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선생묘소일원

대전문화재자료 제25호(1991. 7. 10 지정), 대전 동구 회남호 117(신하동)


조선 중종 때 형조판서 겸 예문관 제학을 지낸 충암(沖庵) 김정(1486∼1521) 선생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건물이다. 

선생은 조광조와 더불어 지치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미신타파와 향론의 상호부조에 힘썼고, 향약을 전국에 실시하는데 큰 업적을 남겼다.

 

[김응일/ 충암 선생의 17대 종손]

충암 선생의 최초벼슬은 순창군수였다.

순창 강천사에서 신비(중종왕비 단경왕후 신씨)를 복위해야 한다는 상소문을 썼다. 순창군수 김정(金淨), 담양부사 박상(朴祥), 무안현감 류옥(柳沃)이 세분이 상소문을 작성, 이것을 관철하는 의지로 본인들의 관인(官印)을 소나무에 걸어놓고 결의를 다졌다.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 매년 7월 그믐날 순창군에서는 삼인(三印) 문화축제를 개최한다.

 

충암 김정 선생은 중종 14년(1519) 기묘사화 때 조광조 등과 함께 투옥되었다가 금산에 유배된 후 제주에서 사약을 받고 사사되었다.

 

[김응일/ 충암 선생의 17대 종손]

신위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용도의 건물을 별묘(別廟)라 한다. 왕과 왕비는 종묘(宗廟)라 하고, 공자와 공자제자를 모시는 곳은 문묘(文廟)라 한다. 그외 개인들의 묘(廟)는 별묘(別廟) 또는 가묘(家廟)라 한다.

여기는 충암 선생의 별묘(別廟) 별도의 묘(廟)다.

원래 조선에 선비들은 4대(아버지, 할아버지, 증조, 고조)의 신주를 모셔놓고 제사를 지내는데 그건 가묘(家廟)이고, 충암 선생은 저한테는 17대조인데 지금도 신주를 모시고 있고 제사를 모시고 있다.

이걸 보고 불천위(不遷位)라고 하는데 원래 가묘에서 4대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다가 세월이 가서 또 한 분이 돌아가시면 4대가 5대가 되는데 그 분의 신주는 그 분의 묘소 앞으로 옮겨 묻는다. 이걸 매안(埋安)이라 한다. 그걸 천위(遷位)라 한다.

그런데 충암 선생은 1521년에 돌아가서 거의 500년이 되었는데 아직도 여기 신주를 모시고 있고, 이 분 돌아가신 날 잊지 않고 제사를 모시고 있다. 올해가 498번째 제사다.

▲ 왜 안옮기고 여기에 두시는 겁니까?

그게 불천위(不遷位)이기 때문에 안 옮기고 여기에 모셔져 있다. 임금님이 그렇게 명령을 내려준 것이다.

* 불천위(不遷位) : 예전에, 큰 공훈을 세워 영구히 사당에 모시는 것을 나라에서 허락한 사람의 신위를 이르던 말 

 

대덕구 동면 내탑리에 있던 건물과 묘소를 1978년에 동구 신하동으로 옮겼다.

경내에는 인조 19년(1641)에 세운 신도비(神道碑:왕이나 고관 등의 평생 업적을 기리기 위해 무덤 근처 길가에 세우던 비)와 위패가 모셔져 있는 사당, 부인의 정려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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