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미당과 엄항섭의 결혼사진(상하이 1927년) 김구, 안창호, 이동녕, 이시영, 조완구 등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들이 하객으로 참석한 이 사진이 보여주듯이 연미당 가족사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 증평군 제공
연미당과 엄항섭의 결혼사진(상하이 1927년) 김구, 안창호, 이동녕, 이시영, 조완구 등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들이 하객으로 참석한 이 사진이 보여주듯이 연미당 가족사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 증평군 제공

증평군을 대표하는 연미당 가족의 독립운동사를 재조명하는 역사 다큐 '독립투사 연미당'이 오는 13일 오후 8시 10분부터 9시까지 KBS-1TV에서 방송된다.

증평군과 KBS한국방송과 함께 제작한 '독립투사 연미당'은 역사스토리텔러 설민석의 중국 현지 임시정부 루트 촬영과 드라마 재연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재미와 감동을 선사할 예정이다.

한편, 연미당(1908~1981)은 독립운동가 연병환(1878~1926)의 딸이자 아내, 어머니로서의 삶을 살며 자신 역시 독립운동에 앞장선 독립투사이다.

연병환은 1907년 정미7조약이 강제되자 공직에서 사퇴했다. 1908년 청주 군수로 발령받았으나 이를 고사하고 중국 용정으로 간 뒤 동생 3명을 불러 함께 독립운동을 했다.

또 연병환은 용정해관에서 번 돈으로 독립운동가를 후원하고 독립운동을 지원하했다.

당시 연병환의 집은 지역 독립운동의 거점이었고, 청산리대첩에 숨은공로가 있다고 전해지는 등 공적이 인정돼 2008년 건국훈장 대통령표창에 추서됐다.

연미당의 숙부 연병호(1894∼1963)는 19세인 1913년에 형 병환이 있는 용정으로 향했다. 대한민국청년외교단 설립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세계한인동맹회에서활동했으며 만주에서는 독립군으로 활동했다.

광복 후 임시정부환국준비위원회 영접부장으로 활동하는 등 독립에 힘써 1963년에 건국훈장 국민장에 추서됐다.

연미당의 남편 엄항섭(1898~1962) 역시 독립에 평생을 바쳐 1989년 건국훈장 독립장에 추서됐다.

그는 보성법률상업학교에 다니고 있을 당시, 3.1운동이 일어나자 독립운동에 헌신하기로 마음먹고 중국 상하이로 망명했다.

이 후 프랑스 조계 공무국에 근무하면서 임시정부에 일본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고, 경제적인 지원을 했다. 상하이청년동맹회 집행위원, 임시정부 헌법 개정 기초위원, 한국교민단 의경대장 등으로 활동했다.

연미당은 엄항섭과 결혼한 뒤 청년여자동맹, 애국부인회, 한인여자청년동맹에서 후방사업 지원 및 선전활동을 했다.

1932년 상하이 홍구공원에서 윤봉길 의사의 폭탄 투척 의거가 일어났을때 도시락 폭탄을 싼 보자기를 직접 만든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임시정부가 일제를 피해 상하이부터 충칭까지 8000km의 대장정을 김구, 이동녕, 이시영 등 임정 요인들을 모시며 함께 했다.

연미당의 딸 엄기선(1929∼2002) 역시 중국방송을 통해 임시정부의 활동상황과 일본군의 만행을 동맹국과 국내 동포들에게 알리는데 매진했다.

또한 중국 내 수용소의 일본군 포로 중 한국 국적을 가진 사병들을 위문하고, 광복군에 합류를 유도했으며 일제의 패망을 예견하는 선전공작에 진력한 결과 1993년 건국포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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