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통합청사 입지, 번지수가 틀렸다
대전통합청사 입지, 번지수가 틀렸다
  • 손규성 칼럼니스트
  • 승인 2019.08.27 14: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손규성(전 대전시 일자리특별보좌관)
손규성(전 대전시 일자리특별보좌관)

하나의 실험을 했다. 두 대의 자동차를 한 대는 깨끗한 상태로, 다른 한 대는 유리창을 약간 깨놓은 상태로 자동차 보닛을 둘 다 열어놓고 주차를 시켜 두었다. 놀랄만한 결과가 나왔다.

유리창이 깨진 상태의 차는 10분 만에 배터리가 도난당하고, 이후 타이어도 없어졌으며, 일주일 후에는 완전 폐차 상태까지 갔다. 반면 옆의 깨끗한 상태로 보닛이 열려 있던 차는 어느 부품도 도난당하지 않고 온전하게 보존돼 있었다.

이는 미국 스탠포드대학 심리학자 필립 짐바르도 교수가 실시한 실험으로, 범죄심리학 등에서 널리 퍼진 이론이다. 약간의 비호감적인 환경이나 조건이 연출되면 부정적인 변화는 가속도가 붙어 더욱 급속하게 나빠지게 된다는 결론을 얻었다. 지금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지만, 골목길에 오랫동안 주차된 차량은 모든 것이 깨지고 뜯겨나가 차체만 흉측하게 남은 것을 볼 수 있었다. 이것이 ‘깨진 유리창의 법칙’이다.

뉴욕의 할렘가는 20세기 초반만 하더라도 돈 많은 유태인 등 중산층이상이 사는 좋은 동네였다. 유태인들은 도심을 떠나 교외지역인 강 건너 마당이 있는 뉴저지 등으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빈집들이 생겨나고 흑인들이 이사 오면서 대표적인 할렘가로 변했다. 유현준 홍익대 교수는 그의 책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이런 사실을 전하면서, 깨진 유리창 법칙이 가장 잘 적용되는 도시가 뉴욕 할렘가라고 지적하고 있다.

여러 해 방치돼 대전 원도심 공동화의 상징이던 중구 선화동 옛 충남지방경찰청 터가 ‘대전통합청사’로 탈바꿈된다. 기획재정부는 옛 충남지방경찰청 터에 총사업비 720억 원을 들여 ‘나라키움 대전통합청사’를 건립할 계획이라고 지난 8일 밝혔다. 대전통합청사는 연면적 2만 8694㎡에 지하 2층 지상 9층 규모로 개발된다. 계획대로 오는 2023년 말 청사가 완공되면 대전중부경찰서, 대전세무서, 대전지방교정청, 위치추적 대전관제센터 등 대전지역 4개 행정기관이 들어온다.

기재부는 이런 사실을 밝히면서 “정부통합청사 건립을 통해 지역경제에 활력을 제공하고, 도심 재생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과연 그럴까? 입주예정 기관의 현 위치를 보면 전혀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유성구 대정동 현 대전교도소 내에 있는 대전지방교정청의 이전 합리성에 대한 의문을 제외하더라도, 경찰서와 세무서는 현재 통합청사 예정지에서 불과 500m 이내 거리에 있다. 관제센터는 통합청사 건립예정지 바로 그 자리에 있다.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셈인데, 그것이 어떻게 도심 재생이며 원도심 공동화를 막는다고 말하는지 도통 모르겠다.

옛 충남지방경찰청 터는 충남경찰청이 내포신도시로 이전한 이후 활용되지 않던 낡은 청사로, 2017년 9월 노후청사 복합개발 선도사업지로 선정됐다. 국유지를 활용한 복합개발이라면 외지에 있는 공공기관이 들어오는 용도로 활용하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대전에 있던 기관을 세종특별자치시 등 다른 지역으로 이전토록 하는 대신 경찰청 터를 제공했어야 했다. 그래야만 기재부 스스로 말하듯, “도심 재생, 일자리 창출, 신산업 육성 등 혁신성장과 국민의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할 계획”에 합당한 일이다.

대전세무서 등의 통합청사 입주는 옛도심의 2차 공동화 현상을 초래할 게 뻔하다. 옛 대전지방검찰청과 대전지방법원이 떠난 자리에 들어선 대전세무서는  이 지역의 공동화를 겨우 막고 있는 중이다. 다시 통합청사로 옮긴다면 이 근처는 치명적인 공동화 현상을 가져올 게 틀림없다. 현재도 주변의 많은 사무실과 사업장 터가 빈 공간으로 남아있다. ‘깨진 유리창 법칙’이 적용될 가능성이 아주 높은 것이다. 대전중부경찰서도 이전한다면 그 자리가 도시성장 주도지역에서 벗어난 지역이라는 점에서 대체할 입주기관 찾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무엇보다도 대전시의 통찰력에 아쉬움이 크다. 대전시는 기재부의 통합청사 계획 발표에 맞춰 이전 대상기관인 현 중부서, 세무서 터 활용방안을 마련한다고 발표했으나 사전 준비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기재부와 사전협의가 이뤄진 것인지조차 의문이다. 인근의 공공기관을 통합청사에 몰아넣으려는 계획에 대해 반대하거나, 이전을 한다면 떠난 자리의 공동화 방지대책을 요구했어야 했다. 

옛 충남도청과 충남경찰청 자리는 활용방안 결정에 특별히 신중을 기해야 한다. 원도심 공동화와 그에 따른 지역경제 침체, 동서지역 불균형 발전의 대표성을 갖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 지역에 대한 새로운 기능 배치와 활용은  그동안 원도심 활성화를 위해 1조원이 넘는 재정투자에 대한 총결산의 의미를 갖는다. 원도심 공동화 문제의 해결은 대전 동쪽의 기능과 역할이 되살아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지금까지 오랫동안 유휴지로 남았지만 최종 활용방안에 대한 기대와 가치가 그 어느 곳보다 높은 것도 이 때문이다. 

현재 대전시가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혁신도시 지정과 그에 따른 공공기관 입지에서 가장 각광을 받는 곳이 옛 충남도청과 경찰청 터이다. 대전이 혁신도시로 지정받으면 최소 10개 이상의 수도권 공공기관이 이전해 올 것으로 기대된다. 이전하는 수도권 공공기관은 반드시 원도심 지역에 배치돼 원도심 활성화의 강력한 수단이 되도록 한다는 것이 현 문재인 정부의 계획이다. 중구지역의 공동화 해소를 위해서는 적어도 3~4개 기관이 중구에 배치돼야 한다. 그 입지가 바로 옛 도청과 경찰청 자리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이 터의 활용을 섣불리 결정해서는 안 된다. 

더욱이 수도권 공공기관 이전 대상이 현재 논의되고 있는 122개 이외에도 공공기관과 그 자회사, 출자회사, 재출자회사 등을 포함한 489개 기관을 모두 이전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전 국가균형발전위원장인 이민원 광주대 교수는 8월 26일 국회에서 열린 ‘공공기관 이전 시즌2 어떻게 할 것인가’ 토론회에서 이렇게 제안했다. 그가 추가이전이 필요하다고 밝힌 공공기관은 210곳, 공공기관이 투자하거나 출자한 회사 279곳도 새롭게 지방으로 이전해야 한다고 제안한 것이다. 토론자들도 “혁신도시가 국가균형발전을 위한 실질적인 신지역성장 거점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공공기관 추가 이전이 적극적으로 고려돼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런 가변적 상황에서는 대전시의 고도의 통찰력이 요구된다. 인근 기관들을 모음으로써 제2의 공동화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은 통합청사 건립은 혁신도시 지정에 성공할 경우, 더 크고 많은 문제를 야기할 게 분명해 보인다. 더욱이 방송통신위원회 등 489개 공공기관이 추가로 이전해야 한다는 논의가 시작되는 시점에서 통합청사 입지와 건립문제는 더욱 신중해야 한다. 대전 재도약의 계기가 될 공공기관 이전문제에 대해 대전시가 고도의 전략적 사고와 통찰력을 십분 발휘하리라 기대한다.

2019. 8. 27. 전 대전광역시 일자리특별보좌관 손규성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