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근호 변호사 (前법무연수원장, 前대전지·고검장) / 뉴스티앤티

몸짱들의 대회인 쿨가이 대회에 출전해 보겠다고 선언한지 1년이 넘었습니다. 그동안 일주일에 서너 번 헬스클럽에 가서 개인 레슨도 받고 운동하였지만 몸은 좀처럼 바뀌지 않았습니다. 운동 방식에 문제가 있는지 식생활에 문제가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아무튼 노력한 만큼 성과가 나지 않아 재미도 없어지고 저 자신도 포기의 유혹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지난 4월 11일 어느 모임에서 이 같은 애로사항을 이야기하며 몸짱 대회에 한번 나가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그때 누가 "선배님 그런 대회에 관심이 많으시면 머슬마니아 대회 고문 좀 맡아 주시죠." 하고 제안하였습니다. 박용후 대표였습니다. 지금 몸 만드는 일도 어려워 포기할까를 고민하고 있는데 몸짱 대회 고문이라니 당치도 않은 일이지만 저도 모르게 대답은 불쑥 "좋지" 하고 나왔습니다.

사실 취중에 나눈 대화라 그런 대화를 나누었는지도 가물가물해질 무렵 불쑥 전화가 한 통 걸려 왔습니다. "머슬 마니아 대회 편집국장입니다. 고문님 명함을 새기었으니 영문 성함이 맞는지 한번 봐 주십시오." 깜짝 놀랐습니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고문을 맡겠다고 한 일이 생각났습니다. 그러나 사실 어떤 조직인지, 무슨 역할을 하여야 하는지 알 수도 없어 무조건 고문을 맡을 수도 없는데 명함부터 새긴다니 속으로 은근히 걱정되었습니다. 그러나 약속을 한지라 승낙을 하였습니다.

금년 대회는 4월 28일, 29일 양일간에 걸쳐 <2017 머슬마니아 상반기 아시아 & 세계대회 선발전> 으로 거행될 예정이었습니다. 그래서 급히 명함이 필요하였던 것입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졸지에 머슬마니아 대회 고문이 되어 4월 29일 오후 5시 건국대학교 새천년관에서 거행된 2017 머슬마니아 대회 마지막 행사에 참석하였습니다. 오후 5시부터 7시까지 진행된 행사의 공식 명칭은 <서프라이즈 머슬마이나 2017 모델 & 미즈비키니 그랑프리전>이었습니다. 행사장에 도착하니 새천년관 입구는 장터를 방불케 하였습니다. 여기저기 수영복만 입은 선수들이 대회를 앞두고 근육을 키우느라 운동을 하고 있었고 몸을 구릿빛으로 보이기 위해 무언가를 열심히 바르고 있었습니다. 정말 난생처음 보는 생경한 풍경이었습니다.

"선배님 오셨습니까. 어리둥절하시지요. 남녀 선수들이 모두 수영복만 입고 다니니까 저도 처음에는 눈을 놓을 데가 없어 매우 어색하였습니다. 곧 익숙해지실 것입니다. 저기 오늘의 강력한 우승 후보인 선수가 오네요. 인사 나누시죠." 저보다 머리 하나가 더 큰 여자선수와 어정쩡한 악수를 하였습니다.

30분의 휴식시간이 끝나고 이날의 메인 행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모두들 강당인 새천년관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주최측에서 예우를 해주어 맨 앞자리에 자리를 하고 앉았습니다. 행사장은 사이키 조명과 비트 강한 음악 소리로 정신이 없었습니다. 드디어 시상이 시작되었습니다. 부문이 많아 다 알 수는 없었지만 사회자가 하는 '톨 부문'이라는 말과 '숏 부문'이라는 말은 정확하게 들렸습니다. 가만히 보니 톨은 키가 큰 선수들끼리, 숏은 상대적으로 작은 선수들끼리 시합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옆자리에 앉은 전년도 우승자에게 물어보니 남자는 175cm 여자는 165cm를 기준으로 나뉜다고 하였습니다.

건장미가 넘치는 남녀 선수들이 자신의 매력을 발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TV 중계로 보던 미스코리아 대회보다 훨씬 힘이 느껴지고 열정이 넘쳐났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어디에서 이렇게 많은 선수들이 모였을까 하는 것입니다. 관객들로 그 큰 강당을 꽉 채우고 있었습니다. 제가 모르는 세상이 이렇게 멋지게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대한민국 젊은이들이 자신의 매력적인 몸을 열심히 가꾸어 당당하게 표현하는 모습이 놀랍고 아름다웠습니다. 이런 대회의 모습도 알지 못한 채 그저 막연히 이런 대회에 출전해 보겠다고 한 저 자신이 너무도 한심해 보였습니다. 시험요강도 모른 채 시험 준비를 한 것이지요.

행사는 중반을 향해 달려나가고 있었습니다. 시상 부문이 많다 보니 시상자도 많이 필요하였습니다. 남녀 한 명씩 두 명이 시상자로 수고를 해오고 있었습니다. 가만히 보니 한 명은 후원 기업의 관계자이고 한 명은 지난 대회의 우승 선수들이었습니다. 저는 아름다운 선수들의 모습을 핸드폰에 담는 등 이미 여러 번 대회를 참관해본 사람처럼 대회의 분위기에 익숙해 지고 있었습니다. 그때 대회 관계자가 저에게 "고문님 시상 한번 수고해주시죠." 라고 뜻밖의 제안을 하였습니다. 저는 손을 절레절레 흔들며 말도 되지 않는다는 표시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잠시 후 장내 아나운서의 호명이 있었습니다. "다음 시상은 조근호 변호사님과 아무개가 수고해주시겠습니다."

얼떨결에 무대에 불려 나가 몇 명의 선수에게 트로피를 주고 수상한 선수 5명과 시상자 2명이 함께 기념 촬영까지 하였습니다. 모두 서로 양손을 잡고 손을 흔드는 방식으로 기념촬영이 진행되었습니다. 한 손은 다른 선수의 손을 잡으니 문제없었는데 다른 한 손이 문제였습니다. 저는 아무 생각 없이 손을 내리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시상을 하고 돌아오니 옆자리에 앉은 전년도 우승자가 조언을 해줍니다. "변호사님 나머지 손도 같이 하늘로 들어 흔들거나 브이자를 해주시면 더 좋았을 텐데요." '허허 시상도 다 요령이 있나 보네. 그러나 이미 지나간 일인데 어떻게 하겠어.'

계속 시상이 이어졌습니다. 관객의 즐거움을 위해 선수와 인터뷰가 있었습니다. 어느 선수에게 대회가 끝나고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저는 빵과 떡을 좋아하는데 몇 달간 이 대회를 준비하느라 못 먹었습니다. 대회가 끝나면 빵, 떡, 초콜릿 등을 마음껏 먹을 것입니다." 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자신의 욕망을 자제하고 노력하는 젊은이들의 모습에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읽어 볼 수 있었습니다.

많은 선수 중 특별한 선수 한 사람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패션모델 여자 톨 부문에 출전한 이연화 선수입니다. 몸매도 압도적이었지만 아나운서가 청각장애인라고 소개하여 주의 깊게 보게 되었습니다. 인터뷰에서 "2년 전부터 돌발성 난청으로 30%의 청력만 유지하고 있다"고 자신의 장애를 당당하게 소개하였습니다. 관객의 박수가 이어졌습니다. 저는 이런 선수가 우승하여야 스토리를 쓸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마음의 응원이 주효하였던지 해당 부분 우승을 하였습니다.

시상을 한두 종목 남겨 두고 있을 무렵 또다시 제 이름이 시상자로 호명이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시상 유경험자로 시상을 하였습니다. 시상 자세도 신경 쓰고 손도 번쩍 하늘을 향해 들었습니다. 시상대를 내려오며 이런 생각이 머리를 스쳤습니다. '꿈은 이상하게 이루어지네. 몸짱 대회의 무대를 밟아보려는 꿈이 선수로서가 아니라 시상자로 이루어질 줄이야.'

이렇게 대회는 끝이 났습니다. 정말 새로운 세상을 구경하였습니다. 집에 와서 인터넷을 찾아보니 머슬마니아 Musclemania 대회는 1991년 시작되어 22개국에서 개최되는 세계적인 보디빌딩 & 피트니스 대회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2009년 9월 머슬 마니아 대한민국 대회가 처음 시작되어 매년 두 번 대회를 개최하고 있었고, 국내 대회에서 우승한 선수들이 매년 6월 마이애미 세계대회와 11월 라스베가스 미국 대회에 출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2017 머슬마니아 대회에 대한 기사가 소위 조.중.동 메이저 신문에는 전혀 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스포츠 신문에서는 많이 다루어지고 있었지만 일간신문의 주목은 받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땀을 흘려 노력하고 있는 대회가 기성세대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대회를 후원한 기업들도 우리나라 주요 대기업보다는 벤처기업들이었습니다. 어쩌면 이 대회 자체가 벤처적 성격을 지니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조만간 이 대회가 기성세대의 주목을 받으며 크게 성장하리라는 예감이 들었습니다.

이 대회는 한마디로 '열정' 그 자체였습니다. 얼마 전 60대 여성 기업인이 하신 말씀이 기억납니다. "늙어가면서 남자의 열정이 식어가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이런 이유로 그분의 남편이 취미로 음반을 내겠다고 한 것을 열렬히 응원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이 대회를 참관하고 몸짱이 되려던 저의 꿈을 다시 살려내었습니다. 3년이고 5년이고 10년이고 될 때까지 해보렵니다. 저는 늙더라도 열정이 식지 않는 철부지로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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