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래호 작가 / 뉴스티앤티
김래호 작가 / 뉴스티앤티

대체로 말이란 단순히 소리를 내는 것만은 아니다. 말에는 뜻이 있다. 그 말의 뜻이 애매하여 뚜렷하지 않다면 과연 말을 했다고 할 수 있을까? 아니면 안한 거나 마찬가지일까. 그래도 새끼 새의 소리와는 다르다고 한다면 거기에 구별이 있을까, 없을까? 결국 구별이 없다. 그리고 속인의 말에는 이런 예가 많다. - “장자” 내편 ‘제물론’ 제9절

사람의 뜻을 담은 말은 입말과 글말로 구분된다. 구어는 발음기관인 입을 통해, 문어는 뇌의 지문이라는 친필을 통해 각각 드러난다. 우리는 이런 두 가지 행위를 아울러서 언어활동을 한다. 물론 ‘새’들도 소리를 내고, 뜻을 주고받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르네 데카르트(1596-1650)는 동물의 움직임과 소리를 단순한 기계적인 동작이라고 생각했다. 그저 자동장치처럼 “각 기관이 작용하는 대로” 가동될 뿐이라는 것이다. 나아가 인간의 육체를 기계로 여길 수도 있지만 “남들을 위해 자신의 생각을 기록할 때 말 또는 다른 표시”를 사용하는 언어능력이 곧 동물과 인간의 근본적인 차이라고 주창했다.

언자유언言者有言- 이미 2,300여 년 전에 장자(BC. 370-300)는 ‘말’에 대해 적확하게규정하면서, 뜻을 분명하게 밝히라고 권면했다. 의미가 애매모호하면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와 다를 바가 없고, 세상에는 그렇게 지껄이고 다니는 무리가 많다고 한탄했다. 뜻을 숨기고 입에 발린 감언으로 진리와 사람을 속이고, 자신의 사리사욕만 채우는 소인배들이 넘쳐난다는 것이다.

6411번 버스라고 있습니다. 서울시 구로구 가로수 공원에서 출발해서 강남을 거쳐서 개포동 주공 2단지까지 대략 2시간 정도 걸리는 노선버스입니다. 내일 아침에도 이 버스는 새벽 4시 정각에 출발합니다. 이 버스에 타시는 분들은 새벽 3시에 일어나서 새벽 5시 반이면, 직장인 강남의 빌딩에 출근을 해야 하는 분들입니다. 지하철이 다니지 않는 시각이기 때문에 매일 이 버스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한 분이 어쩌다가 결근을 하면 누가 어디서 안 탔는지 모두가 다 알고 있습니다.

2012년 10월 21일- 노회찬(1956-2018)은 진보정의당 공동대표 수락연설을 통해 한버스를 소개하면서 이렇게 이어갔다.

이분들은 태어날 때부터 이름이 있었지만, 그 이름으로 불리지 않습니다. 그냥 아주머니입니다. 그냥 청소하는 미화원일 뿐입니다. 한 달에 85만원 받는 이분들이야말로 투명인간입니다. 존재하되, 그 존재를 우리가 느끼지 못하고 함께 살아가는 분들입니다.

세대와 계층, 정치적 이념을 떠나 그 누구나 금방 공감하는 감동적인 연설- 노회찬은 국회의원으로 이런 입말을 통해 많은 ‘투명인간’을 위로했고, 더불어 지지와 사랑을 한몸에 받았다. 여당과 야당이 첨예하게 맞서는 살벌한 정치판에서 그의 말은 동료 의원들조차 피식 웃음을 터뜨리게 했고, 시민들로 하여금 아! 저런 쟁점 때문에 대립하고 있구나 이해시켰던 것이다.

폐암수술을 하라고 했더니 위를 잘라버렸다! 대형마트가 자기네 상품 먼저 사고 동네 가게는 다음에 팔아주라는 격이다... 값싼 쇠고기 좀 달랬지 물 먹인 쇠고기 달라고 했느냐? 삼겹살 불판 하나를 50년 동안 써먹었으면 이제 갈아야 한다!

이제 더 이상 이런 풍자와 해학이 넘치는 촌철살인의 말을 듣게 어렵게 되었다. 문제의 본질과 국민들의 애로사항을 정확히 파악하고, 등허리나 머리 긁어주듯 시민을 대변했던 일상생활의 도인이자 군자였던 노회찬의원. 영전에 아래의 글을 헌사하고 싶다.

가까운 일상의 예를 들어가며 말을 하는데도 그 의미가 심원한 것이 가장 좋은 말이다. 누구나 간단하게 지킬 수 있는데도 효과가 광범한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군자는 일상에 보이는 것들을 말하지만 항상 도가 그 가운데 존재한다. - ”맹자“ 진심 하 제14편

2018년 7월 23일. 우리는 또 한분의 ‘말’의 대가를 잃었다. 바로 “광장”의 최인훈(1936-2018) 소설가로 선생은 우리 글말의 정화였다. 1960년 10월 ‘세대’지에 발표된 이 중편소설은 개인과 사회, 역사가 조화를 이룰 수 있기를 갈망한 고전이다. 6.25 한국전쟁을 전후해 이데올로기를 둘러싼 남북한의 이질감을 경험한 주인공 이명준은 결국 동지나해에 몸을 던진다. 여기에서 ‘광장’이 집단적이고 사회적인 삶을 의미한다면, 개인적이고 실존적인 삶이 ‘밀실’이다.

개인의 밀실과 광장이 맞뚫렸던 시절에, 사람은 속은 편했다. 광장만이 있고 밀실이 없었던 중들과 임금들의 시절에, 세상은 아무 일 없었다. 밀실과 광장이 갈라지던 날부터, 괴로움이 비롯했다. 그 속에 목숨을 묻고 싶은 광장을 끝내 찾지 못할 때,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 최인훈 전집 1 “광장” 81쪽(1976.문학과 지성사)

최인훈은 그 어떤 역사나 사회학자보다 한국사회를 꿰뚫어 보고, 성찰했으며, 앞날을 제시했다. 그는 말년에 한 언론사 인터뷰에서 주인공의 선택이 자살이냐, 도피냐는 지적은 작품 안에서 이해해야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이명준은 죽은 다음에도 최일선에서 바다 밑 보초를 서고 있는 셈”이라며, “백골이 되어서도, 죽은 후에도 조국을 사랑하고 철학을 사랑하고 있달까요.”

한국어의 글과 말은 이렇게 쓰고, 말하는 것이다. 그 ‘교과서’를 보여준 고 최인훈소설가와 노회찬의원. 부단히 ‘광장과 밀실’을 오가는 언중은 그것을 통해 소통과 화합, 상생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산단운련 사단의속- 구름 위 봉우리만 보인다 해서 산이 없는 것은 아니고, 시인의 말은 끊어져도 뜻은 이어지는 법이다. 진정 두 고인이 전하고 싶었던 ‘말’의 속내는 남은 자들이 찾고, 궁리하고, 새겨야 한다.

6411번 버스를 타고 광장으로 가야 한다. 함께 서로 어깨 기대며 너른 광장으로 말이다. 두 분의 여행은 진정 끝났지만 길은 열렸고, 우리 모두 그 길로 가는 일만 남은 것이다. 삼가 올곧고 웅숭깊은 두 어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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