죽음과 마찬가지로 부조리하다”, “타루는 자질구레한 일들을 기술하고, 스테판은 일반적인 일들을, 리유는 상대적인 진단을 통한 한 차원 높은 변화 속에서 양자를 화해시킨다.” 여기에서 스테판이라는 인물은 완결판에서 그랑과 랑베르라는 두 인물로 분화되었다. 

랑베르는 파리신문사의 특파원으로 초기에는 탈출을 시도했으나 종당에는 보건대와 합류 환자들을 돌보게 된다. 그랑은 시청의 촉탁서기로 인생의 모진 패배를 맛보았지만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인물군을 표상한다. 그는 헤어진 부인 잔과 다시 만날 그날을 진정 고대하며 이렇게 읊조린다. “5월의 어느 아름다운 아침에, 어떤 날씬한 여인이 눈부신 밤색 암말에 몸을 싣고, 꽃이 만발한 사이를 뚫고 숲의 오솔길을 누비고 있다...”            

”두 개의 도시가 보인다. 하나는 쥐들의 도시이고 다른 하나는 제비들의 도시다.“ 이 신탁은 이렇게 해석되었습니다. 사실 잔인하고 비열한 쥐들의 지배 아래에서, 자주 모습을 보이지 않던 사람들 속에서 이미 제비들의 도약이 준비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제비들은 꼬리를 날쌔게 움직이며 투명한 공중을 향해 올라가 칼 같은 날개로 드넓은 지평선 위에 곡선을 그립니다. ... 두 도시 모두 시간 속에서 변화하겠지만 그들의 관계는 변하지 않습니다. 두 번째 도시는 첫 번째 도시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있는 바로 그 도시입니다. - 이탈로 칼비노 소설(1972년) 『보이지 않는 도시들』제9부 「숨겨진 도시들 3」

젊은 마르코 폴로가 사신으로 다녀온 총 55개 도시를 쿠빌라이 황제에게 소개하는 형식의 『보이지 않는 도시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제국의 성채는 누구나 한 번쯤 가봤음 직한, 가보고 싶은 이국의 땅이다. 실재하지는 않지만 늘상 욕망과 교환, 죽음이 공존하는 가상의 도시는 ‘폐하가 먼지를 일으키며 전쟁에서 획득한 영토, 폴로가 시장에서 자루에 담긴 후추 값을 흥정하는’ 그곳이다. 이탈리아 작가 칼비노(1923-1985)는 시적 소설의 마지막 문단에서 이렇게 권면하고 있다. 

살아 있는 사람들의 지옥은 미래의 어떤 것이 아니라 이미 이곳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지옥에서 살고 있고 함께 지옥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지옥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지옥을 받아들이고 그 지옥이 더 이상 보이지 않을  정도로 그것의 일부분이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 방법은 위험하고 주의를 기울이며 계속 배워나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지옥 한가운데서 지옥 속에 살지 않는 사람과 지옥이 아닌 것을 찾아내려 하고 그것을 구별해 내어 지속시키고 그것들에게 공간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계사전』은 수를 이렇게 주석한다. 1, 2, 3, ... 8, 9, 10. 천지의 수, 홀수의 합은 25이고, 땅의 수, 짝수의 그것은 30인데 합은 55이다. 음과 양의 총합인 이 숫자는 태극 자체이고, 양의 극한 수 ‘9’는 무극 10으로 환원된다. 그렇다. 총 9부의 55개 ‘도시’는 그 어느 곳이든 죄다 지상의 ‘지옥’이다. 고해라고도 부르는 그 대지를 천당으로 일구며, 살아내는 사람들의 눈물겨운 노력을 위무하고 있는 것이다, 칼비노는. 그에게 말빚 진 우리는 반드시 답해야 한다. 여럿이 함께 손잡고, 5월의 어느 아름다운 아침- 기어코 그날 향한 길을 열고 말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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