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대전에서만 108억 보이스피싱 피해

대전역 근처 지하상가에 걸려있는 보이스피싱 피해예방 홍보 현수막 / ⓒ 뉴스티앤티
대전역 근처 지하상가에 걸려있는 보이스피싱 피해예방 홍보 현수막 / ⓒ 뉴스티앤티

"마치 꼭두각시처럼 무언가에 홀린 것 같았다. 집까지 찾아 온 경찰관이 '보이스피싱 전화'라고 말하는데도 오히려 그 경찰을 의심할 정도였다."

대전 대덕구에 거주하는 박 씨(남, 61)가 자칫 보이스피싱 피해자가 될 뻔했던 상황을 떠올리며 하는 말이다.

박 씨에 따르면 지난 19일 "해외에서 신한카드로 552 달러가 결제됐다. 회신번호로 전화달라"는 휴대폰 문자를 받았다.

평소 해외 결제를 하지 않는 박 씨는 무슨 내용인가 싶어 회신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상대방(신한은행 사칭)은 "박 씨 명의의 카드가 미국에서 결제가 일어났고, 의심건으로 지불정지 처리했다"며 "경찰에 신고했으니 곧 전화가 갈 것"이라고 했다.

이후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과 김차영 경사라며 전화가 왔다.

그는 "박 씨 명의의 카드와 통장이 금융사기에 연루돼 범죄에 많이 도용된 상태로 확인된다"며, "휴대폰에 해킹 프로그램이 설치됐을 수 있으니 확인해주겠다"고 했다.

불안한 마음에 박 씨는 상대방이 시키는 대로 어플(팀뷰어 퀵서포트*)을 설치하고, 신분증과 보안카드도 사진으로 찍었다.
*팀뷰어 퀵서포트는 상대방의 휴대폰을 원격으로 제어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상대방(김차영 경사)은 이어 "이 사건은 이미 검찰로 송치돼 소환장 발부 예정에 있으니, 소환장 받으면 서울중앙지방검찰청으로 출두해 조사를 받으라"고 했다.

그러면서 "서울지방검찰청 이승학 검사에게 요청해 약식수사로 전환하면 대전에서 조사받을 수 있다"고 했다.

박 씨는 전화를 끊고 서울지방검찰청(02-530-3114)으로 전화를 걸었다.(02-530-3114는 실제 서울지방검찰청 번호다.)

연결된 이승학 검사는 "소환장 발부에는 1주일 정도 걸린다"며 "약식수사로 전환해서 대전에서 조사받도록 해주겠다."고 했다.

약식조사 확답을 받은 박 씨는 02-112로 전화를 걸어 다시 김차영 경사와 통화를 했다.

이 과정까지 박 씨는 약 3시간 정도를 보이스피싱 사기단에 엮여 피해 직전까지 빠져들고 있었다.

그러나 박 씨의 전화가 장시간 통화 중인 것을 의심한 가족의 신고로 경찰이 집으로 찾아오면서 보이스피싱 사기단의 사기행각은 수포로 돌아갔다.

평소 "보이스피싱에 절대 속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던 박 씨가 이렇게 속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하나 더 있다.

이미 원격프로그램이 설치된 박 씨의 휴대폰이 실제 서울지방검찰청(02-530-3114)과 경찰(02-112) 번호를 보이스피싱 사기단의 전화로 연결시켜 마치 실제 서울지방검찰청 및 경찰과 통화하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대전경찰청에 따르면 2018년 대전에서 발생한 보이스피싱 피해는 1,295건, 150억 원에 이른다.

올해도 지난 5월까지 644건에 108억 원의 피해가 발생하는 등 그 피해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범죄 수법도 진화해 박 씨의 경우처럼 카드결제 문자를 보낸 후, 쇼핑몰(또는 은행) 콜센터 → 사이버수사대 → 검찰 → 금감원 등 여러 명의 범인이 역할을 나누어 접근하고, 휴대폰 원격조정 앱을 이용하여 통화를 가로채거나, 원격으로 계좌이체를 하는 등 심각한 피해를 야기시킨다.

"당신 계좌가 검찰 사칭 범죄에 이용되고 있으니 협조하라"

만약 경찰, 검찰, 금융감독원에서 이런 전화가 걸려온다면 누구든 당황할 것이며 협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경찰, 검찰, 금융감독원에서는 절대 현금을 요구하지 않는다. 현금을 요구하는 경우 100% 보이스피싱을 의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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