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당산성

사적 제212호 ( 지정), 충북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


사적 제212호, 지정면적 180,826㎡ 원래 그 자리에 백제시대부터 토성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되는 상당산성은 1716년(숙종 42) 석성으로 개축되었다.

백제시대에 청주목(淸州牧)이 상당현(上黨縣)이라 불렸고, 숙종 때 축성기록에 '상당기지 개석축(上黨基地 改石築)'이라는 기록이 이를 뒷받침 한다.

8부능선에서 시작하여 성안의 골짜기를 포함하고 있는 동서의 등성이를 타고 사행(蛇行)하는 성벽은 네모나게 다듬은 화강암으로 쌓았으며, 4.2㎞의 유구가 잘 남아 있는 서벽과 동벽의 높이는 약 3~4m에 이른다.

성벽은 비교적 잘 남아 있으나 성벽 위에 설치하였던 성가퀴는 전혀 남아 있지 않다.
* 성가퀴(城堞) : 성 위에 낮게 쌓은 담

성벽의 안쪽은 돌을 꺠뜨려 틈을 메운 뒤 흙은 채우고 다지는 공법을 사용하였다.

정상에 오르면 서쪽으로 청주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여 서쪽을 방어하기 위하여 축성된 것임을 알 수 있다.

현재 남아 있는 성곽시설로는 남문을 비롯하여 동문과 서문, 3개의 치성(稚城), 2개의 암문(暗門), 2곳의 장대(將臺), 15개의 포루(砲樓)터 외에 성안 주둔병력의 식수를 대기 위한 크고 작은 2곳의 연못이 있다.
* 치성(稚城) : 성벽에서 돌출시켜 쌓은 성벽
* 암문(暗門) : 누각이 없이 적에게 보이지 않게 숨겨 만든 성문

정문인 남문 주변에는 3개의 치성과 장대, 4곳의 포루가 설치되어 있다.

숙종 때의 개축 이후에도 1731년(영조 7) 남문 문루를 세우는 등 대대적인 보수를 하였으며, 1802년(순조 2) 1176개의 첩(堞)을 시설하여 산성으로서의 완벽한 격식을 갖추게 되었다.

그 뒤 성벽이 퇴락하고 문루가 모두 없어져 버렸는데, 1971년 석축 부분을 개축하였고, 1977년부터 1980년까지 남문·서문·동문의 누문을 모두 복원하였다.

일부에서는 이 산성을 삼국시대 김유신(金庾信)장군의 전적지인 낭비성(娘臂城)으로 비정하기도 하나 확실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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