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유적 탐방] 숭현서원지 - 대전 유성구

숭현서원지

대전시기념물 제27호 (1992. 7. 22 지정), 대전 유성구 원촌동 산35-1번지


숭현서원은 정광필·김정·송인수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전금규/ 문화관광 해설사]

서원에는 홍살문을 거치면 외삼문이 있는데,

숭현서원에는 외삼문인 영귀루(詠歸樓)가 있고, 안으로 들어가면 동재·서재가 있고, 학교 역할을 하는 입교당(立敎堂)이 있고 그 뒤에 여덟 분의 선현을 모신 사당이 있다.

정광필(鄭光弼), 김정(金淨), 송인수(宋隣壽), 김장생(金長生), 송준길(宋浚吉), 송시열(宋時烈), 이시직(李時稷), 송시영(宋時榮) 이렇게 여덟 분이다.

 

16세기 후반에 세운 것으로 추정하는 이 서원은 1609년 나라에서 인정한 사액서원으로 ‘숭현(崇賢)’이라는 이름을 받았다. 인조 19년(1641)에 이시직과 송시영을 추가로 모시게 되었는데 서원 안에 별도의 건물을 마련했다.

숭현서원은 임진왜란 때에 소실된 후, 1609년 향촌의 선비인 송남수선생 등에 의하여 지금의 서원 자리인 유성구 원촌동에 중건되었고, 이후 김장생·이시직·송시영·송준길·송시열이 차례로 추배되어 8현 서원이 됐다.

이후 숭현서원은 1871년 대원군의 서원 철폐로 인하여 훼철되었다가, 최근 대전시에 의하여 다시 복원(1995~2001)됐다.

우암은 여기 소제에 거주하는 동안 숭현서원에서 여러 가지 일을 수행했다. 우암연보에 의하면 우암은 47세에 숭현서원에서 회강(會講)을 했다고 되어 있다.

우암은 61세(1667)에 숭현서원 묘정비(廟庭碑)의 추기를 지었다. 이 묘정비 추기는 우암 송시열이 짓고, 동춘당 송준길이 글씨를 썼으며, 서석 김만기가 전서를 썼다.

이 시기는 우암이 화양동으로 이거하여 살던 때였다.

그러나 우암은 후일 다른 곳으로 이주해서도 늘 회덕을 출입하였고, 회덕의 향촌활동에 꾸준히 참여했다. 회덕은 그들 은진송씨의 생활의 터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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