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준원 박사 / 뉴스티앤티
서준원 박사 / 뉴스티앤티

독일과 일본은 2차 세계대전 패전 직후 미국식 민주주의 접목을 강요당했다. 패전국 독일과 일본은 승전국의 요청을 거부하기 어려운 처지인지라 자신의 입장과 달리 강요당한 것이다. 강요의 배경은 전체주의와 독재에 물든 패전국 국민의 머릿속 부터 새롭게 정화시켜야 된다는 논리다. 경제적 지원 못지 않게 민주주의와 공동체에 대한 교육과 재교육이 전후 패전국 재건의 요체였다.

세월이 흘러 독일은 반세기 이상 흔들리지 않는 정치체제를 유지하고 있고, 급기야 통일까지 일궈냈다. 지금도 나찌즘에 대한 상흔이 깊고 말 못할 열등감을 갖고 있다. 독일인은 나찌즘을 언급하면 지금도 엄청 예민하게 반응한다. 나찌즘의 역사는 자신들의 역사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만큼 지난 역사의 오점을 가슴 속에 켜켜이 쌓아두고 있다.

일본은 어떤가. 일본은 독일보다 덜 체계적인 민주주의 접목 과정을 겼었다. 한국전쟁 탓에 엄청난 부를 축적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던 일본이다. 왠일인지 미국은 독일과 비교하면 일본에 대해선 관대했다. 미국의 역사가 겨우 200년 정도인지라, 일본의 전통과 문화에 대한 동경심이 작용했을지도 모른다. 일본의 정치는 계파정치의 진본이다. 보스에 대한 충성심을 전제로 함께 뭉치는 성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보스정치(Boss Politics)는 마피아처럼 조폭정치와 별반 다를게 없는 형태다. 무조건 충성을 기반으로 자신의 안위를 조직에 맡기는 형태다. 우리 정치사에서도 이와 유사한 형태가 이른바 3김(金) 시대라고 볼 수 있다. 상도동계와 동교동계는 보스의 거주지역을 본 딴 계파 명칭이다. JP의 청구동은 계파 정치에서 좀 빗겨난 형태였지만, 그래도 일정 영역을 차지했다.

작금은 보스가 아닌 리더가 필요한 시대다. 보스정치는 무조건 ‘하라’는 ‘상명하달식 정치가 통하는 구조다. 반면에 리더의 정치는 ‘함께 하자’는 비교적 민주성과 소통의지의 특성을 지닌다. 민주주의의 가치와 접목은 각 국 마다 다르게 전개되고 있다. 우리의 정당은 민주주의의 본질을 반영하기엔 아직도 후진성이 잔존해 있다. 여차하면 당명부터 고치고 그 나물에 그 밥 격인 뻔한 손질에 급급해왔다. 기존의 여야 모두가 그렇게 정당의 생명력을 유지해 왔다.

정당과 당명의 영멸을 살펴보면 어지간한 정치학자도 기억해내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하다. 현실이 이럴진 데, 정당의 가치와 노선은 물론 정체성과 신뢰를 판단하기가 참 어렵다. 비교적 명확한 현상은 영호남을 기반으로 정당의 근간과 세력이 출몰한다는 점이다. 가끔 충청도 ‘따로 살림’ 형태로 합세한 적도 있지만, 양대 세력권의 결집력에 항상 뒤지는 형국이다. 자주 바뀐다고 새로운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이제 국민은 다 안다. 우리 정당만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자유한국당이 비상대책위를 꾸리기 위한 준비위 체제로 전환한 모양이다. 연일 비대위원장을 거론하면서 자신들의 입맛에 맞추려는 인사들을 주워 담고 있는 것 같다. 평소의 지론과 가치관이 다른 인사들을 비대위원장으로 모셔보겠다는 발상 자체가 기이하다. 정치쇼에 불과한 현상으로 치부하고 싶지만, 해도 너무 하고 국민의 눈높이마저 망각한 채 너무 멀리 가 있다.

조선조의 사색당파는 실리보다는 명분싸움이 치열했다. 당시의 사상풍조와 봉건 정치체제의 영향도 있겠지만 결국은 나라 발전의 걸림돌로 작동했다. 자유한국당 내에서 연일 다투는 쟁점도 계파간의 갈등으로만 내보여진다. 그렇다고 계파 형태로 뚜렷하게 뭉쳐지는 현상도 아닌 것 같다. 계파를 대표하는 인물도 안 보이고, 그저 표류하는 난파선 꼴이다.

명분도 실리도 없는 덧없는 다툼, 친박 대 비박의 대결과 내홍이 처절하게 진행 중이다. 계파를 떠나 함께 힘을 모아도 어려운 판국에 서로에게 손가락질과 거친 언사만 쏟아낸다. 혹자는 이런 현상을 백가쟁명으로 표현하지만, 기실 백가쟁명은 명분과 실리를 위한 다툼이다. 자유한국당의 이런 현실에서 무슨 명분과 실리가 주어질까. 참 답답하다.

아직도 우리 정치에서 특정인을 내세운 계파가 판을 친다는 점에서 정당문화의 후진성이 안타깝다. 여권에서도 부엉이모임 운운하다가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고 있다. 모두가 특정인의 후광과 인연을 앞세워 자신의 이익을 도모해보려는 점에서 여야가 계파정치의 늪에 빠진 격이다.

‘계파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면 자유한국당은 살아날 수 없다. 계파 청산을 위해서도 더 큰 차원의 가치와 노선부터 정리하여, 정당으로서의 정체성을 정립해야 한다. 아직도 보수를 표방한다면, 새로운 보수의 갈 길을 정하는 것이 우선이다. 정치의 주체가 인간인지라 정치인들이 행하는 서로가 맘에 맞는 사람끼리의 어울림 마저 부정하고 싶지 않다. 다만, 정치는 국민을 향한 열정과 진심이다. 가치와 정책에 동조하는 자연스런 회합과 모임을 누가 탓할 것인가. 자신의 정치생명 연장만을 염두에 둔 패거리 정치는 사멸되어야 마땅하다.

특정한 가치와 정책을 통해서 다져진 계파라면 나무랄 것도 아니다. 허나 보스나 다름없는 특정인을 내세운 계파라는 점에서 아직도 우리 정당은 보스정치의 틀에서 못 벗어난 것 같다. 친박의 주체는 영어의 몸이다. 이전의 친이계의 보스도 영어의 몸이다. 현실이 이럴진 데 아직도 친박-비박 타령이다. 참 딱한 노릇이다. 정당이 굳건해야 나라 정치도 건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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