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래호 작가 / 뉴스티앤티
김래호 작가 / 뉴스티앤티

산골짝 푸른 시내를 첩첩 돌이 가로막아 / 가득히 고인 물이 막혀서 돌아드네 / 긴 삽 들고 일어나서 흙무더기를 터뜨리니 / 천둥처럼 소리치며 쏜살 같이 흘러가누나 / 이 어찌 통쾌한 일 아니겠는가? - 정약용(1762-1836) 한시 ‘불역쾌재행’ 제 2수

꼭 256년 전 이즈음의 한여름- 소나기에 계곡 물이 불어나자, 다산은 삽 한 자루를 들고 집을 나선다. 갑작스레 자갈과 흙덩이가 쌓여 물길이 막혀 연못처럼 된 개천- 아래로 쭉쭉 흘러가야 할 물줄기가 제자리에서 맴돌고 있다. 답답한 마음에 돌무더기와 흙을 치우자 물살이 천둥치며 콸콸콸 흘러 내려간다. 정약용은 그 광경을 보고 십 년 묵은 체증이 풀리는 듯 마음이 후련해짐을 느낀다.

당시 17세기 조선 사회를 “조그마한 것 하나 병들지 않은 것이 없다!”며 한탄한 다산 정약용- 그는 혼란과 모순의 사회를 개혁하고자 백방으로 애썼지만 때때로 당파적 모함에 몰려 귀양길에 오르길 반복했다. 20수의 연작시 ‘불역쾌재행’은 기록상으로는 34살 되던 해인 1796년 작품이지만 이미 몇 차례 유배와 좌천을 겪어왔었다. 여기에 1784년에는 경기도 암행어사의 명을 받고 인천지방을 순찰한 바 비참한 백성들의 삶과 탐관오리들의 부패를 목격했었다.

갈밭 마을 젊은 아낙 곡소리 구슬프다 / 현문 향해 울부짖다 하늘에 호소하네 / 구실 면제 안 해줌은 있을 수 있다지만 / 남근을 잘랐단 말 듣도 보도 못 하였소 / 시아버진 세상 뜨고 아이는 갓난앤데 / 삼대의 이름이 군적에 실렸구나 - ‘애절양’ 부분

다산의 이 시는 ‘삼정(전정.군정.환정)의 문란’이 극에 달한 조선 후기 사회의 단면을 가감 없이 묘사하고 있다. 전라도 강진 근처 노진에 사는 어느 백성이 아들을 낳았는데 관리가 사흘 만에 찾아와 군적에 올리고 세금 대신 소를 잡아갔다. 그러자 그는 방에 뛰어 들어가 “이것 때문에 곤액을 당한다.”며 칼을 뽑아 자신의 남근을 잘라버렸다. 아내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그것을 들고 관가로 갔으나 문지기가 가로막아 하소연조차 하지 못했다. 이들은 이미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군포도 꼬박꼬박 내고 있던 터였다.

정약용은 39살 되던 해에 전남 강진으로 유배돼 16년 동안 지내며 “목민심서” 48권을 완성했다. ‘목민’이란 백성을 기른다는 뜻이고, ‘심서’는 실행하고 싶은 ‘마음’을 적은 책이라는 뜻이다. 다산은 이렇게 자신의 사회 개혁안을 수십 권 책으로 묶으면서 빠진 ‘감상과 사연’을 2,500여 한시로 남겼다.

다산은 ‘시를 쓰려면 높은 뜻을 품어야 한다.“고 적시했다. 정신이나 마음이 비굴하면 맑고 고상한 언어를 억지로 쓴다 해도 시가 될 수 없다는 이야기이다. 말재주나 손끝의 기교에서 나온 시는 그저 말장난에 불과하다. 오랜 학문의 탁마와 인격의 연마에서 물 흐르듯이 씌여진 다산의 한시들- 단순히 자신만의 감상이나 독백에 빠지지 않고, 민중의 고통과 아픔을 나누는 정약용의 시는 지금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허준(1539-1615)의 “동의보감”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통즉불통通卽不痛’이다. 팔과 다리 그 사지와 2개의 눈 등 모두 9개의 구멍 합쳐 13개로 구성된 사람의 몸- 그것이 서로 막힘 없이 통해야 건강한 인간이다. 장기별로 단절과 구획 지워졌지만 그 기관들이 유기적으로 잘 통하게끔 하는 비책이 바로 “동의보감”인 것이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 이런 사람은 이번에는 타인과 사회, 나아가 자연과 유쾌하고 상쾌, 통쾌하게 통해야 걱정 근심이 없는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사회는 다산선생의 ‘삽 한 자루’가 절실하다. 반목과 불신의 정치, 물꼬를 트지 못하고 침체의 늪에 빠진 경제, 여러 이즘에 편이 나뉘어진 사회와 문화계... 역사는 진보, 발전하는 것인가? 260여 년 전 그 백성들의 심정을 다산의 시에서 읽어 내보는 장마철이다.

 

저작권자 © 뉴스티앤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