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역명문가 염재균 수필가

전쟁으로 인해 부인과 생이별을 한 뒤 수십 년 만에 헤어진 부인을 확실한 증거(검은 사마귀)를 제시하여 다시 만난다는 이야기로 감동을 주고 있다.

어떤 일을 확인하는 데는 결정적 증거가 필요함을 제시해 주는 이 말은 시민대학의 고사 성어(지도교수 :장상현)에서 배운 내용이다. 살펴보자.

우리 선조들의 삶을 새롭게 조명한 〈한국 고사 성어: 저자 임종대〉의 한국인의 지혜에 나오는 이야기다.

『조선 제16대 인조(仁祖) 때, 윤지선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가 결혼하여 첫날밤을 지내고 나니 다음날 병자호란(丙子胡亂,1636~1637)이 일어났다. 그는 오랑캐에게 사로잡혀 청나라로 끌려가 그곳에서 평생을 지내고 노인이 되어서야 가까스로 도망쳐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리하여 제일 먼저 옛날 집으로 찾아갔으나 이미 폐허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 선산(先山)에 올라가 보니 ‘윤지선 지묘’라고 쓴 자기의 묘비명과 함께 새로 만들어진 무덤이 보였다. 괴이하게 생각한 그가 수소문하니 자기 아들이 전라감사로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찾아갔다. 그리고 자기의 과거 이야기를 털어 놓았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난 감사가 물었다.

“어르신네와 부인과의 연세는 얼마나 차이가 났습니까?”

“나와 동갑이었네.”

“어르신네의 세계(世系)를 알고 싶습니다.”

그는 감사에게 일일이 설명했다. 감사가 들어보니 틀림없는 아버지였다. 그래서 어머니에게 고하니, 어머니가 ‘윤지선’을 안으로 불러 발을 드리우고 물었다.

“아들로부터 이야기를 들으니 남편이 맞는 것 같기도 하오나 지금 연로하여 옛 모습을 찾을 수 없어 믿지 못하겠습니다. 증거(證據)될 만한 무엇이 없습니까?”

그는 한참 곰곰이 생각하다가 말했다.

“있지요. 첫날밤 잠자리에 들었을 때, 아내의 은밀한 사처(私處)에 콩알 만 한 검은 사마귀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내가 농담 삼아 여자의 허벅지에 이런 사마귀가 있으면 반드시 귀한 아들을 낳는다고 말했었지요.”

그러자 말이 채 끝나기 전에 부인이 와락 뛰어나와 그를 끌어안아 통곡(痛哭)하며 감사에게 말했다.

“이 분이 너의 아버님 맞구나!”

그 뒤부터 사람들의 어떤 사실을 증명할 만한 결정적 증거를 일컬어 지이회처(痣以會妻)라 했다는 내용이다.』

이와 같은 예를 몇 가지 살펴보면.

첫 번째로, 김부식이 쓴 《삼국사기》 제13권 고구려본기 유리 왕 편에 나오는 이야기로, 고구려의 시조인 주몽의 아들인 유리가 어머니가 일러준 징표(부러진 칼)를 찾아 아버지를 만나 태자가 된다는 내용이 있다. 여기서도 결정적 증거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두 번째는, 1945년 12월에 개최된 모스크바 삼상회의(미국, 영국, 소련)로 인해 우리나라의 국토가 38선으로 분단되고, 1950년에 발발한 6.25 남침전쟁으로 인한 헤어진 이산가족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덜어주기 위해 KBS 한국방송공사가 1983년 6월 30일부터 11월 14일까지 무려 138일에 걸쳐 453시간 45분 동안 생방송으로 이산가족 찾기 특별프로그램을 진행하여 10,189명의 이산가족이 만났다. 그 당시 생방송 장면을 보면 헤어진 가족의 특징과 살던 고향을 자세히 적어서 벽보로 붙이거나 방송 시 증명이 될 만한 증거를 제시해 극적인 상봉이 이루어 질 때 눈물바다를 이루었던 그 당시의 장면에서도 증거의 중요성이 나타나고 있다.

세 번째는, 요즈음 모방송국에서 방영되고 있는 일일 드라마 ‘왼손잡이 아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충격적인 사고로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게 된 남자와 신혼여행지에서 사라진 남편을 찾아 헤매는 여자와의 관계를 그린 드라마로, 남편이 살아있다는 희망을 갖고 확실한 증명이 될 증거를 찾아내려고 이를 숨기려고 하는 자들과 고군분투하는 내용이다.

‘지이회처’가 주는 교훈으로는, 사람은 누구나 만나면 언젠가는 헤어질 수 있고, 예기치 않은 상황으로 인해 오랫동안 이별의 아픔을 겪을 수 있기 때문에 평상 시 부부나 가족의 특징이나 징표가 될 만한 것을 서로 공유하여 다시 만날 때 증거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헤어짐에 대비하여 반드시 확인 가능한 증거물이 될 만한 것을 남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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