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장관을 ‘파리 목숨’에 비유하곤 한다. 대통령중심제 국가에서 큰 사안이 발생했을 때마다 대통령이 사임할 수가 없으니 행정 각부의 장관이 대신 책임을 지고 사임하는 것을 빗대어 일컫는 말이다. 반면 검찰총장은 검찰청법 제12조 제3항에 “검찰총장의 임기는 2년으로 하며, 중임할 수 없다.”고 규정하면서 2년의 임기를 보장해주고 있다. 검찰총장의 임기를 2년으로 보장해준 이유는 권력이나 그 어떤 외압에도 휘둘리지 말고 법과 원칙에 따른 수사를 하도록 한 최소한의 조치다.

지난 2일 법무부장관에 임명된 추미애 장관이 8일 검사장급 이상 고위 간부인사를 전격적으로 단행하면서 진영 간의 대립이 다시 격화되고 있다. 추 장관은 지난 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자유한국당 정점식(초선, 경남 통영·고성) 의원의 “추 장관은 검찰 인사를 대통령에게 제청할 때 검찰총장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는 검찰청법 34조를 위반했다”는 주장에 대해 “제가 위반한 것이 아니라 인사에 대한 의견을 내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검찰총장이 저의 명을 거역한 것이라”고 강하게 반박하면서 왕조시대에나 있을 법한 ‘거역’이라는 표현을 운운하며 윤석열 검찰총장이 의견 개진을 하지 않은 것을 문제 삼았다.

취임한지 일주일도 안 돼 부처 업무 파악도 제대로 안 된 추 장관이 검찰 정기인사를 한 달여 남겨 놓은 시점에서 조기인사를 단행했다면, 그에 따른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만 한다. 하지만 이번 검찰 고위간부의 조기인사 단행은 많은 국민들의 눈에 합당한 명분도 없고, 설득력도 없어 보인다.

추 장관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청와대와 집권여당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세력을 제외한 반대 진영이나 중도층에서는 이번 조기인사 단행이 온 국민의 관심을 집중적으로 받고 있는 조국 전 법무부장관 비리 의혹 수사, 6.13 지방선거 당시 울산시장 선거 개입 청와대 하명 의혹 수사,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 비리 의혹 수사를 담당하던 검찰 수뇌부의 전보 발령을 통해 윤석열 검찰총장의 수사를 방해하려 한다는 합리적 의심을 자아내게 하고 있다. 瓜田不納履 李下不整冠(과전불납리 이하부정관)이라고 ‘참외 밭에서는 신발 끈을 고쳐 매지 말고, 오얏나무 아래에서는 갓을 고쳐 쓰지 말라’고 했는데, 추 장관이 이 점을 간과한 것은 아닌가 싶다.

오죽하면 진보진영의 대표 논객인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친문 양아치들의 개그”, “추미애 장관, 당신이 국민의 명을 거역한 것”, “국민이 준 권력을 사유화한 건 당신들”, “바로 당신들이 도둑”이라는 표현을 들어가면서 강도높게 비판한 이유를 청와대나 집권여당은 꼽씹어야 할 것이다. 진 전 교수 이외에도 김경율 전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소장과 ‘88만원 세대’의 저자인 대표적 진보 경제학자 우석훈 박사도 수사방해라는 입장을 피력하면서 이번 검찰 조기인사를 강하게 성토하고 있으며, 박근혜 정부에서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압력에 의해 정직 2개월을 받은 바 있는 서울중앙지법의 김동진 부장판사 역시 자신의 페이스북에 “국민적 선택에 의하여 정권을 획득한 정치적 권력이 어떤 시점에서 그 힘이 강할지라도 헌법정신과 헌법질서에 의하여 반드시 준수해야 할 법적인 규범이 있다”고 강조하며, 이번 검찰 수뇌부 인사를 ‘헌법정신과 헌법질서 배치’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지금 이 시점에서 손발이 모두 잘린 윤석열 총장이 명심했으면 하는 것이 있다. 윤 총장이 지난 2일 국립서울현충원을 참배하면서 “조국에 헌신하신 선열의 뜻을 받들어 국민과 함께 바른 검찰을 만들겠습니다.”라고 방명록에 적어 놓은 것처럼 ‘나는 대한민국 검사다’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오직 국민만 바라보면서 보수와 진보, 여와 야를 가리지 말고, 법과 원칙에 위배되는 행위에 대해서는 국민만 믿고 단호히 맞서기 바란다. 윤 총장은 박근혜 정부에서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수사 이후 대전지검과 대구지검으로 좌천됐던 당시에도 당당함을 잃지 않고, 오뚝이처럼 버텨내 끝내는 대한민국 검찰의 수장인 검찰총장까지 오른 저력이 있다. 윤 총장이 左顧右眄(좌고우면)하지 않으면서 국민을 믿고 끝까지 버텨내 임기 2년을 무사히 마쳐야만 검찰도 살고, 윤 총장 자신 역시 영원히 국민의 마음속에 각인될 수 있으며, 대한민국도 산다는 사실을 잊지 말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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