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낮추고 낮춰...마지막 순간에도 그걸 못해
자신을 낮추고 낮춰...마지막 순간에도 그걸 못해
  • 박기봉 기자
  • 승인 2019.06.13 17: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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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유적 탐방] 송우암 신도비 및 묘소 - 충북 괴산

송우암 신도비 및 묘소

충북도 괴산군 청천면 청천리 7-1


송시열(1607~1689)의 본관은 은진(恩津)이고, 자는 영보(英甫)이며 호는 우암(尤庵) 또는 화양동주(華陽洞主),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신도비는 1779년(정조3)에 어제(御製)로 세웠으며, 비신(碑身)의 높이는 250cm로 팔작지붕, 목조기와집의 보호각 안에 있다.

묘소는 신도비각으로부터 위로 300m 지점의 산 중턱에 있는데, 본래 수원(水原)에 있었던 것을 1697년(숙종23)에 지금 위치로 옮겼다.

 

[안갑수 선생님]

대전에 사는 우리들로서는 좀 더 우암 선생을 재평가 해야 한다.
생각보다 한국적 조선의 위상을 최고로 더 높였던 사람이다.

그 당시는 신하와 왕권이 첨예하게 움직이는데, 왕은 이 신하 저 신하를 쓰면서 왔다 갔다 할 때 그때도 우암 선생은 낮추고, 자기 수명대로 더 살수도 있었는데 마지막 순간에 그걸 못해

 

1635년(인조13) 효종(당시 봉림대군(鳳林大君)의 사부(師傅)가 이후 사헌부 장령, 이조판서 등을 지냈다.

효종 때는 북벌운동(北伐運動)을 주도하였으며, 서인 노론 영수로 활약하였다.

묘비 2기(基)가 있는데 하나는 1736년(영조 12)에 세웠으며 다른 하나는 1804년(순조 4)에 세웠다.

묘역은 약 300평으로 상석, 문관석, 무관석, 망주석 등이 있고, 1979년 묘소 진입로에 계단을 설치하는 등 보수, 정화작업을 실시하였다.

한편 신도비는 국난이 있을 때마다 땀을 흘린다고 하는 속설(俗說)이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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