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태 박사 / 뉴스티앤티
이한태 박사 / 뉴스티앤티

 우리는 항상 출출할 때나 지루할 때마다 냉장고문을 연다. 꼭 냉장고에 먹을 게 없더라도 없는 걸 알고서도 하루에 수도 없이 냉장고 문을 열어댄다. 냉장실 문을 열었다가 냉동실 문을 열어대고 끊임없이 냉장고를 괴롭힌다. 저녁시간 빈집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텔레비전을 켜고 그다음으로 냉장고 문을 여는 것이다. 게다가 밖에서 가지고 오는 음식물은 종류여하를 불문하고 모조리 냉장고에 넣기 일쑤다. 거의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는 일과다. 우리의 믿음직한 친구이자 인생의 동반자, 냉장고.....

냉장고는 현대문명의 혜택이 주는 중요한 필수품 중에 하나이다. 이런 편리한 냉장고로 인해 우리는 매우 소중한 것을 잃어가고 있다. 냉장고가 우리 등에 서슬 퍼런 칼을 들이대고 있다. 한 가정의 존립기반이라고 할 수 있는 가정의 경제와 가족의 건강을 표 없이 좀먹고 있다.

당장 냉장고를 열어봐도 낭비되고 있는 먹거리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냉장고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대형마트에 가서 필요이상의 물건들을 사고 이를 쟁여놓는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냉장고에 넣어둔 물건들을 망각한 채 또 다시 대형마트주변을 서성인다. 얼마 전 한 조사에 의하면 일반적으로 우리나라 가정에서 냉장고에 저장되어있는 음식물만 있어도 한 달은 버틸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냉장고의 과잉저장으로 인해 추가로 발생하는 전기요금과 버려지는 음식쓰레기, 그로인한 쓰레기 처리비용까지 고려하면 냉장고와 대형마트의 연결고리로 인해 잃게 되는 경제적인 이익은 생각보다 크다.

이정도 되면 냉장고라는 문명의 이기(利器)는 인간의 욕심과 허영의 상징이라 할 만하다. 그로인해 자연의 파괴와 국제적 차원의 자원재분배의 불균형을 가져온다. 냉장고에 의해 당장 소비할 필요 없는 동식물을 죽여 냉동 보관하게 만들고, 이로 인해 생태계가 파괴된다. 어떤 나라에서는 냉장고에 물건이 남아돌아 썩어가고 있는데 지구 한편에서는 기아로 목숨을 잃어가고 있다. 저마다 자기 것을 챙겨 혼자만 잘 먹고 살려는 삭막한 세상으로 변질되게 만든다. 이런 현상의 밑바탕에는 세계 인구의 5% 밖에 안되는 미국인들이 세계 자원의 4분의 1을 소비하도록 하는 냉장고문화가 있다.

냉장고의 폐해는 이뿐만이 아니다. 냉장고에 물건을 쟁여놓고 손쉽게 이를 소비하는 습성은 언제든지 먹을 수 있기 때문에 필요이상의 칼로리를 섭취하게 되어 비만이라는 심각한 성인병을 유발한다. 일본 정부의 발표에 의하면 냉장고의 확산은 날씬하고 건강, 장수하기로 소문난 일본 남성의 비만율을 지난 20년간 40%나 증가 시키는데 크게 일조했으며, 이는 남 의 나라 얘기가 아니다. , 인간은 냉장고로 인해 덜 움직이게 되고, 제철에 나는 채소와 과일을 먹는 권리를 잃게 된다. 냉장고에 보관된 채소는 뿌리가 잘려진 상태지만 완전히 죽은 생명이 아니다. 냉장고 안에서도 끊임없이 축적해둔 영양을 환원시켜서 생존투쟁을 하는 생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보관이 오래될수록 영양은 반감될 수밖에 없고, 이를 섭취하는 우리의 영향에 불균형을 가져온다.

또한 냉장고에서 번식하고 있는 많은 유해균들이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물론 냉장고의 위생관리를 철저히 한다면 문제될 것이 없지만 냉장고는 그 특성상 청소하기가 상당히 까다롭고 더구나 살균청소는 더욱 그러하다. 요사이 냉장고 청소 전문업체가 생겨나고 있는 데 이런 현상이 이를 방증해준다. 따라서 이러한 냉장고 청소의 어려움과 냉장고에 대한 신앙에 가까운 믿음이 냉장고를 식중독균과 같은 유해균이 번식하는 오염의 장소로 만들고 있다.

냉장고는 수십년에 걸쳐 수없이 진화해 왔다. 그러나 전기제품을 만드는 대기업에서는 똑똑한 냉장고를 만들려 하지 않는다. 냉장고의 내용물을 수시로 확인하는 시스템을 만들 수도 있고, 살균처리가 가능한 제품을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대기업에서 쉽게 돈을 벌려고 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스마트폰처럼 똑똑한 전기제품의 개발은 앞은 다투지만 냉장고는 용량과 디자인에만 집착한 멍청한 것들만 양산하고 있다.

냉장고, 없애고 부수고 싶지만 때려 죽여도 그렇게는 못하겠다. 냉장고는 절대적 필요악이다. 합리적으로 사용하는 지혜와 절제만 있으면 얼마든지 좋은 가족이 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인간의 잘못된 욕망의 배출구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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