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춘당 (同春堂)

보물 제209호(1963. 1. 24 지정) 대전광역시 대덕구 동춘당호 78(송촌동)


동춘당은 송준길(1606~1672)의 아버지인 송이창(1561~1627)이 세웠으며, 당의 일부가 허물어지자 1649년(인조 27) 송준길이 44세 되던 해에 자신의 호 '同春堂'을 따서 건축한 별당이다.

동춘(同春)이란 '살아 움직이는 봄과 같아라'는 뜻으로, '인(仁), 춘(春)을 구한다'라는 뜻이 담겨 있다.

선생은 이곳에서 독서와 교육을 하면서 인재를 양성하고, 우암 송시열 등과 함께 회덕 향안을 복원했다.

'同春堂'의 현판은 송준길 사후 우암 송시열이 직접 써서 걸어둔 것이다.

동춘당은 정면 3칸·측면 2칸의 一자 모양의 평면으로, 처마는 홑처마이고 단층팔작지붕이며 우측 4칸은 대청을 좌측 2칸은 온돌방으로 꾸며져 있다. 하나의 집에 온돌과 마루가 함께 구성되어 있는 것은 우리나라 전통건축의 특징으로 겨울과 여름의 심한 기후 차를 극복하기에 좋은 양식이다.

이 건물은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별당건축물로 규모도 크지 않고 선비의 기질을 잘 나타낸 간소한 건물이다.

회덕동춘선생고택(정침, 가묘, 별묘)(懷德同春先生故宅(正寢, 家廟, 別廟))은 대전광역시 대덕구에 있는 조선시대의 고택이다.

이 집에는 사당이 둘이다. 하나는 별묘(別廟)로서 동춘선생의 신위를 모신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가묘(家廟)로 4대조의 신위를 모시는 곳이다. 둘 다 똑같이 정면 3칸 측면 1칸의 조그마한 건물로 앞쪽에 퇴칸을 두고 있다.

조선시대의 사묘(祠廟)는 구역 내에서 뒤쪽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도록 배치하는데, 이러한 규범을 잘 따르고 있다.

동춘당과 고택은 마치 고고한 선비의 자태와 같이 단아하며 품위가 있다.

대전 소대현·호연재 고택은 동춘당 송준길(宋浚吉, 1606~1672)의 둘째 손자인 송병하(宋炳夏, 1646~1697)가 1674년 분가하여 건립한 고택으로서 송병하의 아들 소대헌 송요화(宋堯和1 1682~1764)가 1714년 이축했다.

소대헌 송요화의 부인 호연재(浩然齋) 김씨(1681~1722)는 17~18세기 여류문학을 대표하는 시인으로서 한시 134수를 남겼다.

고택은 조선 중기 대전지역의 살림집을 이해할 수 있는 건축적 가치를 가지고 있으며 충청지역에서는 보기 드물게 큰사랑채와 작은사랑채를 동시에 갖추고 큰사랑채가 양통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전 동춘당 종택은 조선 후기 호서지역 명현인 동춘당 송준길의 종가로 별천위와 기타 제례가 그대로 전승되고 있고,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는 방대한 고문서 등은 조선 중기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집안의 생활사와 지역 향촌사회의 변화를 볼 수 있는 귀한 자료이기에 중요민속문화재로 지정하여 보존할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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