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래호 작가의 밑줄 이야기] 작은 부활의 고향
[김래호 작가의 밑줄 이야기] 작은 부활의 고향
  • 김래호 작가
  • 승인 2018.09.2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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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래호 작가 / 뉴스티앤티
김래호 작가 / 뉴스티앤티

자신의 고향을 달콤하게 여기는 사람은 아직 주둥이가 노란 미숙아다. 좀 더 성숙한 사람은 모든 곳을 고향처럼 느끼는 코스모폴리탄이며, 궁극의 성숙한 모습은 모든 곳을 타향이라 여기는 이방인이다. - 생 빅토르 후고(1096-1141)

중국 전국시대의 열자는 “죽음이란 길을 가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라고 정언했다. 우리가 말하는 “돌아가셨다”는 뜻 그대로다. 고인이 돌아가신 분이라면 곧 산 사람은 매양 길을 가는 축들이다. 이런 면에서 귀성은 타향의 길에서 고향의 ‘집’ 그 익숙한 곳으로 잠시 돌아가는 행위다. 피붙이끼리 아픈 다리 포개고 쉬면서 기운을 얻는 길 위의 인간들. 추석이나 설에 온갖 노고를 감수하고 출생지를 찾는 행위는 어찌 보면 ‘웰 다잉’의 연습인지도 모른다.

내 고향은 소백산맥의 중산간 충북 영동이다. 최남선이 ‘경부철도가’에서 “서울과 부산의 절반”이라고 적시한 민주지산자락. 박두진 시인이 ‘영동을 지나며’에서 “복사꽃 환한 나라”로 명명한 땅. 집 나간 시심을 찾아 나선 혜산은 추풍령과 황간을 돌아보고 서울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기차가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차창 밖으로 꽃 대궐이 펼쳐졌다. 시인은 이제 홀로 가리라 다짐하며, K형에게 ‘또 다른 고향’을 찾았노라 엽서를 쓴다. 고향을 두고 더 큰 본향을 찾는 사람들- 이는 유한의 길에서 무한의 길을 찾는 몸부림이다.

고향에 돌아온 날 밤에 / 내 백골이 따라와 한방에 누웠다 // 어둔 방은 우주로 통하고 / 하늘에선가 소리처럼 바람이 불어온다 // 어둠 속에서 곱게 풍화작용하는 / 백골을 들여다 보며 / 눈물 짓는 것이 내가 우는 것이냐 // 백골이 우는 것이냐 아름다운 혼이 우는 것이냐 // 지조 높은 개는 / 밥을 새워 어둠을 짖는다 // 어둠을 짖는 개는 나를 쫓는 것일게다 // 가자 가자 / 쫓기우는 사람처럼 가자 / 백골 몰래 / 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에 가자 – 윤동주(1917-1945) ‘또 다른 고향’ 전문

고향에서 보아야 본향이 더 잘 보이는 것인가. 현실과 이상의 갈등, 모순이 곡진한 윤해환의 시. 부친은 장남의 아명을 ‘해처럼 빛나라’는 뜻으로 해환으로 지었다. 이 시는 동주가 옥사하기 4년 전인 1941년 9월에 발표되었는데 ‘포빙탄’의 심정을 반영하고 있다.

얼음과 숯덩어리는 서로 용납할 수 없는 대립을 비유하는 말로, 도연명의 ‘잡시’ 제 4수에 처음 등장한다. 누가 요즘 선비들처럼 / 빙탄이 마음 속에 가득하리오- 귀향한 원량은 칼날 위를 걷는 듯한 관료들의 아슬아슬한 나날을 이렇게 비유한 것이다. 석아포빙탄 / 종군식건곤- 주희 역시 석로- 석가모니와 노자의 길에서 얼음과 숯처럼 겉돌다 비로소 장식을 만나 유가의 학문을 알게 되었노라 토로했다.

병주 땅 객사에서 십 년 세월을 보내며 / 가고픈 맘 밤낮으로 함양을 그렸었지 / 뜬금없이 다시금 상건수를 건너서 / 병주를 바라보니 이 또한 고향일래 – 당나라 가도(779-843) 한시 ‘상건수를 건너며’ 전문

병주지정幷州之情- 오래 살던 타향을 고향으로 여긴다는 뜻으로 제2의 고향을 말한다. 가도는 승려였는데 한유(768-824)의 권유로 환속해 벼슬에 오른 인물이다. 한퇴지 그가 누구인가? 세 살 때 부모를 잃고 궁핍한 성장기를 보냈지만 불굴의 의지로 지방 관리부터 시작해 국자박사, 이시부랑까지 오른 당송팔대가의 문인이다.

가도는 시를 지을 때면 주위의 사람은 물론 어떤 상황에도 개의치 않았다. 길을 가거나 머물거나, 자리에 누울 때나, 먹을 때나 시 읊조리기를 그만두지 않았던 것이다. 어느 날 문득 ‘연못가 나무에서 새는 잠들고 / 스님은 달빛 아래 문 두드리네’ 라는 시구를 떠올리고는 고민에 빠졌다. 과연 ‘두드리네’- 이 한자를 퇴推와 고敲 중에 어느 편을 써야 더 고아한 시적인 표현이 될 것인가?

시의 신 시마가 씌인 가도는 고심 속에 온갖 손짓 발짓을 하며 미친 사람처럼 나다녔다. ‘추’하면 손이나 발로 살며시 문을 밀고 들어가는 것이니 교교한 달빛의 풍광과 잘 어울린다. 깊은 잠에 빠진 새도 깨지 않을 것이다. 한편으로 문을 똑똑 ‘고’하면 연못물이야 얼마간 일렁이겠지만 더욱 잘 들릴 터 바로 문을 열어주겠다. 자기 소리를 낼 것인가? 두말없이 슬며시 끼어들 것인가?

새는 봄을 울고, 천둥은 여름을 울며, 벌레는 가을을, 바람은 겨울을 운다. 사계절이 가고 오는 것은 분명 그 평정을 잃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도 역시 그러하다. 사람의 소리 중에 정교한 것이 말이며, 말 중에서도 문장은 더더욱 정교한 것이다. 때문에 가장 잘 우는 것을 골라 그것을 빌려 운다. - 한유(768-824) ‘내가 우는 이유 送孟東野序’ 부분

장자 이래로 중국 산문의 새바람을 일으킨 한유- 그는 일체의 글쓰기는 ‘불평즉명’의 발로이자 결과물이라고 단정했다. 사마천의 ‘발분설’과 구양수의 ‘시궁이후공’ 모두 이 네 자가 저본이다. 몸과 마음의 균형이 깨지든, 내물과 외물의 불균형이든, 꿈과 욕망의 좌절이든 일정한 항상성을 잃었을 때 ‘속내’가 응어리지고, 마침내 ‘소리’로 드러난다. 바로 노래와 시, 글은 그 슬픔과 분노, 불편한 마음의 전달이다. 한유가 행차를 막은 가도에게 ‘퇴’보다 제 소리를 내는 ‘고’를 추천하는 것은 당연했다.

가도는 한유의 권유로 다시 과거를 보고, 여러 지방 관리를 거쳐 병주에서 십여 년 봉직하며 늘 고향을 그리워했다. 그런데 그곳마저 떠나 상건수를 건너고 보니 고향과 더 멀어져 병주도 고향인 양 여기게 되었던 것이다. 훗날 이 ‘병주’는 디아스포라- 고향과 망향의 정서가 교차하는 상징어로 굳혀졌고, 숱한 문인들의 글감으로 차용되었다.

“태어난 적도 죽은 적도 없다. 단지 1931년부터 1990년 사이에 이 행성 지구를 방문하다.” 인도 출생 오쇼 라즈니쉬의 묘비명인데 세계적인 명상가다운 자찬명이다. 이에 비하면 고 이윤기(1947-2010) 작가의 규정은 소박하지만 인간적이다. “고향은 작은 저승- 생가에서 선산 산밭까지가 인생이다.” 고향이나 병주, 지구 떠나면 진정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고향 가는 길 환한 한가위다. 산다는 것은 얼마간의 대가를 지불하는 법. 타향 그 험지에서 숯처럼 새카맣게 마음을 태우고, 몸은 얼었던 빙탄의 나날이었다. 하지만 고향에서 며칠 지내면 살천스럽고 던적스러웠던 이역의 세월 다 잊혀지리라. 하여 다시 길 떠나는 부활의 새날이면 새 길이 열리리라. 저마다의 무한한 그 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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