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상현 문학 박사 / 뉴스티앤티
장상현 문학 박사 / 뉴스티앤티

인간은 공동체 환경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

그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내가 할 수 없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다른 사람은 할 수 있고. 반대로 남이 할 수 없는 일을 나는 할 수 있는 경우가 있다.

그러므로 인간은 공동체의 환경이 조성될 때 상부상조(相扶相助)하여 삶에 조화를 이루며 살아 갈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인간은 상부상조하면서 살다가 간혹 남을 다스리는 위치에 서게 되면 정중지와(井中之蛙)의 환경으로 회귀하려는 속성이 있다.

정중지와는 글자 그대로 우물 안의 개구리를 뜻한다. 우물 안의 개구리는 우물 속에 갖혀서 넓은 세상을 알지 못하고 자기의 생각에 속박되어 다른 세상을 이해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소유하고 있는 교훈적인 고사성어이기도 하다.

이 말은《장자(莊子)〈추수편(秋水篇)〉》에서 볼 수 있다.

황하강[黃河]의 하신(河神)인 하백(河伯)이 물의 흐름을 따라 처음으로 바다에 나왔다. 그는 북해에까지 가서 동해를 바라보면서, 그 끝이 없음에 놀라 탄식하였다. 그러자 북해(北海)의 해신(海神)인 약(若)이 이렇게 말했다.

 

우물 안에서 살고 있는 개구리에게 바다를 이야기해도 알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좁은 장소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井中不可以語於海者 拘於虛也)

또 여름 벌레에게 얼음을 말해도 알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여름만을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夏蟲不可以語於氷者 篤於時也)

따라서 식견이 좁은 사람에게 道(도)에 대해 말할 수 없는 것은 그들이 배운 바에 구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曲士不可以語於道 束於敎也)

그러나 당신은 지금 좁은 개울에서 나와 큰 바다를 바라보고 자기의 부족함을 알았기 때문에, 이제 더불어 큰 진리에 대하여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정중지와'는 '부지대해(不知大海)'와 함께 한 구(句)로 즉, '우물 안 개구리는 바다를 말해도 알지 못한다[井中之蛙 不知大海]'는 뜻으로 쓴다. '정와(井蛙)' 또는 '정저와(井底蛙)'라고도 한다.

금년(2018년)은 광복 제 73주년이면서 대한민국 정부수립의 7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인간이 70세에서 73세 정도가 되면 모든 경륜을 갖추고 거의 완성된 단계에 이른다.

공자도 70세를 ‘자기가 마음에 하고자 하는 바를 좇아도 법도(法度)를 넘지 않았다.’(從心所欲不踰矩)라고 했다. (*논어 위정편)

그렇다! 우리대한민국은 70세가 되도록 수많은 역경과 고난을 이기고 때로는 뼈를 깎는 아픔도 겪어가며 이제는 세계무대에서 당당하게 어깨를 겨루는 선진 국가가 되었다. 모든 분야에서 이른바 “기적(奇跡)”이라는 신화를 이룩한 셈이다. 경제발전이 그렇고 첨단기술, 체육 및 예술을 포함한 문화발전이 그렇다.

그런데 유독 정치(政治)와 안보(安保) 분야에서만 제자리에서 머뭇거리고 있는 듯하다. 그 이유는 우물 안의 개구리 정도의 사람들이 정치를 운운하기 때문이다. 상대방을 알려고 하지 않는 알량한 자기 고집에 묶여있기 때문이리라.

이번 8.15 경축사 중에 남북의 평화통일에 대해 우리가 주인이고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함에는 누구도 동의 할 것이다.

그러나 남북경협의 큰 그림은 동의는 하나 그 시기와 방법에 대해서는 좀 성급한듯하여 선뜻 동의하기가 주저된다. 국제적 공조에 반하고서는 목적을 이루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혹 나 홀로 주마가편(走馬加鞭)하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앞선다.

이 문제는 엄청난 재정, 노력을 국민을 담보로 고통분담을 극복하는 국민대동단결이 되어야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단순한 산술적 계산 보다는 신중함을 요하는 큰 그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 반대하는 국민의 의견도 헤아려보는 아량, 곧 우물을 벗어나 대해를 보는 충언이라고 생각하면 혹 답은 그 속에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제 우물에서 과감하게 튀어나와 더 넓고 빠른 방법에도 답이 있음을 알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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