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래호 작가의 밑줄 이야기] 지상의 작은 ‘천국’
[김래호 작가의 밑줄 이야기] 지상의 작은 ‘천국’
  • 김래호 작가
  • 승인 2018.09.07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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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래호 작가 / 뉴스티앤티
김래호 작가 / 뉴스티앤티

책 풀기가 부활의 거친 행동이라면, 책 싸기는 최후의 심판 전 온순한 입관 절차와 같다. 책 풀기가 소란스럽고 무질서하게 부활한 책 더미를 개인적 미덕과 변덕스러운 악덕에 따라 서가에 위치시키는 것이라면, 책 싸기는 이름 없는 공동묘지에 책들을 집어넣어 그들의 주소를 서가라는 2차원에서 상자라는 3차원으로 바꿔 주는 것이다. - A. 망겔(1948- ) “서재를 떠나보내며” 제2장 서재의 해체

이사철인 가을이다. 전근과 새로운 생업, 교육 문제 등등을 위해서 짐을 싸고 풀지만 이사는 진정 고통스러운 일이다. 더욱이 몇 백 권의 책이라도 소장한 축들이라면 괴로움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때마다 대개 월간이나 주간지, 아이들 책이나 참고서 나부랭이가 ‘공동묘지’에 매장되기 십상이다. 깊은 신앙의 대상인 서적들만 소중하게 싸여져 ‘부활’을 기약하는 것이다.

우체국장이셨던 부친 탓에 초등학교 때는 네 번, 중학교에서는 두 번이나 전학해야만 했다, 나는. 1960년대 통신과 정보, 금융의 허브였던 군 단위의 우체국- 전보를 치거나 시외전화를 걸고, 소포를 부치고, 지폐 뭉치를 찾고 넣던 사람들이 들꾀던 그곳은 나의 놀이터이자 ‘천국’이었다. 한약방의 약장 같은 우편물 분류함과 자석식 전화 교환기- 그 서가는 2차원에서 3차원으로 바꿔주는 마법의 ‘상자’들이었다.

독자라는 외로움 속에 일찍 글자에 눈을 뜨고 수많은 우체물을 ‘검열’하며 보낸 유년의 뜨락. 학창시절에는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생활했기 때문에 당연히 책을 싸고, 푸는 일에는 익숙했다. 하지만 30여 년 방송사 PD 재직 중에는 분가를 포함해 딱 두 번 이사를 했다. 이제 이순의 문턱에 이르러 충북 영동 고향땅에 정주하면서 그럴싸한 서가가 늘어선 나만의 책방을 갖게 되었다. 디아스포라- 책 짐을 싸고 풀며 떠도는 중에도 ‘부활’의 첫 상자에 넣었던 책들이 있다.

망겔의 고백 대로 나 역시 “전문적인 수집가가 되기에는 돈도 부족했고, 지식도 풍부하지 못했지만” 아프락삭스 그 부활의 체현인 열댓 권의 서적을 갖고 있다. 그 중에서도 ‘작은 저승’이라는 고향에 세우고 싶은 집을 그리고, 또 그리게 한 책이 “제황상유인첩”이다.

어느 날 제자는 스승에게 유인 곧 숨어 사는 은자의 거처가 어떠해야 하는지 물었다. 정약용은 황상을 위해 긴 글을 써주었는데 바로 그 책이다. 다산은 복된 택지의 조건부터 규모와 방향은 물론 담장 안팎에 심는 나무의 종류까지 상세히 기술했다. 여기에 누에를 치는 잠실도 세우고, 수십 걸음의 연못을 파고 연꽃과 붕어를 기르라고 일렀다. 또한 서너 칸 좁쌀 한 톨 만한 일속산방이지만 정교한 실내의 치장도 당부했다.

순창에서 나는 설화지로 벽을 바르고, 문설주 위에는 엷은 먹으로 그린 산수화를 붙여라. 문설주에는 고목이나 대나무, 바위를 그리고, 짧은 시도 써 두거라. 방안에는 서가 두 개를 설치해 천 삼사백 권의 책을 꽂도록 한다...

천주학쟁이로 몰린 정약용은 39세에 강진으로 유배되었다. 신유박해가 일어난 1801년 3월에 경상도 장계로 귀양되었다가, ‘황사영 백서사건’으로 다시 붙잡혀 같은 해 10월 전라도 강진으로 정배된 것이다. 그로부터 17년 동안 다산은 향리의 아이들을 가르치며 48권의 “목민심서”를 집필했다. 황상은 15살 되던 그해 강진의 한 주막집 문간방에 머물던 다산을 찾아가 글을 배우기 시작했다. 시골 더벅머리의 사내아이가 추사 김정희도 감탄한 시를 짓는 소양을 닦게 된 것이다.

훗날 황상은 강진 대구면의 천개산 아래 백적동에 “제황상유인첩” 그대로 집을 지었다. 하지만 이미 다산이 세상을 떠난 후라 모시지는 못하고 추모시를 지어 기렸다. 황상은 “오직 부지런함이라는 글자를 잊지 말고, 배우고 또 배워 나가라!”는 스승의 말씀을 평생 되새겼다. 비록 천민의 신분으로 과거를 볼 수 없었지만 농사 지으며,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 늘 글 속에서 노닌” 대인이었다.

짜장 다산과 황상의 서재에 ‘천 삼사백 권의 책’이 꽂혀 있었을까? 아마도 그만한 책을 꼭 갖추라는 뜻은 아니었을 것이다. 한우충동- 세상의 수많은 책들 중에 적어도 천 권 이상은 읽고, 궁리하고, 글을 써 나가야 문심혜두가 열린다는 지적이 아니었을까? 스스로 둔하고, 앞뒤가 막히고, 답답하다 자탄하는 애제자에게 쉼 없이 천착해 부지런히 읽으라는 사부의 권면이 아니었을까?

위로는 아주 중요하다. 내가 스스로를 위로할 목적으로 침대맡에 놔둔 물건은 언제나 책이었다. 나의 서재는 그 자체로 위로와 조용한 인식의 장소였다. 나는 우리가 책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책이 우리를 소유하기에 이런 안식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 A. 망겔 “서재를 떠나 보내며” 제4장 위로와 안식의 장소

우리 시대의 몽테뉴! 책의 수호자! 명실공히 세계 최고 수준의 독서가이자 장서가인 알베르토 망겔. 그는 16살 되던 해인 1972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피그말리온 서점에서 일하다가 운명적으로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1899-1986)를 만났다. 단편소설집 “픽션들”과 “알렙”으로 1940년대에 세계적인 명성을 획득한 대가. 망겔은 시력을 잃어가던 대문호를 위해 4년 동안 책을 읽어주면서 큰 영향을 받게 된다. 훗날 망겔은 보르헤스 뒤를 이어 3-5백만 권의 아르헨티나 국립도서관장직을 물려받게 된다.

보르헤스는 “나는 언제나 천국이 어떤 종류의 도서관일 거라고 상상해왔다.” 라고 실토했다. 그 어는 곳이든 ‘위로와 조용한 인식의 서재’가 있는 곳이 바로 천국인 것이다. 기묘한 인연의 다산과 황상, 그리고 보르헤스와 망겔- 이들은 서로 공유하고 심화, 발현시킨 책의 공간 서재가 지상의 천국임을 알아차린 현자들이다.

이승과 저승 사이에 저마다의 ‘그승’이 있다. 그 누군가 있어 이승에 다시 나가라면 나는 한 권의 책이 되어 그승을 살겠다 답하리라. 그리하여 적든 많든 어느 서가에 꽂혀 주인의 손길과 발길을 기다리리라. 그러고 속삭일 것이다, 그대! 지상의 천국에 있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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