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준원 박사 / 뉴스티앤티
서준원 박사 / 뉴스티앤티

민의의 전당인 국회가 연일 안팎으로 시달리고 있다. 내년 총선을 위한 선거법을 놓고 ‘4+1(더불어민주당·바른미래당·정의당·민주평화당+대안신당)협의체’와 자유한국당이 지속적인 내홍을 겪고 있다. 국회 바깥에선 연일 보수단체들이 연동형비례제와 공수처 설치 반대를 외치면서 장외투쟁 중이다. 한 해의 마무리가 여의도에선 그 어느 때 보다 어수선하고 혼미스럽다.

국회는 삼권분립 구조의 한 축으로 민의를 담아내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국가기구다. 독재국가나 전체주의에선 행정-입법-사법부 즉 삼권분립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기 마련이다. 정상적인 민주주의 체제 하에서는 삼권의 한 축이 무너지지 않도록 제도적으로 막아 놓고 있다. 대통령과 정부의 권력이 집중화-비대화될수록, 입법부와 사법부의 권위와 위상은 흔들리기 마련이다. 이런 사례는 암울했던 과거의 우리 정치사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삼권분립의 원칙을 지탱해주는 국회의 권위와 위상은 국민이 세워 줄 수 없다. 국회 스스로가 자긍심을 갖고 정도를 가야만 지탱 할 수 있다. 특히 국회의장은 중립적 입장에서 여야 간의 타협과 협치에 진력해야 한다. 국회의장의 역할은 정상적인 의정활동과 민의수렴의 통로를 뚫어주는 데 있다. 여야가 치열하게 대립할수록 국회의장의 중립성이 힘을 발휘해야 한다. 한쪽으로 치우치면 의정활동은 수렁으로 빠져들기 마련이다. 여당 몫으로 내정된 국회의장이 여야를 초월한 위치에서 활동하는 이유다.

안타깝게도 문희상 국회의장은 곤욕을 치르고 있다. 연동형비례제 관련 4+1협의체도 삐걱거리고 자유한국당은 적극 반대하고 있지만, 문 의장의 중재력은 슬그머니 사라졌다. 의장 직권으로 무조건 상정하겠다는 권한행사는 좀 더 신중하게 접근했어야 했다. 4+1협의체에서도 각 당의 이해관계가 엇갈려 진통을 겪는 중이다. 사실, 꼼꼼하게 따져보면 여야를 막론하고 내년 총선에서 서로 살아남겠다는 이른바 현역들의 기득권 고수의 성격이 강하다. 나눠먹기식 분배를 놓고 다투다 보니, 선거법은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것이다. 연동형비례제 계산방식도 어지간한 수학 전문가가 아니면 결과를 도출하기도 쉽지 않을 정도로 복잡하다. 처지가 이러하니, “국민은 선거법을 몰라도 된다“는 식의 기막힌 발언도 나오고 있다. 유권자인 국민을 무시하는 비상식적인 발언이 아닐 수 없다.

선거법은 게임을 위한 룰이다. 이미 예비 총선후보자 등록이 시작되었지만, 선거를 치를 룰이 정해지지 않았으니 깜깜이 선거가 우려된다. 여야가 이성을 잃고 기득권 유지를 위한 진흙탕 싸움을 하고 있으니, 참으로 한심하고 통탄 할 일이다. 이러니 국민 혈세가 아깝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이다. 국회가 이 지경인 데, 문 의장의 아들이 부친의 지역구를 대물림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분위기가 더욱 험악해지고 있다. 아들의 지역구 공천을 염두에 두고 당에 충성하려는 모습으로 내비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역구 대물림의 정당성과 타당성은 차치하더라도, 오얏나무 아래에서 갓을 고쳐 쓰는 모습이 아닐 수 없게 되었다. 그런 오해와 비난을 문 의장 스스로가 자초한 일이라는 지적이 중론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정세균 전 국회의장을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 요청안을 20일 국회에 제출했다. 국회의 권위와 위상을 허무는 기이한 변수가 튀어 나온 것이다. 국가기관의 권위와 위상은 한번 허물어지면 다시 회복하기가 더 힘들다. 나쁜 관례가 형성되면 훗날에도 적용되기 마련이다. 국가 의전서열 5위 자리에, 삼권의 한 축을 대표하는 의전서열 2위인 국회의장이 간다는 자체가 국회로선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전직 국무총리가 국회로 입성하여 국회의장직을 지낸 사례는 있지만, 그 반대 사례는 없었다. 국회의 위상이 추락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는 정 총리 후보자는 자신의 충정을 민의가 헤아려주길 기대하고 있다. 허나, 이런 시도는 또 다른 나쁜 선례로 우리 의정사와 정치사에 부정적 의미로 남을 것이다. 국무총리감이 그렇게 없나. 굳이 전직 국회의장을 국무총리로 불러들이는지 문 대통령의 속내를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궁극적으론 국회의 권위와 위상은 이미 망가질대로 망가진 셈이다. 바깥 날씨가 싸늘하지만, 이를 지켜보는 국민의 맘은 더 차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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