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래호 작가 / 뉴스티앤티
김래호 작가 / 뉴스티앤티

저택에 사치를 부리면 귀신이 엿보고, 먹고 마시는 데 사치를 부리면 신체에 해를 끼치며, 그릇이나 의복에 사치를 부리면 고아한 품위를 망가뜨린다. 오로지 문방도구에 사치를 부리는 것만은 호사를 부릴수록 고아하다. 귀신도 너그러이 눈감아줄 일이요, 신체도 편안하고 깨끗하다. - 유만주(1755-1788) 일기 “흠영”(1780년 6월 15일)

무엇인가 소비한다는 것은 중독과 질투- 그 심리적 이중성을 드러내는 행위다. 중독은 특정한 브랜드의 지속적인 소모이고, 때때로 충동적 구매에 빠지는 것이 질투이다. 라면에서부터 프로야구팀,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소위 마니아, 팬이 바로 중독의 화신이다. 반면에 질투는 세대와 계층, 지역 등 외부적 요인에 기인한다.

어느 청문회에서 재벌 부회장이 잠깐 사용한 립글로즈가 유명세를 타고, 유명 드라마에서 스타 배우가 입은 의상이나 공항 패션이 몇 시간 만에 절판되는 세태. 이런 질투심은 증오와 적의로 번지기도 한다. 여기에서 ‘갑질’은 한 개인의 ‘욕구나 요구’가 침윤된 반사회적 행태인데 지탄의 대상이 된다.

욕망은 타자의 언어이다! 프랑스 철학자 자크 라캉(1901-1981)의 유명한 이 정언은 ‘산업 자본주의와 소비’라는 측면에서 크게 각광을 받았다. 그는 어린아이의 사회화 과정을 ‘상상계–> 상징계-> 실재계’로의 이행이라고 규정하면서 ‘언어와 욕망’을 철학적 명제로 내세웠다. 라캉은 인간에게 어떤 개별적인 본질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로지 관계만이 존재하는데 그것이 바로 욕망과 언어를 통해 드러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실재계인 인간 사회를 영원히 알 수 없듯이 사람의 욕망이 근원적으로 지향하는 곳도 알 수가 없다고 적시했다. 라캉은 그 지향점을 ‘신화의 세계’라고 명명했다. 신들의 세계에서는 어떤 욕구나 요구, 욕망이 얼마든지 허용되기 때문이다.

“이 할망구! 살이 피둥피둥 쪘구만!” “사돈 남 말 하네. 이녁도 신수가 훤하구만!” 충북 영동으로 귀향한 지 어느덧 4년- 오래전에 운전대를 놓아 읍내로 외출하려면 농어촌버스를 타야 한다. 아직 65세 이상 무료승차 대상은 아니고 1,200원이면 20분 남짓 군청소재지를 왕래할 수 있다. 그러면서 노인들의 정담을 듣는 재미도 쏠쏠한데 활연대오- 문득 문심혜두가 열리는 깨우침에 고개를 끄덕인다.

“먹을 게 천지삐까리라 자꾸 손이 가네. 감에 대추, 땅콩, 고구마...” “해콩 담북장 띄웠나? 밤밥에 지고추도 맛나고. 노인회관에서 콩나물밥에 무생채 비벼 먹었는데 꿀맛이더만.” “곶감 얼마나 깎았나?” “우리 할배 허리 아파 못 따서 죄다 까치밥 되게 생겼다. 좀 따가소! 나중에 곶감 몇 개만 주고.” 대화의 소재는 수확철의 가을들판처럼 널려 있다. “아이고 마. 온몸이 쑤셔서 죽겠는데 좀 오래 살았나 싶다.” “어디 죽는 게 마음먹는 대로 되는 일이가.” “이제 배운 거나 돈도 다 내려놓았는데 몸이나 성히 살다가 갔으면 좋겠다.” “증손 많이 컸제?” “이번 생일에 올랑가 모르겄네. 지들도 먹고 사느라 바쁜디...”

그렇다. 아기는 입말과 글말을 익히면서 학연을 통해 자기 ‘편’을 만들고, 사회라는 ‘판’에서 부를 축적하면서 결혼생활을 영위한다. 그러다가 지천명과 이순에 이르면 학력과 경력은 크게 쓸모가 없으며, 재산은 자식이나 사회로 돌아가고, 종당에 건강마저 놓으며 선산에 묻히는 것이다. 가족들의 웃음 꽃밭에 왔다가, 울음바다 속으로 떠나는 사람 한 살이- 우리는 그 사이를 인생이라고 부른다.

경술국치와 8.15 광복, 6.25 한국전쟁, 4.19 학생혁명과 5.16 구테타, 군사정권과 급격한 탈농촌의 산업화, 도시화... 격동의 근현대를 살아낸 1930년과 40년대 출생 어르신들의 대화가 여벌로 들리지 않는다. ‘잘 살아보세!’ 그 프로파간다와 반공 이데올로기에 내몰리면서 사치는 말 그대로 분에 넘는 일이었다. 다음 세대는 ‘나도 말 좀 하세’를 거쳐, ‘잘 놀아보세’를 외치다 IMF 직격탄을 맞았고, 2018년 다시 그 그림자가 드리울 조짐을 보이고 있다.

사람이 태어나면 일이 없지 않아 내 한 몸에 모여든 일이 언제고 그치지 않는다. 따라서 날이 다르고 달이 다르다. 그렇다면 일기란 것은 이 한 몸의 역사다. 어찌 소홀히 할 수 있으랴. 나는 글을 배운 이후 지난해에 이르기까지 3,700날 남짓을 살아왔다. 3,700날 동안 있었던 일을 아무 것도 기록하지 않았다. 그래서 지나간 일을 되돌아보면 꿈을 꾸고 깨어서는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번개가 번쩍번쩍하여 돌아보면 빛이 사라진 것과 같다. 날마다 기록하지 않아서 생긴 잘못이다. - 유만주 일기 “흠영”

유만주는 스무 살 되던 1775년 정월 초하루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하면서 이런 글을 서문으로 가름했다. 그후 34세로 요절할 때까지 13년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일기를 썼는데 24책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다. 시시콜콜한 개인사부터 서책과 문서, 세평이나 조정의 논쟁과 훈령까지 실로 다양하다. 이는 조선후기 사회의 생생한 재현으로 역사적 가치가 높은 자료가 되었다. 더불어 당시 어떤 독서 경향이 있었고, 지식인들 사회에서 추구한 가치가 무엇이었는지 엿볼 수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과 비교 우월의 사치로는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 유만주는 집의 사치는 귀신을 부르고, 음식의 그것은 몸을 해친다고 경고한다. 누군가에게 담장을 넘보며 질투하게 만들고, 과도한 영양 섭취는 자신의 건강을 좀먹는다. 그러면서 슬며시 문방도구의 사치는 괜찮다고 하는데 물질적 풍요보다 정신적 안식을 구하라는 권면이다.

전통적인 라다크 마을에서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에 대해 많은 통제권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멀리에 있는 융통성 없는 관료체계와 변덕스러운 시장체계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매우 큰 범위까지 스스로 결정을 내린다. 이 인간적인 규모는 특정한 상황 속의 구체적인 욕구에 기초를 둔 자발적인 결정과 행동을 가능하게 한다. 여기에서는 경직된 입법이 필요 없다. 그 대신 구체적 상황에서 새로운 반응이 나온다. - 헬레나 호르베리-호지(1946- ) “오래된 미래- 라다크로부터 배운다”

오래된 미래는 있어도 ‘완전한 미래’는 없다. “대저 도는 사람으로부터 멀리 있지 않고, 사람에게 다른 나라는 없다” 통일신라 최치원(857-?)의 정언인데 참으로 웅숭깊다. 서구 200년 개발의 산업혁명- 반세기 만에 좇아 완전한 미래에 도달했다고 자찬하는 나라- 그러나 여전히 위험하고, 불안하고, 피로한 사회인 것은 기준을 그쪽에 두고 있는 탓이다. 반복되는 무질서를 다시 겪지 않으려면, 물려주지 않으려면 치열한 자기 성찰 속에 우리의 과거를 들추어야만 한다.

언제인가 분명 라다크가 아닌 “한국으로부터 배운다”는 책이 출판될 것이다. 어제를 자주 들여다보며, 저마다의 오늘을 살고, 함께 내일을 준비하는 그런 일이 담긴 서적 말이다. 우리 안에는 그런 자산이 쌓인 곳간이 차고 넘친다. 오래된 미래를 부단히도 살아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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