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 더 주려고 자영업자 소득 깎는 것" vs "소상공인-노동자간 제로섬으로 봐선 안돼"

13일 오전 정부세종청사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사용자 측 위원들이 불참한 채 제14차 전원회의가 열리고 있다. 사용자위원들은 지난 11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긴급회의를 열고 내년도 최저임금 사업별 구분 적용이 무산된 데 안타까움을 내비치며 앞으로 최저임금위원회 회의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을 위한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가 사용자위원이 빠진 '반쪽짜리'로 진행되면서 14일을 넘길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사용자 측과 근로자 측이 최저임금 결정을 둘러싸고 대립 국면을 보임에 따라 일각에서는 최저임금 인상 추진으로 폐업 위기에 몰린 영세 자영업자 등 소상공인과 노동계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영세 사업주와 저임금 노동자의 고통은 뿌리 깊게 박힌 재벌 대기업 중심의 경제구조 때문에 파생된 것이라며 '을들의 갈등'으로 몰고 가서는 안되고 근본적으로 잘못된 구조를 개혁하고 다양한 정책을 추진해서 '상생'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 사용자위원 전원회의 불참…'결정 늦어지나'

13일 업계와 노동계 등에 따르면 사용자위원 9명은 이날 오후 시내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모여 전원회의 참석 여부 등을 논의하고 있다.

이미 사용자위원들은 업종별이나 5인 미만 사업장 차등화 방안이 수용되지 않자 전원회의 불참을 선언한 상태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자영업자 등 소상공인연합회의 반발이 거세다.

소상공인 측은 권순종·오세희 부회장은 더는 최저임금위원회 회의에 참석할 이유가 없다며 불참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소상공인연합회 관계자는 "최저임금 인상률과 상관없이 어떤 결정이 내려지더라도 수용하지 않기로 했다"며 "일부 영세 자영업자는 생존이 어려운 만큼 스스로 범법자가 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나머지 경영계 측 사용자위원 7명도 '동결' 입장을 충분히 전달했다며 전원회의에 참석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다.

익명을 요구한 사용자위원 측 한 관계자는 "우리의 입장은 지금껏 충분히 밝혀왔다"며 "어차피 우리의 입장이 수용되지 않을 텐데 굳이 회의에 참석하면 명분만 줄 뿐 득이 없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내년도 최저임금은 14일 이후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 최저임금은 공표 20일 전에 결정돼야 한다. 시기적으로는 이달 16일까지 확정돼야 한다.

내년도 최저임금 최초 요구안으로 1만790원을, 경영계는 7천530원(동결)을 각각 제시한 상태다. 업계와 노동계 안팎에선 8천원대에서 결정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 영세 업자·근로자 '갑론을박'…'갑'은 불구경

영세 자영업자 등 소상공인업계는 이번에 최저임금이 인상되면 생존의 위협마저 느낀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한 편의점 점주는 "'최저임금도 못주면 문 닫아라'는 여론이 있는 듯한데 편의점은 계약기간 전에 문을 닫으면 위약금을 물어야 해 문을 닫을 수도 없다"며 "제반 비용이 이처럼 오르면 내가 열심히 한다고 해서 나아질 수 있는게 아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올해 최저임금도 주휴수당이 붙으면 9천원으로 10%만 올라도 1만원"이라며 "편의점에서 시간당 1만원을 주고 사람을 쓸 수 있겠느냐"고 토로했다.

이 점주는 "최저임금을 인상한다는 것은 월급쟁이 월급을 더 주려고 자영업자 소득을 깎는 것과 같다"며 "소득주도 성장을 위해 최저임금을 인상한다고 하는데 소득이 준 자영업자들이 돈을 안 쓰면 결국 소득주도 성장은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주유소를 운영하는 한 사업주는 최저임금이 또 인상되면 사업을 계속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사업주는 "대부분 숙련된 기술이 필요 없는 데다 이제 막 들어와 잠시 일하는 인력을 8천원이 넘는 시급을 주며 쓸 형편이 안된다"고 씁쓸해했다.

그는 "우리 같은 영세 주유소들은 필요한 시간에만 문을 여는 방식으로 전환한 후 인원을 감축할 수밖에 없다"며 "장기적으로는 주유소업을 계속해야 할지도 고민 중"이라고 안타까워했다.

반면 아르바이트생 등 저임금 근로자들은 이런 사용자들의 토로에 '지나치다'는 반응을 보였다.

서울 한 가스충전소에서 일하는 김모(64)씨는 "개인사업장의 근로자는 사장과 협상도 어려워 주는 대로 받는 수밖에 없다"며 "지난해 최저임금이 오를 때도 월급이 올랐는데 이번에도 오를 것으로 보여 기쁘다"고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기대를 나타냈다.

 

인터넷에서도 최저임금과 관련한 게시글에서 댓글 논쟁이 펼쳐졌다.

편의점주들이 최저임금을 올리면 동시 휴점하겠다는 기사를 소개하는 한 게시글에는 "최저임금 올리기 전 편의점 사장들은 일은 하지 않고 아르바이트생만 돌려 수익을 내는 곳이 많았다. 근로기준법을 다 지키는 편의점은 한 곳도 본 적이 없다"고 성토하는 댓글이 달렸다.

한 네티즌은 "편의점이 포화상태인 것은 10년 전부터 거론됐는데 개업하기 쉽고 만만하니 경쟁력 분석도 없이 창업해놓고 이제 와서 정부 탓, 나라 탓이 심하다"고 지적했다.

반면 "최저임금 때문에 자영업자들이 다 죽어 나간다"고 옹호하는 댓글도 많았다.

한 네티즌은 "폐업하고 싶어도 본사에 위약금을 물어줘야 해서 폐업을 못 하고, 점주들이 직접 근무해도 일한 만큼의 최저임금도 가져가지 못하는 가게들이 허다하다"고 지적했다.

또 이번 최저임금 결정 논란 속에서 별다른 타격 없이 영세 자영업자와 저임금 근로자 갈등만 뒷짐 지고 지켜보는 건물주와 가맹점 본사, 대기업 등 이른바 "'갑(甲)'이 가장 문제"라고 탓하는 댓글도 적지 않았다.

 

◇ 노동계 "자영업·노동자, '제로섬' 관계 아니다…재벌대기업이 문제"

이번 최저임금 결정 과정을 지켜보면서 일각에서는 소상공인, 영세 자영업자와 저임금 노동자가 서로의 입장만 내세워 갈등이 커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소득주도 성장을 이루기 위해 무리하게 최저임금 인상안을 끌고 가려다 보니 이런 후유증이 생겼다고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정부가 2020년 최저임금 1만원을 달성하겠다는 공약을 지키려고 올해 급격히 인상하려다 보니 사회적인 갈등과 논쟁을 불러일으켰다"고 지적했다.

노동계와 업계 일각에서는 소상공인과 노동자 양측을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제로섬'의 관계로 봐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실제 소상공인의 어려움을 최저임금 인상만으로 보는 건 편향적인 시각이라는 지적도 있다.

싱인제 전국편의점가맹점협회 공동대표는 전날 기자회견에서 "최저임금뿐 아니라 편의점 브랜드의 근접 출점과 카드수수료로 인해 편의점주들이 죽어가고 있다"며 "카드수수료만 빼줘도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점주들도 살 길이 열린다"고 호소했다.

노동계 한 관계자는 "소상공인이 겪는 고충은 근본적으로 재벌 대기업 중심의 경제구조의 모순에서 나오는 것"이라며 "이를 해결하는 게 소상공인과 저임금 노동자가 상생하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고계현 소비자주권시민회의 사무총장은 "영세 자영업자도 대형마트와 SSM 등 대기업의 '을'이고, 이들에 의해 고용된 단기직 근로자들도 '을'"이라며 "최저임금 상향만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니 을끼리 이해관계가 상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저임금위에서 노동계를 대변하는 한국노총 추천 근로자위원 5명은 최근 최저임금위에 제출한 '영세 자영업자·소상공인 보호와 지원 제도 개선 건의서'에서 프랜차이즈 본사에 대한 가맹점 수수료를 현 25∼35%의 절반 수준으로 인하하고 상가 임대료를 물가인상률 이하로 제한하는 것을 포함해 소상공인을 지원하는 구체적인 정책을 제안했다.

이 건의서에는 납품단가 현실화를 위해 도급업체가 대기업이면 수급 기업들이 '납품단가조정협의체'를 구성할 수 있게 하는 등 대기업에 대한 소상공인의 협상력을 강화하는 방안도 담겼다.

전문가들은 대기업 중심 경제구조의 개혁으로 소상공인·영세 자영업자의 수익이 개선되고 이들이 채용한 노동자의 임금도 인상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소상공인·영세 자영업자의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결국은 '공정경제'의 실현"이라며 "공정경제가 실현돼야 최저임금 1만원 사회를 넘어 '최저임금 1만 원을 줄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최저임금 외에 다양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주문도 나온다.

고 사무총장은 "최저임금 상향에 따른 후유증이 약자인 '을'에게 고스란히 돌아가지 않도록 정부가 다양한 정책적 배려를 해야 한다"며 "서로가 이해하고 조금씩 양보할 수 있도록 '을들의 대타협' 장을 정부가 마련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최저임금 인상만으로 저소득층의 소득을 올리거나 소득분배 이중 구조 격차를 줄이려는 발상은 큰 후유증을 남긴다는 점을 정부도 알았을 것"이라며 "정부가 사회임금 인상 등 여러 실효성 있는 대책을 강구하면서 최저임금도 적정한 수준으로 설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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