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준원 박사 / 뉴스티앤티
서준원 박사 / 뉴스티앤티

충청에 기반을 둔 자민련이 몰락의 길로 접어들 때다. 자민련에 남아있자니 향후 총선에서 희망이 안 보인다고 판단했던 부류가 TK(경북-대구)기반의 한나라당으로 우르르 입당했다. 정당이 어려울 때 발생하는 대탈출은 책임회피 현상이다. 자기만 살겠다는 비겁함이다.

그런데 이들에게 한나라당 어느 의원도 식사라도 같이하자는 제안이 없었단다. 스스로 걸어 들어온 사람에게 냉정하게 대하고 한 줌의 호의마저 없었다고 한다. 한나라당이 경상도 당임을 확인하고서야 너무 서러워서 탈당이 엄청 후회되더란다. 정당 내의 기득권 세력과 계파 간의 폐쇄성이 돋보이는 사례다.

정당 내 기득권 세력의 위세가 등등했기에 충청권 입당 인사가 눈에 곱게 들어올 리가 없을 터였다. 탈당 파고를 막아보려고 노 정객은 모 인사에게 자신이 아끼던 골프채까지 건네면서 탈당을 만류했다. 골프채를 받아든 인사는 바로 다음 날에 팩스 한 장으로 탈당을 통보했다.

참 고얀 사람! 당을 나갈 거면 골프채라도 되돌려주고 가던지, 팩스 한 장으로 훅하고 떠나다니. 훗날 이 인사는 호된 곤욕을 치렀고, 급기야 영어의 몸이 되었다. 오래전의 일이지만, 정치권의 이런 양태는 아직도 변하지 않은 것 같다.

정치의 주체는 사람이다. 반듯한 사람이 정치를 해야 정치가 반듯해진다. 하지만 정치에 입문하겠다는 사람들을 체계적으로 다듬어주거나 올바른 가치와 철학을 심어주는 시스템이 없다. 정치 행위를 배우거나 습득하기위한 체계적인 과정도 없다. 그래서 줄을 잘 서고 먼저 경험한 정치인들을 보고 따라 배운다.

정치를 잘못 배우면 그릇된 정치를 행한다. 그래서 우리 정치권은 늘 시끄럽고 의원들은 자신만을 위해 행동한다. 이런 현상은 정치적으로 살아남기위한 방편이겠지만, 그런 사람에겐 국민이 눈에 보일 리가 없다.

국회는 늘 국민으로부터 외면받았고, 정치인은 항상 조롱거리의 대명사였다. 여야는 서로 다투고 싸우는 것이 자신들의 책무인 양 행동한다. 선진화법도 이현령비현령이 되어버렸다. 민의의 전당으로 불리는 국회에서 타협과 조정 및 상대에 대한 인내와 관용의 정치가 실종된 지 오래다. 당내 구성원들도 온통 권력 쟁취에 눈이 벌겋다. 권력 쟁취의 목표는 준비된 정책을 펼칠 수 있는 기회임에도, 이들은 권력 나눠 먹기에 급급한 것이 작금의 실태다. 국민의 선택도 정당에 치중한 탓에 정책에 대해선 관심마저 인색하다. 그래서 뽑아 놓고도 늘 후회한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젠틀맨으로 불리는 영국 의원들. 젠틀맨은 젠트리(gentry)에서 유래했다. 영국의 젠트리는 각 지역에서 의회로 입성한 중산층 출신의 인사들을 칭한다. 귀족과 상류층 출신 아니라 권위나 기품이 취약했기에 의회 활동도 처음엔 어색했다. 그러나 정치를 배워가면서 입법 과정에 열심히 했던 이들은 겸손과 화해를 통해 대화와 조정에 나섰다.

우리처럼 돈을 손에 쥐고 권력과 명예마저 움켜쥐려고 지역을 기반으로 철밥통 정치를 행하는 부류와 다르다. 지금도 영국 의회는 작고 좁은 공간에서 긴 의자에 옹기종기 앉아서 치열한 토론을 펼친다. 우리처럼 의원 개인용 책상과 의자도 없다. 그러니 우리처럼 한가하게 졸거나 핸드폰으로 이상한 화면을 보는 등 딴짓을 할 여유가 없다. 우리 국회는 의원들이 하는 일에 비해 너무 권위주의적이고 누리는 특권이 넘쳐나서 지나치게 사치스럽다. 국회 건물은 물론 내부도 사회주의국가처럼 여겨진다는 어느 외국인 정치학자의 일갈이 생각난다. 권위를 내보이기 위해 의도적으로 치장된 모습을 비꼰 것이다.

자유한국당이 연일 시끄럽다. 통째로 무너진 처지에 친박, 비박, 친홍, 비홍, 탄핵을 동조했다가 복당한 복당파. 무슨 계파가 이리 복잡한지 서로에게 연신 삿대질만 한다. 정당의 계파는 특정한 가치와 소신의 차이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될 수 있다. 큰 틀에서의 정강과 정책에 뜻을 같이하지만, 디테일한 면에선 의견을 달리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경우는 특정 인물에 동조하는 세력이 계파를 이룬다는 점에서 걱정스럽다. 마치 조선조의 사색당파가 21세기에도 인물 중심 계파로 등장했고, 이들의 다툼과 이견은 자신들의 이익만 반영하는 후진 정치 수준이다.

자유한국당은 숨만 할딱거리는 처지에 "네가 나가라!", "너는 안 된다!" 서로가 연일 공방전 중이다. 하긴, 몸과 맘이 타당에 가 있는 비례의원들도 버젓이 활동하는 비정상적인 국회다. 현대 정당은 대중정당(catch all party)을 표방한다. 표를 위한 선택이자 지지층 확산을 위한 방책이다. 그러다 보니, 이념과 가치 및 철학의 기반이 매우 취약하다. 정당은 가치와 철학이 근간을 이뤄야 추동력이 생긴다. 정당의 품격은 구성원들의 인품과 인격 및 배려와 진정성에서 고양된다. 쏟아내는 말이 거칠어지면 정당 이미지도 험악해진다.

서독은 정부 수립 직후에 통일정책을 놓고 여야가 밤낮을 가리지 않고 2주간에 걸쳐 토론했다. 우리처럼 한풀이용 다툼이 아니라 진지한 토론이었다. 자유한국당은 연일 말싸움만 할 것이 아니라, 이견과 차이 그리고 서로 간의 오해와 원한 등이 쏟아지는 백가쟁명을 펼쳐야 한다. 이념과 노선 수정, 가치와 철학 그리고 사태 해결을 위한 책임소재까지 낱낱이 드러내야 한다.

손에 쥔 것부터 먼저 내려놓는 자가 승자가 될 것이다. 한쪽 날개가 무너진 이 나라는 다시 날아오를 수 있는 한쪽 날개를 되찾아야 한다. 우파진영의 대통합과 화해와 용서 그리고 이를 헤쳐 나갈 용기와 합심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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