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준원 박사 / 뉴스티앤티
서준원 박사 / 뉴스티앤티

미국은 세계 최강국으로서 외교정책 역시 견고한 시스템에서 형성된다.

돌이켜 보면, 미국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20세기 초부터 외교적인 고립주의(불개입 원칙) 또는 중립주의를 선택했다. 그러다가 일본의 공격으로 엉겁결에 2차대전에 참가했다. 2차대전 직후부터 승전국으로 범세계적인 범주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초강국으로 출현했다. 미국과 소련이 비슷한 시기에 강대국으로 발돋움한 것이다. 따지고 보면, 미국의 초강대국 역할은 겨우 반세기가 넘었다.

2차대전 이후 미국에게 절실했던 것은 수많은 국가를 상대하는 외교정책의 수립과 추진이었다. 타국에 대한 정보도 부족했고 외교적 수완도 거칠었다. 결국은 외교정책을 위한 각종 연구소와 싱크탱크가 연이어 설립되고 학문적-실용적 연구와 분석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지금은 세계적인 이슈와 국지적 사안까지 세밀하게 다룰 수 있는 정보와 분석력이 독보적인 수준에 와 있다. 그간에 축적된 경험을 통해 외교에 대한 자신감과 자긍심도 대단하다.

미소 간에 핵무장해제 회담 때의 일이다. 소련은 각종 정보망과 스파이를 통해서 얻고자 하는 정보가 미국 측 회담 테이블에 그대로 공개되는 것에 깜짝 놀랐다고 한다. 이 시점에서 북미회담 포기 선언과 함께 미국의 외교력과 회담에 임하는 트럼프의 전형적인 스타일이 돋보인다.

반면에 사회주의 국가들의 외교력은 음험하고 둔탁하면서 속내를 잘 내비치지 않는다. 반면에 오랫동안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의 외교력은 신사적이고 매끄럽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협상과 회담에 임하는 각국의 외교 스타일을 꿰뚫고 있어야 국익 제고와 국가 위상을 끌어 올릴 수 있는 시대다.

작금에 이르러 한반도를 둘러싼 치열한 외교전쟁이 한창이다. 우리의 현주소는 어디인가. 북한의 현실은 어떠한가.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일본의 외교전쟁은 어느 수준인가. 치밀한 분석과 대응책이 마련되어야 한반도의 미래가 보장된다. 판문점 회담 직후, 우리의 국가정보를 총괄하는 수장이 눈물을 훔치는 장면이 나왔다. 차가운 이성을 챙겨도 부족한 판인데, 눈물을 보이고 있으니 얼마나 감성적으로 회담에 나섰는지 극적으로 보여주는 일면이다. 감격과 감성은 때와 장소에 따라 다르다.

문재인 대통령이 부랴부랴 미국으로 달려갔다. 30여 분의 회담 시간이 주어졌지만 20여 분 만에 끝났다. 아마 미국의 입장에선 별로 할 말이 없다는 의미이자 진지하게 상대를 접하지 않겠다는 묵시적 의도가 드러난다. 외교적인 결례 여부를 떠나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문 대통령은 미국 도착부터 국가 원수급에 턱없이 못 미치는 어설픈 대접으로 시작되었다. 차관보 대리급이 일국의 대통령을 맞이했다. 역대 우리 대통령으로서도 처음 있는 일이다.

회담 직후 기자회견에서는 미국의 노골적인 불만이 섞인 제스처가 쏟아졌다. 트럼프는 문 대통령의 답변은 들을 필요가 없다고 일갈했다. 풀어 말하면, 항상 하는 얘기가 똑같아서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는 의미다. 이때부터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그간에 정부가 미국과 무슨 대화를 했길래 저런 모습이 연출되는지 궁금했다.

그 해답은 트럼프의 회담 포기 선언에서 드러났다. 귀국하자마자 날라 온 회담 포기 소식에 문 대통령이 받은 충격은 엄청 컸을 것이다. 미국 체류 시엔 전혀 낌새를 차리지 못했던 것 같다. 이게 사실이라면 우리 외교팀은 정신차려야 한다. 아마 미국이 그간에 수차례에 걸쳐 이와 유사한 시그널 즉 불만 표명을 했을 것이다. 우리 정보기관과 외교팀은 물론 청와대의 아마추어 외교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난 셈이다.

판문점 파티에서 희희낙락하면서 남북이 함께 어울릴 때, 너무 일찍 샴페인을 터트리는 것 같아 불안했던 참이다. 한반도의 미래가 온통 장밋빛으로 물들여지는 착각에 빠질 정도로 자화자찬이 풍성했다. 국민도 함께 환호했고 기대감에 부풀었다. 필자 역시 차제에 남북한이 함께 변하자고 강조했다. 그 이후의 상황을 보자. 뭐가 그리 급한지, 대북방송 확성기도 서둘러 해체했다. 풍계리 폭파쇼에 우리 기자들이 애걸복걸하면서 겨우 참석했다. 남북고위급회담은 북한의 일방적인 통보에 할 말을 잃은 상태다. 마치 평화가 온 것처럼 들떠 있다가 찬물 세례를 맞은 격이다.

외교전쟁은 냉정하고 살벌하다. 문 대통령의 미북회담 중재자 역할이 아슬아슬하다. 북한에겐 진정한 중재자로, 미국에겐 영원한 우방처럼 행동했다. 트럼프에겐 이런 모습이 못마땅했을 것이다. 청와대가 미국에게 전달한 말과 북한의 태도가 왜 다르냐는 트럼프의 불만은 우리 정부를 신뢰하지 못하겠다는 통보나 다름없다. 북한이 우리의 진정한 훈수를 들어줄 리가 없다. 북한은 늘 그래왔고 그런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자신들이 궁지에 몰릴수록 강한 톤의 발언을 쏟아낸다. 북한 최선희의 강성 발언만이 회담 포기 선언의 빌미가 아니라고 본다. 차제에 아예 북한의 기를 꺾어놓겠다는 트럼프의 결단이 작동한 것이다.

시진핑이 김정은과 무슨 말을 주고받았는지도 우리 정부가 잘 모르는 것 같다. 남북한이 진정으로 신뢰한다면 쌍방이 정보를 교환할 터인데, 시진핑과 만남 이후 김정은의 태도가 변하면서 발언도 거칠어졌다. 북한이 알아서 미국과 담판 지을 테니 우리는 빠져있으라는 암시를 주고 있는데도, 세부적인 사안까지 넘나들고 싶어 하는 청와대의 행위가 못마땅했을 것이다. 이 대목에선 미국도 우리에게 동일한 인식을 갖고 있는 것 같다.

북한이 주저 없이 언제 어디서나 어느 때라도 만나겠다고 밝혔다. 이런 언급은 그냥 나온 게 아니다. 김정은은 이미 루비콘강을 건넜기 때문에 되돌아갈 수 없다. 이런 상황을 미국과 북한은 서로 잘 알고 있다. 북한으로부터 비핵화와 핵 폐기에 관한 세부적인 방침이 미국에 전달되지 않은 것 같다. 이 문제가 선결되지 않으면 미국은 회담장을 박차고 나올 것이다.

한반도의 운명이 안갯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이 중대한 시점에 청와대는 정신 바짝차리고 냉정하게 처신해야 한다. 감상적-이상주의적 관점으로 낙관론에서 허우적거릴 때가 아니다. 외교는 차디찬 얼음보다 더 차갑다. 빙하기 녹기 전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 정부가 긴 호흡으로 차분하게 대처해주길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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