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준원 박사 / 뉴스티앤티
서준원 박사 / 뉴스티앤티

유럽 순방 길에 올랐던 문재인 대통령은, 교황청 방문에 들떠 있는 것 같았다. 가톨릭 신자로서 게다가 김정은의 요청(교황 방북 타진)을 전달하는 기회라 더욱 그럴 것이다. 청와대가 연일 평화를 외치며 역동적으로(?) 활동하는 터이라, 한층 들떠 있을 법 하다. 오죽하면 청와대도 평화의 틀에 갇혀, 북한은 국가가 아니라는 헌법적(?)해석으로 법과 현실마저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 평화에 들떠 억지로 끌고 가다보니, 생억지만 늘어나는 꼴이다. 허긴, 외신도 비아냥쪼로 북한을 김씨 집단(Kim-Clan)으로 폄하하기도 한다.

유럽에선 거의 매일 교황청 동정과 소식이 전달된다. 우리에겐 먼 곳으로 여기는 탓인지, 그 쪽 소식에 둔감하고 매우 간헐적으로 들려온다. 글로벌 유명인사들과 정치지도자의 교황청 방문은 크게 다뤄진다. 그리고 상세보도가 일반적이다. 문 대통령의 전달 메시지에 대한 교황청의 답변은 국내 언론에서도 크게 다뤄졌다. 허나, 그 팩트가 불분명하고 확인조차 어려운 야릇한 기사들도 함께 쏟아졌다.

어느 진보매체는 “무조건” 방북한다고 헤드라인 뉴스로 뽑았다. 교황청은 외교에 능한 그리고 폭넓은 외교채널을 지닌 곳이다. 그런 교황청이 비외교적인 표현인 ‘무조건’이란 단어를 사용했다니 놀랍다. 뉴스를 의도적으로 가공하고 전달하려는 의지가 너무 강해서 나온 오류이길 기대한다. 이념적으로 경도된 우리 매체들의 게이트 키퍼(gate-keeper)의 수준은 언급하고 싶지 않다.

유럽쪽 언론을 살펴보니, 교황청의 답변은 북한 쪽에서 정식으로 요청이 오면, “어쨌든”(auf jedenfalls, in any case) 답변을 하겠다. 이 정도로 정리된다. 이걸 너무 부풀려, 교황이 평양을 간다고 벌써부터 설레발을 치고 있는 매체가 가짜뉴스의 근원지인 셈이다. 상식적으로 초청장도 못 받은 상대가 불러주면 가겠다고 예의적인 표현을 할 수는 있다. 그러나 교황청의 외교방식은 일반 국가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런 어설픈 대처를 하는 곳이 아니다.

교황의 타국 방문은 절차를 중시하고 그리고 엄청난 신중함과 상대에 대한 배려가 배어있다. 무슨 정상회담 하듯이 훌쩍 떠나지 않는다. 따라서 긴 시간과 숙의를 거쳐 결정된다. 방문 대상국가에 대한 면밀한 정보와 상황을 충분히 인지한 상태에서 교황 방문이 이뤄진다.

작년 12월. 통일동산 근처에 자리한 ‘속죄와 참회의 성당’에서 평화를 위한 세미나를 개최했다. “참회와 속죄의 성당”, 이 성당은 한국전쟁에서 서로 형제들을 살상했던 죄를 속죄하고 참회하겠다는 의지의 반증이다. 성당 외형은 신의주 진사동 성당, 내부는 함경도 덕원 베네딕도 수도원을 본 땄다(2017년 12월 3일자 포스팅 참조).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 시기의 일이다. 마지막 일정으로 이 성당 방문을 염두에 둔 모양이다. 결국은 마지막에 취소되었다. 북한과 너무 가까운 곳에 위치해서 교황의 안위가 우려된다는 점이, 그 취소 배경이란다. 그런 북한을 교황이 방문하려면 단단히 준비하는 것이 상례다. ‘무조건’ 가겠다고, 단언적으로 표현하는 교황청이 아니다.

김정은의 교황방문 요청의 속 마음은 알 길이 없다. 평화 코스프레를 위한 고육지책의 선택일 수도 있다. 설령 성사가 안 되어도 잃을 게 없는 카드이기 때문이다. 일제 치하에서도 평양은 ‘아시아의 예루살렘‘으로 불렸다. 당시 인구 30만 명의 평양시민의 1/6이 기독교 신자였다. 그만큼 종교활동이 활발했던 곳이다. 김일성도 젊은 시절엔 일요일 마다 교회에 갔었다고 전해진다. 그의 조부는 목사였다고 한다. 그런 집안이 공산주의 사상에 물들어 종교가 사라진 지금의 북한으로 변화시켰다. 오로지 김 부자를 신격화 시킨 결과다.

해방 이전부터 북쪽은 기독교 활동이 매우 활발했다. 그 이후 종교압박을 견디지 못한 종교지도자들이 대거 남하했다. 북한은 기독교 신자가 14000명 정도라고 밝혔지만, 유엔은 지하종교 활동을 하는 주민을 약 20만 명에서 40만 명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놀라운 것은, 강제 수용소에 끌려 간 사람들의 45% 정도가 기독교 신자라는 것이다.

평화는 가톨릭에선 매우 중요한 가치이자 추구하는 목표다. 일반 미사는 물론 심지어 장례미사에서도 “평화가 항상 여러분과 함께”를 되뇌인다. 그만큼 평화에 대한 의지와 의미를 늘 되새기고 있다. 평화 못지않게 가톨릭은 인권을 중시한다. 인권부재의 땅에선 평화가 착근하거나 실현되기도 어렵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문 정부의 평화우선론 북한인권과 관련하여 좀 더 세심하게 다듬어야 한다. 인권이 부실한 상대와 손잡고 평화를 외친다고 평화가 찾아오는 것은 결코 아니다. 결국, 평화는 인권에 기반한다.

평양은 교황의 안위 관련 안전할까? 진짜(?) 신자들이 얼마나 나타날까? 교황 방북이 전 세계에 어떻게 비춰질까. 방북이 실현되면 평화는 물론 ‘인권’을 언급할까? 북한이 종교의 자유를 허용할까? 북한에 순교자와 성지 여부는 확인 할 수 없지만, 교황 방문에 이런 것이 어떻게 나타날까? 긍정적 상상이 연이어진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교황 방북이 꼭 성사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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