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을 만큼만"
"새뱃돈도 민망"
"설을 앞두고 시장에 오는 손님은 늘었는데, 지갑은 도통 안 열려요"
민족 대명절인 설 명절을 앞두고 18일 방문한 대전 중앙시장.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시장 일대는 제수용품을 구매하기 위해 손님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시장 곳곳에서 상인들의 호객행위가 잇따랐지만 예상을 훌쩍 넘는 가격에 돌아서는 사람들도 쉽게 목격할 수 있었다. 물가 상승으로 비용 부담이 커진 탓이다.
“물건 좋으니 보고 가세요”라는 생선가게 상인의 말에 멈춰 선 주부 A 씨는 재차 가격을 물은 끝에 조기 한 마리를 구매했다.
A 씨는 장바구니 속을 내보이며 “차례상 비용이 지난해보다 두 배 가까이 드는 것 같다. 올해는 넉넉히 음식을 준비하기보다는 먹을 만큼만 만들어 상에 올리고자 한다”며 한숨을 쉬었다.
전통과자를 판매하는 상인 B 씨는 “맛보고 가세요”를 연신 외쳤지만 손님 끌기가 쉽지 않다. 소비자들이 상 차림 비용을 아끼기 위해 가짓수를 줄이고 있기 때문이다.
20년간 전통과자 가게를 운영해 온 B 씨는 “원재료 값이 올라도 손님이 떨어질까봐 마진 없이 원래 가격에 판매하고 있다”며 “더구나 전통과자가 필수 제수 품목이 아니다 보니 점점 찾는 사람들이 줄고 있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건어물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C 씨는 "명절 대목은 사라진 지 오래됐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차례상을 아예 차리지 않는 시민들이 늘고, 명절 때 선물을 주고받는 문화도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것.
C 씨는 “치솟는 차례상 물가도 문제지만 갈수록 명절과 제사를 지내지 않는 것도 문제”라며 “예전에는 명절 선물용으로 물건을 찾는 손님이 많았지만, 이제는 아예 주고받지 않거나 온라인으로 주문하는 사람들이 대다수”라고 허탈해 했다.
명절 전 대형유통업체를 찾은 시민들의 시름도 깊었다. 치솟는 물가에 장바구니를 넉넉히 채우지 못하는 아쉬움 탓이다.
정육 코너 앞을 서성이던 직장인 D 씨는 생각보다 높은 가격표를 보고 발길을 돌렸다.
D 씨는 "명절 전 할인가라고 하지만 여전히 높은 가격에 엄두가 나지 않는다"며 "나물 등 간단한 식자재만 구매하고 선물 세트 등은 비교적 저렴한 온라인으로 구입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계산대 앞에서 결제를 기다리던 주부 E 씨도 올라가는 가격을 바라보고 멈칫했다.
E 씨는 "별로 산 것도 없는데 벌써 10만 원이 넘었다"며 "이번 명절 잡채에는 소고기 대신 돼지고기를 넣어야겠다"고 씁쓸해 했다.
30대 부부 F 와 G 씨도 지난해보다 눈에 띄게 물가가 올랐다고 입을 모았다.
남편 F 씨는 "전체적으로 가격이 많이 올랐다"며 "이번 설에 드릴 장인·장모님 선물은 과일 대신 곶감이나 한과 등으로 대체할까 생각 중"이라며 이내 아내의 눈치를 살폈다.
아내 G 씨는 "차례상 비용도 걱정이지만 세뱃돈 지출도 부담"이라고 말했다. 이어 "시댁 조카들이 일곱인데 금액도 그 기준도 걱정"이라며 "지갑 사정이 얇아졌다고 용돈을 줄이자니 민망하다"고 말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전통시장 차례상 비용은 27만 4431원으로 전년 대비 3.3% 올랐다. 반면, 대형 유통업체는 34만 6088원으로 전년 대비3.1% 내려갔다.
총 비용은 전통시장이 대형유통업체보다 20.7% 저렴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형유통업체는 할인행사를 폭넓게 실시하면서 차례상 비용이 비교적 하락했다는 분석이다.
농산물유통정보, 축산물품질평가원에 따르면 과일과 축산물은 전년 대비 가격이 내려갔다.
품목별로 배(-15.8%), 소갈비(-11.5%), 돼지목살(-8.3%), 얼갈이배추(-7.5%), 사과(-3.5%)등으로 나타났다. 반면 당근(58.0%), 생강(56.8%), 양파(34.2%) 등 채소류는 상승세가 가파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