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놈들의 발굽에 채이기 싫다"
"왜놈들의 발굽에 채이기 싫다"
  • 박기봉 기자
  • 승인 2019.07.11 1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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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유적 탐방] 청주 신채호사당 및 묘소 - 충북 청주시

청주 신채호사당 및 묘소

충북도 기념물 제90호(1993. 11. 5 지정), 청주시 상당구 낭성면 귀래길 249


일제강점기시대 독립운동가·역사가·언론인이었던 단재 신채호(1880~1936) 선생의 사당 및 묘소이다.

20세에 성균관박사가 되었으며, 황성신문의 기자로 논설을 쓰며 불법적인 을사조약 체결을 단호히 배격하였고, 대한매일신보에 초빙되어 주필로서 국권회복, 민족의식 고취에 공헌하였다.

28세 무렵에 이동녕·안창호 선생 등과 함께 항일비밀결사인 신민회를 조직하였으며, 1910년 해외에 망명한 후 본격적으로 국사 연구에 힘써 '조선상고사', '조선사연구초' 등의 저서들을 집필하였다.

1919년 상해임시정부수립 후에는 의정원 전원위원장으로 독립운동에 힘을 기울였고, 1929년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여순(旅順)감옥에서 복역하던 중 순국하였다.

1962년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이 수여되었고, 1978~1979년 사이에 묘역을 정화하고 이 곳에 사당을 세웠다.

사당은 앞면 3칸·옆면 1칸으로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의 간결한 맞배지붕집이다.

정면에 '단재영각(丹齋影閣)'이라는 현판이 걸려있고, 사당 앞에 '정기문(正氣門)'이라 이름 붙인 대문을 세우고 둘레에는 담장을 둘렀다.

 

[백남우/ 문화관광 해설사]

그 당시 묘소는 정식적으로 갖춘 것이 아니라 거의 몰래 썼다.

단재 선생의 유언으로 독립되지 않은 조선 땅에 왜놈들의 발굽에 채이기가 싫다. "나를 화장해서 바다에 뿌려라" 그게 유언이었다.

하지만 가족들 입장에서는 그럴 수가 없기에 화장 후 이곳까지 가지고 왔다.

이곳에 도착 후 친척 집에서 하룻밤을 묵고, 다음 날 이곳에(현 사당 위치) 와서 암장 수준으로 했다.

처음에는 초라했는데 해방 후 묘를 크게 했다.

자부께서 '현 묘소(현 사당 위치)는 물도 나고, 겨울에 응달지고 안 좋다' 해서, '원래 이곳은 사람이 살던 곳인데 남향이고 따뜻하고' 해서 자부이신 이덕남 여사의 주장으로 이곳으로 모시게 되었다.

8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할아버지 신성우를 따라 족향(族鄕)인 현재의 행정구역으로는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낭성면 귀래리 고두미 마을로 옮겨와 할아버지의 서당에서 한학을 공부하였다.

그 집터 자리에 묘를 쓴 것이다.

 

묘소는 선생이 어린 시절에 살던 옛 집터에 안정한 것으로 묘역에는 한용운 등이 세운 묘표석과 1972년 세운 사적비가 있다.

1888년 신채호 선생이 심은 모과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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