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상현의 인문학 칼럼] 편복지역(蝙蝠之役)을 새겨본다
[장상현의 인문학 칼럼] 편복지역(蝙蝠之役)을 새겨본다
  • 장상현 칼럼니스트
  • 승인 2018.08.1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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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상현 문학 박사 / 뉴스티앤티
장상현 문학 박사 / 뉴스티앤티

내로남불이라고 했던가?

요즈음 사회는 이러한 자기위주의 철저한 사람이 제법 똑똑하다는 소리를 듣는 반 질서주의 사고(思考)가 점점 늘어나는 분위기다. 이에 편승하여 편복지역이란 말을 들여다 보자

蝙蝠(편복)은 박쥐를 표현한 한자어다(蝙:박쥐편, 蝠:박쥐복) 따라서 蝙蝠之役(편복지역)은 박쥐의 역할을 의미한다.

박쥐의 모습은 쥐처럼 생겼지만 앞다리와 뒷다리 사이에 막이 있어 날 수도 있다. 쥐면서도 새 역할을 할 수 있고, 새이면서 쥐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그야말로 편리한 대로 양쪽 편에 모두 낄 수 있는 게 박쥐인 것이다. 중국과 우리나라 일부에서는 의외로 다산(多産)과 복(福)을 상징하기도 했다.

한 예로서 조선시대에 여인들의 노리개에 박쥐형상이 있고, 경대(요즈음의 화장대)나 조선백자그림에 박쥐문양을 볼 수 있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반면 서양에선 박쥐를 마녀의 상징이나 악마의 대명사로 사용하고 있다. 왔다 갔다 하는 기회주의자의 상징으로 박쥐를 싫어한다. 그래서 박쥐의 구실이란 말이 생긴듯하다. 자기 이익만을 위해 이리 붙고 저리 붙는 줏대 없는 행동이나 교묘하게 변명을 하면서 상황과 조건에 따라 오가는 절개 없는 사람을 가리키기도 한다. 조선중기(숙종4년) 홍민종이 지은 순오지(旬五志)에 박쥐에 대한 우화(寓話)가 꽤 설득력이 있다.

새들끼리 모여 새들의 으뜸인 봉황을 축하하는 자리에 박쥐가 불참했다. 봉황이 박쥐를 불러다 ‘부하이면서 축하도 해주지 않고 거만하다’며 꾸짖었다. 박쥐는 오히려 ‘네 발 가진 짐승인데 새들 모임에 왜 가느냐!’고 도로 반박했다.

얼마 지나 이번엔 지상동물의 으뜸인 기린을 축수하는 잔치가 있었는데 온갖 짐승들이 다 모였어도 박쥐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기린이 박쥐를 불러다 ‘어찌 축하잔치에 안 올 수 있느냐고 꾸짖었다.’ 박쥐가 이번에는 ‘새인데 왜 짐승들의 잔치에 갈 필요가 있느냐!’고 하면서 날개를 펼쳐보였다.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한 박쥐는 날짐승과 길짐승 양쪽에서 미움을 받게 되어 어느 쪽에도 끼지 못하고 어두운 동굴 속에 숨어 지내게 되었다.

 

조선의 대학자 徐居正(서거정)은 ‘蝙蝠賦(편복부)’에서 박쥐를 이렇게 표현했다. ‘쥐 몸에 새 날개, 그 형상 기괴하다, 낮 아닌 밤에만 나다니니, 그 종적이 음침하고 창황하다(身鼠而翼鳥兮 何形質之怪奇而難狀也 不晝而卽夜兮 何蹤跡之暗昧而惝恍也) 그러면서 홀로 조용히 살 수 있는 것을 부러워하기도 했다.

최근 정치권이나 공무원, 사회전반에서 처세에 대한 흐름이 꼭 편복지역을 연상케 한다. 책임을 질 수 없다고 요리조리 발뺌을 하거나 말을 바꾸는 것을 대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요즈음 대기업을 옥죄이고 대기업 죽이기 하다가 경제가 밑바닥을 치니 규제개혁, 투자유치 등 대기업에 정책(일자리 창출 등)을 구걸한다는 비난이 일고, 탈 원전정책, 남북문제 등 많은 정책에 혼선이 오히려 국민을 헛갈리게 하는 형상이라고 국민들은 안타깝게 여기고 있다. 잘못을 알면서 솔직히 인정하지 않고 땜질 처방과 다른 사건을 확충호도해서 국민들의 관심의 집중을 피하려는 이장폐천(以掌蔽天: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린다)의 가련한 몸부림도 볼 수 있다.

 

얕은꾀와 천박한 핑계는 오히려 반감을 부채질하는 촉진제(促進劑)요 자기 몸을 망가뜨리는 독소(毒素)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중국의 사상가 노자는 도덕경을 통해 知足不辱 知止不殆(지족불욕 지지불태) 곧 만족 할 줄 알면 욕되지 않고(창피당하지 않고) 멈출 줄 알면 위태롭지 않다. 라고 이 시대 욕심과 자기과시가 만연된 세상을 일찍부터 경고하고 있다. 또한 한비자는 右手畵圓 左手畵方 不能兩成(우수화원 좌수화방 불능양성)이라했다 곧 오른 손으로 원을 그리고, 왼손으로 네모를 그린다면 둘 다 이룰 수 없다

 

국민들은 날카로운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 편복지역이나 이장폐천이 아닌 “만리 밖에 큰 바람이 불어와도 산은 움직이지 않고, 천년동안 고인 바닷물은 측량 할 수 없다.(萬里風吹山不動 千年水積海無量)” 는 옛 漢詩(한시) 한 구절을 인용하여 대한민국을 위한 뚜렷하고 올바른 처세를 기대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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