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래호 작가 / 뉴스티앤티
김래호 작가 / 뉴스티앤티

4월의 막바지에 이르렀다, 벌써. 보름마다 한 철에 6개씩 드는 24절기. 지난 20일이 봄의 회두리 곡우였으니 이제 다음 절후는 여름의 문턱 입하다. 유채꽃과 매화, 벚꽃 피었다 들레며, 봄꽃 그만인 경승지로 들꾀다 보니 이렇게 시간이 흘러가버렸다. ‘가장 잔인한 달’이라는 4월- 그러나 21일 그 역설을 증명하는 부활절이 많은 사람들의 축하 속에 기려졌다. 박해와 죽음을 이겨낸 만물이 ‘라일락’처럼 회생하는 부활은 신자가 아니더라도 마땅히 서로 뒤엉켜 축복해 줄 일이다.

사춘기의 어느 봄날, 복숭아꽃이 만발해 있는 대구 근처의 어느 과수원을 지나다 그만 천지가 아득해지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천지가 아득해졌다는 것은 만발한 복숭아 꽃밭에서 삶과 죽음, 이승과 저승이 한덩어리가 되어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 이윤기(1947-2010) 산문 ‘4월과의 직면’ 부분

《그리스 로마신화》부터 움베르토 에코의《장미의 이름》과《푸코의 진자》, 카잔차키스의《그리스인 조르바》를 차례로 소개한 탁월한 번역가인 고 이윤기작가- 그가 토로하는 사춘기는 대구의 중학교 시절이다. 까까머리 윤기는 학비를 면제받는 교내 도서실의 사서를 맡으면서 인문학의 ‘꽃밭’으로 빠져들었다. 영어와 일본어를 독학으로 익히면서 종교와 신화, 인류학에 눈을 뜬 것이다.

짐작컨대 ‘복숭아 꽃밭’ 사건을 겪은 그로서는 정규교육이 크게 의미가 없었으리라. 고등학교 입학 3달 만에 자퇴하고, ‘아득한 천지의 길’을 헤매기 시작했다. 1969년 나팔수로 월남전에 참전한 이작가는 700여 권의 ‘서양책’만 들고 귀국했고, 그것을 밑천으로 번역일을 생계로 삼았다. 30살에 신춘문예를 통해 소설가로 데뷔한 그는 ‘이윤기체’로 불릴 정도로 독특한 한글의 글쓰기를 개척해 나갔다. 주제는 도대체 사람이 ‘사람’인 까닭은 무엇인가? 그들에게 죽음과 부활, 종교와 신화는 어떤 의미인가?

컴퓨터라는 단어는 로마교회에서 부활절을 정하는 일인 ‘콤푸투스computus’에서 유래했다. 춘분이 지난 뒤, 보름달이 뜨고 난 후, 첫 번째 일요일- 양력의 춘분은 태양의 낮이 길어지기 시작하는 날이다. 길고 긴 밤의 겨울이 종말을 고하고 비로소 봄이 열리는 것이다. 여기에 음력의 달마저 만월이니 온갖 사악한 기운이 범접할 수 없는 ‘부활’하기 더없이 좋은 길일이다. 4월이면 이윤기의 산문 그 꽃밭으로 간다, 나는.

그리운 그의 얼굴 다시 찾을 수 없어도 / 화사한 그의 꽃 / 산에 언덕에 피어날지어이. // 그리운 그의 노래 다시 들을 수 없어도 / 맑은 그 숨결 / 들에 숲속에 살아갈지어이 // 쓸쓸한 마음으로 들길 더듬는 행인아. // 눈길 비었거든 바람 담을지네. / 바람 비었거든 인정 담을지네 // 그리운 그의 모습 다시 찾을 수 없어도 / 울고 간 그의 영혼 / 들에 언덕에 피어날지어이. - 신동엽 시 ‘산에 언덕에’ 전문

1969년 4월 7일- 꼭 50년 전 신동엽시인은 ‘산에 언덕에’ 묻혔다. 백제의 고도 부여 땅에서 태어난 지 서른아홉 해, 신춘문예로 데뷔한 지 10년 만에 그의 얼굴과 숨결, 영혼은 온 곳으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하지만 해마다 4월이면 우리에게 ‘향그러운 흙 가슴’ 그 본령을 생각하게 한다. 편언절옥하자면 동엽은 봄의 시인이자, 부활의 시인이다. 그의 절창은 시퍼렇게 언 강바닥에서 흐르는 한 줄기 물로 마침내 봄의 대지를 적신다. 그것은 하늘과 땅 사이의 숱한 생명을 약속의 땅으로 이끄는 선지자의 노래이자, 미처 합류하지 못하고 희생된 영혼들을 위한 헌시이다.

너그러운 봄은 / 삼천리 마을마다 / 우리들 가슴 속에서 / 움트리라 -‘봄은’. 나 돌아가는 날 / 너는 여기 와서 살아라 // 묵은 순 터 / 새순 돗듯 - ‘너에게’. 죽지 않고 살아 있었구나 / 우리들의 피는 대지와 함께 숨쉬고 / 우리들의 눈동자는 강물과 함께 빛나고 있었구나 // 어느 누가 막을 것인가 / 태백줄기 고을고을마다 봄이 오면 피어나는 / 진달래, 개나리, 복사 – 아사녀阿斯女.

알맹이만 남고 / 껍데기는 가라 // 껍데기는 가라 / 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 껍데기는 가라 - ‘껍데기는 가라’. 그건, 보리밭서 / 강의 줄기를 타고 거슬러 / 올라가던 꿈이었지 // 너의 눈동자엔 / 북부여 달빛 / 젖어 떨어지고, // 조상적 사냥 다니던 / 태백줄기 옹달샘 물맛, / 너의 입술 안에 담기어 있었지, - ‘보리밭’.

아픔과 기억의 달 4월이 꾸역꾸역 간다. 제주 4.3사건 71주년, 세월호 침몰 5주기, 4.19 혁명 59주년... 4월이 시작되면 책상에 제일 먼저 신동엽시선집《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을 놓는다, 나는. 1960년대 그 엄혹한 시대를 온몸으로, 냉철한 이성으로 선명하고 강렬하게 담은 시들... 살아 계신다면 구순이신데 짜장 어떤 시를 쓰실 것인가?

위로하는 사람은 자신이 그리할 수밖에 없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 사람은 타자가 혼자 죽어가지 않도록 타자를 위로한다. 능란한 솜씨와 친절로 위로하는 사람의 손이 취하는 모든 동작은 타자를 다정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에게 발령되는 정언명령을 수행했다는 표시들이다. 그런 사람은 타자들을 위해 그리고 타자들과 더불어, 고통을 견뎌야만 한다. 타자가 비통한 슬픔에 휩싸일 때, 그리고 그 어떤 치료나 위로도 그 슬픔을 해소할 수 없을 때, 그 슬픔은 타자를 위로하는 사람도 슬퍼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해하는 슬픔이다. - 알폰스 링기스《아무 것도 공유하지 않은 자들의 공동체》제7장 죽음의 공동체 마지막 문단

‘사회적 고통Social Suffering’의 정의는 이렇다. 전쟁과 기근, 억압과 질병, 고문 등을 비롯하여 정치적. 경제적. 제도적 권력이 인간에게 미치는 모든 총체적인 결과물이며, 그러한 형태의 권력으로부터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 사회적 문제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부산물이다.(아서 클라이만. 비나 다스 외《사회적 고통》)

고통은 ‘이해하는 슬픔’ 속에 치유가 된다. 여럿이 함께 어울려 억압에 울부짖으며, 더불어 자유를 노래하는 공동체는 정녕 불가능한 것인가? 이제 저 유명한 경구가 되어버린 1849년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시민의 불복종’을 되새겨 본다. 4월이 다 가기 전에 말이다.

우리는 먼저 인간이어야 하고 그 다음에 국민이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법에 대한 존경심 보다는 먼저 정의에 대한 존경심을 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내가 떠맡을 권리가 있는 나의 유일한 책무는, 어떤 때이고 간에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행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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