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삼 전 육군참모총장 일대기(원제 : 내 짧은 일생 영원한 조국을 위하여)

이진삼 장군 / © 뉴스티앤티
이진삼 장군 / © 뉴스티앤티

샛길에서 나와

때를 기다렸다. 내 꿈은 전투부대 전투군인으로 기회만 살피고 있었다. 남들은 그 좋은 부대를 왜 나오려고 하느냐고 하지만, 내 길은 원래 그 길이 아니었다. 내 인생에 있어서 방첩대에서 특공대장, 파월 기동대장, 부대 대공과장, 사단 보안부대장, 보안사령부 인사과장까지 7년의 기간은 샛길이었다. 화려한 버섯일수록 독을 품고 있는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선망하는 자리는 내게 있어 화려한 독버섯에 지나지 않았다. 1970년 10월부터 2년 예정인 직책을 사령관에게 사양하고 1971년 8월 10개월 보직을 끝으로 보안사령부를 떠났다. 기회는 항상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머뭇거리거나 적극적이지 못한 사람은 모든 것이 불가능해 보인다. 야전 대대장인 전투지휘관으로 복귀하기 위해 육군대학을 자원해서 갔다.

영국 극작가 버나드 쇼의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라는 비문(碑文)처럼 나는 내 삶에 우물쭈물할 틈을 주지 않았다.

김재규의 복귀 요청과 강창성의 표창장

김 사령관은 내가 인사과장을 끝으로 육군대학을 지원하자 육군대학을 마치면 미처 주지 못한 ‘훈장’과 ‘영웅’ 칭호를 주겠다고 하면서 내 생각과 다르게 육군대학을 마치면 다시 보안부대로 돌아와 함께 근무할 것을 당부했다. 하지만 그는 내가 육군대학에 간 지 얼마 되지 않아 3군단장으로 부임하였다.

그 뒤를 이어 강창성 장군이 보안사령관으로 부임하였다. 1972년 1월 22일, 소장 강창성 장군은 육군대학에 다니고 있던 나를 불렀다. 내게 표창장과 트로피를 주면서 학비 명목의 봉투를 건넸다. 나와는 함께 근무한 적은 없지만 지난 보안부대 근무 시 공로를 생각해서 주는 것이라 했다.

“내가 부임해서 들으니 이 중령이 육군대학으로 가면서 보안사에 복귀하지 않고 야전대대장을 희망한다는 보고를 받았다. 대한민국 군인, 경찰, 대공요원들 중 누구도 할 수 없는 많은 공비 간첩을 생명 걸고 잡는 성과를 거양했고, 대북 응징보복작전, 1·21 김신조 청와대습격 사건 등 위험한 작전을 수행한 유일무이한 공로자 아닌가. 대대장 끝나면 대공 분야에서 실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보안사령부 전입을 요청하겠으니 대답해주길 바란다.”

나의 경력과 평점표를 보면서 말하였다. 나는 그의 말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육군대학으로

부대의 우열은 간부의 우열에 비례한다

이진삼

육군대학은 소령은 1년 과정이고 중령은 6개월 과정이다. 나는 중령 예정자였기에 단기 33기를 신청하였으나 때가 늦었다. 그때였다. 33기 명단 중에 낯익은 이름 석 자가 눈에 띄었다. 다름 아닌 소령 이진백이었다. 육군본부에서는 동생 이진백을 빼고 그 자리에 형인 나를 입교자 명단에 포함시켰다. 동생 이진백은 다음 기로 입교토록 조정되었다.

나는 이미 육군대학 교재를 획득 예습하면서 부족하다 싶었던 학과는 보충했다. 그 결과 150여 명 중 2등을 했다.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대위시절, 고등군사반 입교 전에도 교재를 입수하여 1년 전부터 예습한 덕분에 우등을 할 수 있었다. 이런 나를 지켜보았던 선후배 장교들은 “그럼 그렇지, 이진삼이 우등이라니? 보안부대 근무하면서 고등군사반과 육군대학 가기 전에 선배들 교재를 가지고 이미 공부를 했으니 우등이지.”라며 초등군사반, 모든 과정 탑이었던 것을 화제 삼았다.

군 보수교육은 낙제가 없다. 졸업만 하면 된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나는 졸업 후 군인으로서 지휘관 참모 등 임무수행을 잘하기 위하여 공부했을 뿐이다. ‘미리 알고 미리 막는 슬기로운 간부가 되자.’ 말보다는 실천, 계획보다는 결과다.

 

대대장

육군대학 졸업 1개월 전부터 여덟 군데에서 대대장으로 요청했다. 수경사의 윤필용 소장을 비롯한 수기사단장 신현수 소장, 5사단장 정병주 소장, 26사단장 김진구 소장, 7사단장 차규헌 소장, 30사단장 곽영배 소장, 8사단장 장봉천 소장, 1공수여단장 전두환 준장, 8사단 21연대장 노태우 대령도 나를 요청했다. 서울 지역을 벗어난 8사단 21연대장 노태우 대령 휘하 3대대장으로 지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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