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근호 변호사(전 법무연수원장, 전 대전지·고검장) / 뉴스티앤티

지난 주말 제가 속한 어느 공부 모임에서 제주도로 나들이를 갔습니다. 4개월을 매주 한 번씩 같이 공부했고, 그 공부가 끝난 후에 여러 번 만났으니 제법 친한 사이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잘 아는 사이일까요. 아마도 서로의 명함에 쓰인 정도만 알뿐 성장 과정, 학력, 가족 관계, 현재 하는 일, 관심사 등등에 대해 잘 알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여행 마지막 날 밤 일행 중 일곱 사람이 모여 서로를 알아가는 작업을 하였습니다. 계기는 점심시간 나온 혈액형 이야기 때문이었습니다. 일행 중 몇몇이 각 혈액형의 특성을 설명하며 자신의 성격과 딱 들어맞는다고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올봄 서울대 최인철 교수로부터 심리학 강의를 들은 바가 있어 토를 달았습니다.

"사람의 성격과 혈액형은 상관관계가 없다는 것은 이미 오래 전 결론이 난 사항입니다. 제가 배운 바에 의하면 어떤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아보는데 이런 네 가지 질문이 유용하다고 했습니다."

"1. 전 세계의 누구라도 초대할 수 있다면 누구를 당신의 저녁에 초대하고 싶은가? 그 이유는? 2. 당신이 생각하는 '완벽한 하루(perfect day)는? 3. 현재 당신이 30세이고, 향후 60년을 더 살 수 있다면, 30세의 몸(body)으로 살고 싶은가, 30세의 마음(mind)으로 살고 싶은가? 4. 1년 후에 죽는다면, 당신의 삶에서 바꾸고 싶은 것은?"

제 말에 다들 관심을 보이며 버스로 이동하는 중에 같이 앉은 일행에게 네 가지 질문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저녁을 먹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누군가 같이 모여 이 네 가지 질문을 서로에게 해보자고 제안하였고 그 제안 때문에 일곱 명이 한자리에 모이게 된 것입니다.

먼저 첫 번째 질문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1. 전 세계의 누구라도 초대할 수 있다면 누구를 당신의 저녁에 초대하고 싶은가? 그 이유는?

후배 정형외과 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을 초대하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문 대통령께 정치철학, 정책 등 많은 것을 여쭤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어느 대학원장은 자신의 전공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인 스탠퍼드 대학교 어느 교수님을 초대하여 그분의 생각을 듣고 싶어 하였습니다. 헤드헌터 회사 여성 대표는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을 초대하고 싶어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그의 삶과 생각이 궁금하다는 것이었지만, 아마도 오바마가 현재 무직이라 그분을 헤드헌팅하고 싶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짐로저스를 초대하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퀀텀펀드로 많은 돈을 번 투자가입니다. 그러나 관심이 있는 것은 그의 세계 일주 여행입니다. 그는 1989년~1990년 오토바이로 6개 대륙 160,000킬로미터를 여행하였고, 1999.1.1~2002.1.5 자동차로 116개국 245,000킬로미터를 여행하였습니다. 그를 만나 그 수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었고 저도 그렇게 할 수 있냐고 묻고 싶었습니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나누면서 사람들의 관심사가 참으로 다르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두 번째 질문입니다.

2. 당신이 생각하는 '완벽한 하루(perfect day)는?

이 질문에 대해 서로의 답이 극명하게 갈렸습니다. 먼저 헤드헌터 여성 대표는 어느 날 자고 있어났더니 자신을 괴롭히던 대여섯 가지 문제가 한꺼번에 모두 해결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날이 가장 완벽한 날이었다고 대답하였습니다. 정형외과 원장은 언젠가 여섯 건의 수술이 예정되어 있었는데 하루 종일 그 여섯 건을 완벽하게 수술하고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오늘 내 인생의 최고의 날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며 그날을 퍼펙트 데이로 꼽았습니다. 많은 분들이 과거의 어느 날을 퍼펙트 데이로 말하였습니다. 그분들은 이미 자신의 삶 속에서 퍼펙트 데이를 경험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 질문을 받고 바로 영화의 포스터 한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알랑드롱이 주연하였던 [태양은 가득히]입니다. 알랑드롱이 구릿빛 상체를 드러내고 요트의 키를 잡은 채 먼 곳을 응시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저는 사실 바다나 배운전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동남아에서 여러 번 배를 타고 바다를 나가 보았지만 결말은 불편함과 실망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퍼펙트 데이라는 말에 바로 이 장면이 떠올랐을까요? 반항, 젊음, 도전, 탈출, 미지 등등이 제가 간절히 바라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저는 퍼펙트 데이로 "구릿빛 근육질의 몸을 한 채 요트를 타고 지중해를 돌다가 태양이 작열하는 정오 배 위에 누워 그리스 비극을 읽고 있는 모습"을 꼽았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대학원장은 깜짝 놀라며 책 읽는 것을 빼면 자신이 상상하는 퍼펙트 데이와 똑같다며 놀라워했습니다. 누구는 퍼펙트데이라는 단어를 듣고 머릿속 추억의 폴더를 열고 누구는 상상의 폴더를 열었습니다. 누구는 과거를 바라보고 누구는 미래를 바라봅니다. 이처럼 같은 단어를 듣고도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이는 것이 사람입니다.

세 번째 질문은 "3. 현재 당신이 30세이고, 향후 60년을 더 살 수 있다면, 30세의 몸(body)으로 살고 싶은가, 30세의 마음(mind)으로 살고 싶은가?"입니다.

이 질문은 별 논란이 없었습니다. 모두가 30세의 몸으로 살고 싶어 하였습니다. 정형외과 원장은 오십 중반임에도 자신의 마음은 삼십이라고 우겼습니다. 모두 늙지 않고 싶은 모양입니다. 마음도 몸도.

네 번째 질문에서 서로를 더 깊게 알 수 있었습니다.

4. 1년 후에 죽는다면, 당신의 삶에서 바꾸고 싶은 것은?

은행 간부는 서슴없이 나인투식스의 출근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그에게 출근하지 않으면 무엇을 하고 싶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준비된 대답이 없었습니다. 아마도 직장생활에 찌들어 그곳에서 탈출하는 것만 신경 썼지 그 이후를 고민해 보지 못한 모습이었습니다. 우리네 삶이 다 이렇습니다. 창살에서의 탈출을 꿈꾸지만 탈출한 후에는 어디로 갈 것인지 길을 찾지 못하고 서성대고 말지요.

저와 대학원장은 예상대로 당장 세계 일주 여행을 떠나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들에게 가족은 아무런 고려 대상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정형외과 원장, 여성 기업인, 전시기획사 여성 간부 세 분은 자신의 삶이 1년밖에 남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인생에서 바꿀 것이 전혀 없다고 당당하게 이야기하였습니다. 현재의 삶에 충실하고 만족하는 삶의 자세에서 깊은 존경심이 우러나왔습니다. 자신의 삶과 자신의 꿈이 같이 가는 삶. 우리가 모두 원하는 삶입니다.

저는 여성 기업인에게 바꾸어 질문하였습니다. "바꾸고 싶은 것은 없더라도 하고 싶은 것은 있지 않을까요?" "예 그간 사업이 바빠 아이들에게 밥을 해주지 못하였는데 인생이 1년만 남았다면 장성한 아이들이지만 그들에게 1년간 밥을 해주고 생을 마감하고 싶습니다."

기업인 엄마의 평소 안타까움이 묻어 나왔습니다. "나의 삶에 후회는 없다. 그러나 한가지 못한 일이 있다면 아이들에게 밥을 해주고 싶다." 그분에게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습니다.

삶이 1년 남았을 때 세계 일주 여행을 꿈꾸는 저는 어쩌면 이기적인 철부지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날 밤 우리 일곱 명은 많은 생각을 하였을 것입니다. 서로를 알기 위해 시작한 일이 자신을 돌아보는 일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저의 대답은 지극히 저 자신 중심이었습니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자신 이외의 가족, 직업, 회사 등에 관심과 배려가 있었습니다. 저는 다른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많은 반성을 하였습니다. 삶의 가치관을 보다 더 높은 곳에 두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여러분은 네 가지 질문에 어떤 대답을 하시게 될까요? 그 대답이 여러분의 참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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