뮨희봉 평론가
뮨희봉 평론가

문재인 정부가 만들어 올 3월부터 초등학교 6학년들이 배우고 있는 국정(國定) 사회 교과서에는 종전 교과서에 있던 '1948년 12월 국제연합은 대한민국 정부를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로 승인하였다.'는 부분이 통째로 빠졌다. 이에 대해 "대한민국 정통성을 훼손한다."는 지적이 정치권·학계에서 쏟아지자, 해당 교과서 집필을 총괄한 한춘희 부산교대 교수가 28일 공식 입장을 교육부를 통해 발표했다.

한 교수는 "1948년 12월 유엔총회 결의에 언급된 '유일 합법 정부'의 인정 범위를 한반도 남쪽으로 할 것인지, 한반도 전체로 할 것인지에 대한 논란이 지속적으로 있다."면서 "(대한민국이 한반도 유일한 합법 정부라는 서술을 뺀 것은) 대한민국을 유일한 합법 정부로 승인한 1948년 유엔 총회 결의는 한반도 전체가 아니라 유엔 임시위원단 협의 및 감시 아래 선거가 벌어진 38선 이남 지역에 한정된 것이라는 역사학계 요구에 따른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는 유엔 총회 결의의 앞·뒷부분을 연결하며 빚어진 오역(誤譯)에서 빚어진 해석으로 그동안 일부 좌파 역사학자들이 주장해 온 내용이다. 대한민국이 1948년 유엔이 인정한 한반도 유일한 합법 정부가 맞는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유엔 총회 결의 195조2항은 "그리고 이것은 한반도에서 유일한 그런(합법) 정부임을 선언한다(and that this is the only such Government in Korea)."고 되어 있다.

한 교수는 그러면서 "남북한이 1991년 유엔에 동시 가입했으므로 (대한민국이) '한반도 유일 합법 정부'라는 표현은 적절치 않다."고 했다. 헌법학자들은 "이는 대한민국의 영토가 한반도 전체라는 헌법 조항에 위배될 뿐 아니라, 북한이 우리랑 똑같은 합법 정부라는 식의 궤변에 가까운 주장을 담고 있다."고 우려했다. 헌법학자인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법 제3조 영토 조항은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로 한다.'고 정의하는데, 그 의미는 북한은 반(反)국가 단체, 불법 집단이고, 한반도 전체가 대한민국의 영토임을 선언한 것"이라면서 "대한민국이 한반도 유일 합법 정부가 아니라는 얘기는 북한도 합법 정부라는 주장으로, 말도 안 되는 역사 인식"이라고 했다. 장 교수는 이어 "남북한이 1991년 유엔에 동시 가입했다고 해서 북한이 대한민국과 대등한 합법 정부가 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면서 "그런 주장은 북한을 여전히 반국가 단체, 불법 집단이라고 판단하고 있는 우리나라 최고 유권 해석 기관인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의 결정에도 정면 위배된다."고 했다. 그는 "어린 학생들이 배우는 역사 교과서인데 이런 사실을 모르고 썼다면 집필자 자격이 없는 것이고, 알고 그렇게 썼다면 대한민국 정체성을 무시한 것"이라고 했다.

해당 교과서는 또 우리나라에 대해선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다.'고 서술하면서, 북한 정권은 '1948년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이 수립되었다.'고 서술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정부'를 수립하고, 북한은 '나라'를 세웠다는 식으로 서술한 것인데,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해치는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기존 초등교과서는 우리나라는 '대한민국이 수립됐다.'고 썼고, 북한은 '북한 정권을 수립했다.'고 썼었다. 이를 이 시점에서 굳이 우리나라에 대해선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다.'고 서술하고, 북한 정권은 '1948년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이 수립되었다.'고 서술할 필요성이 있는가 되묻고 싶다.

불법 수정된 사회 교과서는 지난해 전국 6,064개 초등학교, 43만 명이 넘는 초등학생에게 배포됐다. 교육과정이 바뀌면서 올해 초등 6학년들은 문재인 정부가 새롭게 집필한 또 다른 국정교과서로 공부하고 있다. 이날 간담회에서는 "올해 배포된 교과서도 집필진 동의 없이 무단 수정이 이뤄졌다."는 의혹이 추가로 제기됐다. 홍후조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는 "올해부터 새롭게 배포된 초등학교 사회 교과서 64쪽에는 1948년 대한민국이 '정부'를 수립했다고 기술된 데 반해, 북한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나라'를 세웠다고 적혀 있다."면서 "이는 집필자들의 손을 떠날 때에는 없었던 대목으로, 교육부에서 최종적으로 수정한 것으로 의심된다."고 하고 있으니 어안이 벙벙하다. 홍 교수는 "교과서에 실린 51매의 사진 가운데 34매가 집회 사진으로, '우리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취지의 시위 격문을 써 오라고 한 부분도 있다."며 "이런 교과서로 가르치는 것은 어린아이들의 정신을 제 마음대로 유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이는 편향된 교육으로 흐를 우려가 다분하다 아니 할 수 없다.

교육부가 지난해 초등학교 6학년 1학기 국정(國定) 사회 교과서 수정 과정에 불법 개입해 집필 책임자도 모르게 교과서 내용을 대거 바꾸고, 합법적인 것처럼 서류까지 위조한 것으로 드러났다는 데에 할 말을 잃는다. 검찰은 최근 교과서 불법 수정을 지시한 혐의(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사문서위조교사 등)로 당시 교육부 교과서정책과장 A 씨와 교육연구사 B 씨 등 담당 공무원 2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교육부는 지난해 관련 논란이 불거졌을 때 "편찬 기관(진주교대 국정도서편찬위원회)과 발행 출판사 간에 벌어진 일"이라며 개입 의혹을 부인했다. 하지만 검찰은 처음부터 끝까지 교육부가 불법 행위를 지휘·교사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24일 법무부가 국회에 제출한 공소장에 따르면 A 과장은 2017년 9월, 6학년 사회 교과서 내용을 수정하기 위해 B 연구사에게 "관련 민원이 있으면 (교과서를) 수정하는 데 수월하다."고 지시했고, B 연구사는 알고 지내던 교사 I씨에게 "1948년 '대한민국 수립'을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바꿔 달라는 내용의 민원을 국민신문고에 접수시켜 달라."고 요청했다. I씨는 같은 달 해당 민원을 접수시켰고, 이를 근거로 교과서 수정 작업이 시작됐다. 그러나 집필 책임자인 박용조 진주교대 교수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과서를 고칠 수는 없다."며 수정을 거부했다. 이에 A 과장은 박 교수를 작업에서 배제하라고 실무진에게 지시한 뒤 F 교수가 대신 수정을 맡도록 조치했다.

A 과장과 B 연구사는 검찰에서 "문재인 정부 입장에 맞춰 교과서가 수정됐다는 비판이 나올 것이 염려돼 출판사가 '알아서 고치는' 모양새를 취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당시 김상곤 교육부 장관과 차관 등 윗선의 지시 및 관여 여부에 대해선 제대로 조사하지 않고, 수사를 종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유한국당 김도읍 의원은 "윗선의 개입 여부를 조사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자유한국당은 "국정교과서 불법 수정 사건의 윗선을 밝히기 위해 국정조사 등 모든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이날 당 회의에서 "교과서 불법 수정은 역사 왜곡 국기 문란으로, 검찰은 이 어마어마한 사건을 실무진 3명이 다 했다고 결론 내렸다."면서 "청와대의 개입이 의심스러운 상황으로, 윗선을 명백히 밝혀내야 한다."고 했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무자비한 교과서 '관제 수정'이 이뤄진 교과서는 모두 수거해서 폐기해야 한다."며 "그것이 대한민국의 역사를 왜곡하고, 학자의 양심을 짓밟은 데 대한 최소한으로 정부가 해야 할 일"이라고 했다.

유은혜 교육부 장관은 국회 교육위 전체회의에 참석해 "(교과서 수정은)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 위한 과정으로, 저희는 출판사와 집필진들의 동의를 다 받은 것으로 확인한 서류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수정 과정에서 박 교수 도장에 대한 '도둑 날인'이 이뤄졌다는 검찰 수사 결과에 대해서도 "법적 다툼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러자 박 교수는 이날 "교육부 장관께서 제가 교과서 수정에 동의했다고 하셨는데, 저는 그런 동의를 한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바른미래당 오신환 원내대표도 "한 나라의 교육을 책임지는 교육부 수장이 어떻게 범죄행위를 감싸고 도느냐?"며 "유 장관은 관련 발언을 취소하고 국민 앞에 정중히 사과하라."고 했다. 참으로 어이없는 일들이 지금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는데 이로써 무슨 국가적 이익을 얻는 것인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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