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완용 수필가
김완용 수필가

따가운 햇살이 연둣빛 잎새를 뒤적인다. 봄날이 그렇게 가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에 한 해의 문을 여는 첫 계절 봄이 왔나 싶었는데, 어느덧 초여름으로 접어들었다. 녹색 옷을 갈아입는 잎새들이 바람에 제법 나풀거린다. 요즈음은 온난화 현상이라 그런지 뚜렷한 변화 없이 사계가 오고 간다. 계절의 변화만큼 사람들의 살아가는 방법들도 많이 달라졌다. 다만 달라지지 않는 것이 있다면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일 것이다.

봄에서 여름으로 가는 세월의 길목에는 행사도 많다. 먼저 5월은 가정의 달이었다. 효(孝) 문화가 사라지 는 시대에 각종 매체를 통해서 효에 관련된 이야기들로 몇 번이나 눈시울을 적셨는지 모른다. 자식들이 어버이를 생각하는 아름다운 이야기들은 우리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패륜이 저지른 불효자식들의 이야기는 분노의 눈물을 자아낸다. 그래도 세상은 불효의 자식보다 효도하는 자식들이 더 많은 듯싶다. 어버이날에 많은 카네이션이 팔리고, 선물들이 팔리는 것을 보면 나라의 장래가 염려된다고만 말할 수 없다.

요즈음 어느 가정이나 자식들이 장성하면 부모를 버리고 분가하여 저희들끼리 따로 살려고 한다. 자립심을 기르는 데에는 좋은 효과 같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 그들이 경제적인 도움은 부모에게 의존하고 있다. 그 경제적 도움이 없으면 부모를 살해하는, 상상도 못할 일들도 있다. 효와 불효가 무엇인가? 효란 물질적 보상이 아니라 마음의 표현만으로도 충분하다.

현대문명이 만들어낸 인간 소외의 사회에서 이산가족처럼 혼자 살아가야 하는 부모는 그래도 자식들을 그리워하고 걱정을 한다. 그것은 기우(杞憂)가 아니겠는가? 기우(杞憂)란 ‘쓸데없는 걱정’이란 뜻으로 기(杞)나라의 어떤 사람이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질까봐 걱정을 하다가 급기야는 식음을 전폐하고 드러누웠다는 고사에서 유래된 말이다. 부모의 마음은 언제나 자식을 생각할 때 기우와 같은 마음으로 살아간다.

옛날 말에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 말이 있다. 그것은 열 자식이 있어도 모두 하나같이 부모가 보기에는 중요한 존재의 가치라는 뜻이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보다 더 많이 부모를 그리워하는 자식들이 얼마나 될까? 현대사회가 만들어 낸 핵가족시대에 살고 있는 젊은이들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부모처럼 자식들은 항상 가슴에 부모를 묻고 살아가지 않는다. 먹고 살기에 바쁘다는 핑계로 명절이나 생신, 일 년에 한 번 찾아오는 어버이날에 부모를 기억해 낼 정도이다. 그러니 자식의 생각과 부모의 생각은 엄청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파란만장한 가정의 달 5월이 아카시아 꽃향기 속으로 날라 가고, 장미넝쿨이 담장을 기어 올라가며 붉게 꽃을 피우는 6월을 맞는다. 6월은 호국의 달이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에서 호국의 달에는 우리들 마음을 더욱 슬프게 한다. 조국을 위하여 산화해 간 영령들이 묻혀 있는 현충원에 가보면 수많은 묘비들마다 깊은 사연이 서려 있다.

내가 36년의 군 생활을 마무리하면서 마지막 삶의 둥지를 마련한 곳이 대전국립현충원근처의 아파트단지이다. 내 젊은 시절 가정을 이루었고, 자식들을 키워낸 서울로 다시 올라가자니 복잡한 환경들이 싫었고, 고향으로 돌아가자니 너무 오랜 세월 떠나 지내던 고향은 타향보다 더 낯설었다. 타관생활 오래 하는 직업군인들의 마음은 다 같은 생각일 것이다.

그래서 최종 근무지였던 계룡산 언저리에 삶의 짐을 내려놓았다. 전역 후 유독 갈 만한 곳이 없다는 것도 핑계의 하나지만, 죽어서도 자식들이 쉽게 찾아올 수 있는 현충원이 가까이 있다는 이유도 있었다. 그것은 자식들에게 베풀 수 있는 부모의 마지막 배려의 몫이기도 했다.

그렇게 시작된 현충원근교의 생활은 내 안식처가 되었으며, 주말이면 찾아오는 묘비의 자손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머지않은 미래의 내 가족들 모습을 보는 것만 같았다.

수시로 지나다니던 길목이지만 국립현충원 앞을 지나칠 때마다 차창에 어른거리는 할머니 한 분을 언제나 만날 수 있다. 그분의 기막힌 사연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현충원 입구 먼지 낀 축대 옆에서 사계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꽃을 파는 할머니다. 향기 대신 영혼을 얹은 조화(造花)를 판다. 할머니의 손끝에서는 봄·여름·가을꽃이 함께 어우러져 지나가는 추모객들을 부른다. 죽음을 섞어 만든 화사한 꽃을 요령(鐃鈴)처럼 흔들어야 사는 할머니, 그는 가슴 속에 묻어둔 그리움이 있었다.

일찍이 동족상잔의 전쟁터에서 남편이 전사하고, 청상의 몸으로 키워냈던 아들이 월남전에서 또 전사했다고 한다. 그 두 영혼이 현충원내의 수만 개 차가운 묘비들 속에 그리움으로 섞여 있단다. 할머니는 추모객들을 상대로 조화를 팔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기도 하지만, 결정적 이유는 사랑하는 가족의 곁을 떠날 수 없어 현충원 주변을 맴돌고 있다는 가슴 뜨거운 이야기이다.

이렇듯 부모의 사랑은 영원하다. 할머니의 손에 담긴 화사한 꽃 같은 마음이 가족의 사랑으로 이어지고 있다. 진혼곡(鎭魂曲) 나팔소리 울려 퍼지는 계룡산 언저리, 사랑의 꽃이 피는 할머니의 손끝에서 시작한 사랑의 향기가 온 누리에 퍼졌으면 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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