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가 신라를 방어하던 전략적 요충지 '백골산성'
백제가 신라를 방어하던 전략적 요충지 '백골산성'
  • 박기봉 기자
  • 승인 2019.05.13 15: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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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유적 탐방] 백골산성 - 대전 동구

백골산성

대전기념물 제22호 (1991. 7. 10 지정), 대전 동구 신하동 산13번지


백골산성은 대전광역시 동구 신하동 해발 340m의 백골산 정상의 험준한 산세를 이용하여 쌓은 산성으로 둘레는 400m이다. 

 

[백남우 / 문화관광해설사]

당시 신라와 백제의 전투에서 백제군을 지휘하던 태자 '부여창'이 몸이 지쳐 몇일 앓아 눕게 됐다. 이에 성왕(백제 26대 왕)이 수뇌부 80여 명을 데리고 아들을 위문하러 가다, '구진베루'라고 하는 구천 한가운데서 미리 첩보를 입수하고 잠복하던 신라 김무력장군 휘하에 있던 삼년산성의 기병에게 잡혀 죽게 된다.

그렇게 전장을 호령하던 성왕과 수뇌부들 50명이 그 자리에서 목을 베이게 된다.

 

이 산성은 산의 정상부를 둘러쌓고 있는데, 이러한 형태를 테뫼식 산성이라 한다.

산성은 가파른 지형에 쌓여진 까닭에 완전히 무너져 내린 부분이 많아 원래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백골산성의 서쪽으로는 백제의 전략 거점인 계족산성이 있고, 동쪽으로는 신라의 유명한 관산성을 끼고 있어 백제가 신라로 들어오는 유일한 길목을 지키는 초소 역할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백남우 / 문화관광해설사]

인위적으로 끊어졌는데 일종의 호(湖)다. 물이 없는 호.
이 호는 일종의 장애물이다. 적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위해 목책을 세운다.

 

지금은 인공호수인 대청호가 버젓하게 자리를 잡고 있지만, 성이 축조될 당시만 해도 신라를 마주보고 금강이 흐르고 있어 육로와 수로를 지키는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백골산은 백제와 신라가 싸워서 사람이 많이 죽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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