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래호 작가 / 뉴스티앤티
김래호 작가 / 뉴스티앤티

엄청난 양의 눈이 내렸던 겨울이 지나고 봄이 돌아왔다. 한 나무꾼이 몸을 포갠 채 쓰러져 있는 사냥꾼과 산양을 발견했다. 그들은 도끼가 아니면 도저히 떼어낼 수 없을 정도로 꽁꽁 엉켜 붙어 있었다. 나무꾼은 그 둘을 함께 묻어주었다. 산양의 왼쪽 뿔 위에는 하얀 나비 한 마리의 얼어붙은 시신이 그림처럼 새겨져 있었다. - 에리데 루카 단편소설 “나비의 무게” 마지막 문단

우주의 풀무질은 어김없이 겨울을 재촉한다. 봄에 꽃 핀 자리에 맺은 열매도 떨어지고, 잎사귀도 낙엽으로 뒹군다. 봄비와 장맛비, 서리와 눈- 물의 순환이 곧 사시사철이다. 삼라만상 중에 자연의 변화에 가장 잘 순응하는 존재가 나무다. 신실한 독림가인 한 분이 이런 말을 하셨다. 늦봄에 나무를 안고, 귀를 기울이면 물관에 쭉쭉 물 올라가는 소리가 들린다고 말이다.

그 물소리 희미해지면서 나무는 우듬지부터 잎사귀를 떨군다. 새들은 둥지 찾기 쉬워지고 개미는 제집 찾기 어려워지는 것이다. 수북한 낙엽을 헤치며 구멍을 찾으려니 오죽이나 고달프겠는가. 농부들 막바지 수확하듯 겨울 양식 등에 매고 들척들척 귀가하는 모습이 선하게 그려진다. 삭풍에 눈발 날리면 그런 일 그만두고 휴식하는 것이고...

이탈리아의 북부 어느 고원지대. 겨우내 쌓이고 얼었던 눈이 녹고 파릇파릇 새싹이 돋는 봄철이 되었다. 여름 비바람에도 버티던 노거수들- 눈 무게 못 견디고 뚝뚝 부러져버린 가지 줍는 한 나무꾼이 뒤엉킨 채 숨진 사람과 산양을 발견했다. 놀란 가슴 진정하고 조심스레 다가가 살펴보니 중산간에 홀로 사는 사냥꾼이었다.

소문에 들으니 그 사냥꾼은 젊은 시절에는 도시에서 혁명가들과 함께 살았었다. 하지만 혁명을 꿈꾸던 집단이 무너지고 난 뒤 귀향해 사냥꾼이 되었다. 그는 이따금 부식을 사러 마을로 내려오고, 학교 앞에서 아이들을 바라볼 뿐 동네 사람들과는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그가 잡은 산양의 살덩이는 음식점으로 넘겨졌고, 가죽은 무두장이를 거쳐 신발이나 가방, 거죽 옷감이 되었다.

인간이란 종족은 참으로 형편없는 감각기관을 가지고 있다. 단지 이성의 조합으로 감각을 향상시킬 수 있을 뿐이다. 인간의 두뇌는 되새김질을 한다. 감각이 받아들인 정보를 꼭꼭 씹어서 하나의 가능성으로 환원하는 것이다. 그것이 인간으로 하여금 미래의 시간을 예측하고 미리 계획을 세울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그것은 인간에게 하나의 형벌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그것이 인간에게 그가 죽어야만 하는 존재라는 것을 확실히 각인시키기 때문이다. - 에리데 루카 단편소설 “나비의 무게” 중반부

예순 살의 사냥꾼이 그동안 잡은 산양은 삼백 여 마리가 넘었다. 산양의 왕은 제 어미를 죽인 그 사냥꾼을 수년 째 희롱하고 있었다. 뛰어난 감각으로 항상 화약과 기름 냄새를 감지했고, 가파른 바위산에 먼저 올라 돌을 굴려 내리고 사라지는 것이었다. 마침내 그해 겨울이 시작되는 11월의 어느 날 운명적인 최후의 대결이 벌어졌다. 이런 광경을 지켜보던 한 마리 나비가 사냥꾼의 총구에 앉아, 회두리에 둘 다 쓰러지게 만들었다.

사람의 한 살이- 살면서 누구나 몇 번 절대 고독의 상황과 마주하기 마련이다. 그것이 투쟁이든 죽음이든 ‘되새김질 하는 두뇌’를 부여잡고 어떤 가능성을 찾는다. 루카는 그 고통의 무게를 ‘나비’로 상징해 세월의 무게에 더해진 깃털, 모든 걸 무너뜨릴 수도 있는 깃털로 그리고 있다. 사냥꾼의 어깨에 거꾸로 매달린 산양- 그 뿔에 내려앉은 나비- 그것조차 쫓아버릴 수 없는 힘 빠진 사내- 세월이 시간이, 흐르고 가면 사냥터의 더 큰 진정한 주인이 따로 존재한다는 것을 일러주는 광경이다.

이탈리아 출신 역사가 카를로 긴즈부르그는 그의 저서 “실과 흔적” 서문에서 이렇게 언명했다. “테세우스는 아리아드네로부터 실 하나를 선물 받았는데 그 실로 미로로 들어가 미노타우로스를 찾아내 살해하였다. 하지만 신화는 테세우스가 미로를 돌아다니면서 남긴 흔적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 기대어 역사가들이 일어난 일 그 ‘흔적’을 복원한다면 작가는 일어날 수 있는 가능한 ‘상흔’을 추적하는 이들이다.

한없이 가벼운 나비의 상흔을 그린 작가- 에리 데 루카는 1950년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출생했다. 18살 되던 해 로마로 이주해 기계공, 트럭운전사, 미장이로 일했고 유고슬라비아 전쟁 당시에는 보급단의 운전기사로 참전했다. 1989년 마흔 살의 나이에 스무 살에 쓴 소설 “지금, 이곳은 아닌”을 출간했을 때에는 여전히 미장이였다.

미장이의 일은 쉽게 익힐 수 있지만 꽤나 힘이 듭니다. 또 그 일을 필요로 하는 곳이 많아 노임을 받으면 힘들긴 해도 부끄럽지 않고 마음이 편합니다. 힘쓰는 일은 억지로 해서 효과를 볼 수 있지만, 마음 쓰는 일은 억지로 한다 해서 지혜롭게 되지는 않습니다. 힘을 쓰는 자는 남에게 부림을 당하고 마음을 쓰는 자는 사람을 부린다고 하였으니, 이는 당연하다고 하겠습니다. - 당나라 한유(768-824) 산문 ‘미장이 왕승복전’ 부분

역사서에는 전傳이라는 형식이 있는데 국가에 공로를 세운 사람들을 골라 그들의 일생을 기술하는 것이다. 때문에 주인공은 항상 고관대작이나 무훈이 혁혁한 위인들이었다. 하지만 한유는 제 이름 석자도 쓰지 못하는 한 미장이의 전을 남겼다. 망치와 연장이 아닌 붓으로 권위를 타파하고, 벼슬아치들을 향해 일갈한 것이다. “머리를 제대로 못 쓰면서 힘쓰는 자들을 억누르고 짓밟을 자격이 있는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펄펄 뛰는 통찰이자 기개의 글발이 아닐 수 없다.

사람은 자연과 사람에게서만 배운다. 사람은 입말이나 글말로 의사소통을 하지만 자연은 언제나 말이 없다. 순환과 환치를 거듭하는 이치를 궁리하고 격물하는 이들에게 그 자연은 말을 걸어온다. 2018 코리안웨이 구르자히말 원정대- 영원한 다섯 산악인들의 명복을 빌면서 이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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