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래호 작가의 밑줄 이야기] ‘육사’라 쓰고 ‘기다림’으로 새기는 8월
[김래호 작가의 밑줄 이야기] ‘육사’라 쓰고 ‘기다림’으로 새기는 8월
  • 김래호 작가
  • 승인 2019.08.16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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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래호 작가 / 뉴스티앤티
김래호 작가 / 뉴스티앤티

동방은 하늘도 다 끝나고 / 비 한 방울 나리잖는 그 땅에도 / 오히려 꽃은 빨갛게 피지 않는가 / 내 목숨을 꾸며 쉬임없는 날이여 // 북쪽 툰드라에도 찬 새벽은 / 눈 속 깊이 꽃 맹아리가 옴작거려 / 제비떼 까맣게 날아오길 기다리나니 / 마침내 저버리지 못할 약속이여! // 한바다 복판 용솟음치는 곳 / 바랍결 따라 타오르는 꽃城에는 / 나비처럼 취하는 회상의 무리들아 / 오늘 내 여기서 너를 불러보리라 – 이육사 시「꽃」전문(1945년 유고작)

인도의 고대 경전『바가다드 기타』에 따르면 사람의 몸은 “아홉 개의 구멍이 난 상처”인데 그 상처를 다독이며 살다가 떠나는 게 인생이다. 여기에 한비자는 사지를 합쳐 “생사의 부속물이 13개”라고 ‘해로’했다. 노자『도덕경』제50장의 ‘출생입사’를 그렇게 해석한 것인데 순우리말인 ‘구멍’과 비견되는 정언들이다. 이육사는 ‘꽃성’이 환하게 열리기 바로 전해인 1944년 1월 16일 중국 땅에서 절명했다. 목구멍과 숨구멍을 합쳐 ‘목숨’이라 부르거늘 ‘쉬임없는 날’의 상처를 더 이상 다스리지 못하게 된 것이다.

내 길을 사랑하는 마음, 그것은 내 자신에 희생을 요구하는 노력이오. 이래서 나는 내 기백을 키우고 길러서 금강심에서 나오는 내 시를 쓸지언정 유언은 쓰지 않겠소. ...... 다만 나에게는 행동의 연속만이 있을 따름이오. 행동은 말이 아니고 나에게는 시를 생각는다는 것도 행동이 되는 까닭이오. - 이육사 수필「계절의 오행五行」(1938년) 부분

해마다 8월이면 톺아보는 이육사의 시편들- 원록源祿은 조선의 대학자 퇴계 이황선생의 14대 후손으로 1904년 4월 경북 안동군 도산면 원촌동에서 태어났다. 원삼源三의 유년시절은 사서삼경을 외우고, 영창하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 그 유학자로서의 터전을 닦는 시기였다. 만약 일제강점기가 없었다면 명문가 자손으로 순탄한 삶을 살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활活은 17번이나 수감 되었고, 수인번호 ‘264’를 필명으로 마침내 ‘행동하는 시’ 쓰기에 나섰다.

본래 육사의 ‘내 길’은 일본과 중국의 유학을 거치면서 당시 급변하는 식민지의‘정치와 경제, 문화’에 대한 평론가였다. 실제로 시사평론과 문예비평 등 30여 편의 산문을 남겼다. 한편으로 32살에 위당 정인보선생에게 지도를 받으면서 본격적으로 운문의 시작 활동을 병행하게 된다, 육사의 시는 2002년 발굴된 3편을 합쳐 총 40편에 지나지 않는다.

매운 계절의 채찍에 갈겨 / 마침내 북방으로 휩쓸려오다 //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 / 서릿발 칼날진 그 우에 서다 // 어데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 한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 // 이러매 눈감아 생각해볼밖에 /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보다. - 이육사 시「절정絶頂」전문(1940년)

이육사의 삶과 시가 도달한,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극점- 한 발도 내디딜 수 없는 단애에 선 심정은 어떤 것이었을까? 무릎이라도 꿇으면 그 누가 있어, 그 어떤 일이라도 용서해주고, 새로운 길을 터줄 것인가? 여기까지 오면서 그토록 목매던 그리움과 기다림은 짜장 막을 내리고 마는 것인가? 그러나 그 절정에서 눈 감으니 영롱한 무지개가 떠오른다. 겨울의 고원이지만 닭 우는 소리 들리고, 큰 강물이 길을 열던 ‘광야’에, ‘청포도’가 익고, ‘꽃’이 피는 여름- 그 ‘5행’의 다섯 번째 무한의 계절이 펼쳐진 것이다.

휠더린이 시의 본질을 새로이 건설할 때, 그때에야 비로소 그는 새로운 시간을 규정하게 된다. 이 시간은 가버린 신들과 다가올 사이에 있는 시간이다. 이 시간이야말로 궁핍한 시간인 것이다. 왜 그러한가? 이 시간은 가버린 신이 이제 없다는 점과 다가올 것이 아직도 없다, 그러기에 두 겹의 허무와 결핍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 마틴 하이데거 평론「휠더린과 시의 본질」(1936년) 부분

하이데거(1889-1976)는 살아생전 평가를 받지 못하고, 시집 한 권 나오지 않은 휠더린(1770-1843)을 불러내 ‘시인 중의 시인’이라며 상찬하고 독일 최대의 시성으로 추대했다. 그는 ‘시의 본질은 역사라는 시간을 앞서간다’고 단언하면서 그 허무와 궁핍, 공허와 맞서는 시인은 들려주고, 알려줄 ‘말’이 너무나 많다고 석명했다.

제비야 / 너도 고향이 있느냐 // 그래도 강남을 간다니 / 저노픈 재우에 힌구름 한쪼각 // 제깃에 무드면 / 두날개가 촉촉이 젓겠구나 // 가다가 푸른숲우를 지나거든 / 홧홧한 네 가슴을 식혀나가렴 // 불행이 사막에 떠러져 타죽어도 / 아이서려야 않겠지 // 그야 한떼 나라도 홀로 높고 빨라 / 어느때나 외로운 넋이였거니 // 그곳에 푸른하늘이 열리면 / 엇저면 내새고장도 될범하이 – 이육사 시「잃어진 고향」(2002년 발굴)

검거와 투옥, 탄압으로 점철된 마흔한 해의 이육사- 그를 반제국주의 투쟁, 항일의 독립운동가, 민족시인으로 부르든, 완성도가 조금 떨어지는 미완의 ‘시인’으로 부르든 시 자체는 변함이 없다. “매 시대 마다는 그 시대의 고통이 있다”는 호이징가의 말처럼 몸과 마음 부리며 사는 한뉘에 어찌 행복하고 평안한 나날만 지속 되겠는가?

심기가 조금이라도 불편하거나 바라는 일에 대해 조급증이 날 때면 육사의 시집을 펼칠 일이다. 하면 모두, 죄다 그 누구, 무엇이라도 ‘외로운 넋’이고, 푸른 하늘의 ‘새 고장’ 그리고, 기다리며 살아간다는 것을 깨치리라. 육사는 단 한 편만 쓴 소설「황엽전黃葉箋」에서 이렇게 사람들에게 위무하고 권면한다.

사람들은 이빨을 물고 있는 힘을 다하야 전진합니다. 지나온 길이 얼마이며 가야 할 길이 얼마인 것도 모르면서 죽으나 사나 가야 한다는 것밖에는, 그들은 한 사람도 자기만을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들의 동반자의 발소리와 호흡이 그들과 같은 운명을 결정한다는 것은 이 잔혹한 자연과 싸워가는 무리들의 금과옥조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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