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래호 작가 / 뉴스티앤티
김래호 작가 / 뉴스티앤티

이름과 자신 중에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 자신과 재물 중에 어느 것이 더 대단한가? 얻는 것과 잃는 것 중에 어느 것이 병이 되는가? 이 때문에 너무 아끼면 크게 허비되고, 지나치게 쌓아 놓으면 반드시 크게 잃는다. 만족할 줄 알면 치욕을 당하지 않고, 멈출 줄 알면 위태로움을 당하지 않아서 영원할 수 있다. - 노자 “도덕경” 제 44장

어느덧 여름철에 접어들었다. 새해맞이 한다고 산과 바다로 들꾀고, 봄꽃 피고 진다 떠든 지가 어제 같은데 벌써 입하와 소만도 넘어 망종이 눈앞이다. 24절기상 아홉 번째인 망종芒種은 벼처럼 까끄라기가 있는 곡식을 심는 때라는 뜻으로 바로 모내기를 하는 시기이다. 땅과 산에서 나는 물산이 경제의 전부였을 때 이즈음이면 가정학습이 주어졌었다. 1주일 남짓 임시방학인 셈인데 ‘부지깽이도 덤벙인다’는 농번기에 일손을 도우라는 차원이다.

소백산맥의 민주지산이 지척인 충북 영동- 초등학교 시절은 물론 유년의 기억이 늘 뚜렷한 고향이다. 나는 친할아버지 슬하에서 초등학교 2학년까지 지내다 도회지로 나왔다. 사실 아무 걱정 없던 시절이었지만 “천자문”과 “동몽선습”을 읽고, 붓글씨를 익히는 ‘공부’는 참 견디기 어려웠다. 천자 명자 조부께서는 먹감나무 경상 한쪽에 회초리를 올려놓고 해찰할 때면 탁탁 치셨다. 죽비 맞은 듯 눈을 뜨면 돋보기 너머로 몰풍스럽게 노려보시던 그 눈길과 맞닥뜨리기 일쑤였다.

그런 길고 긴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면 식솔과 일꾼들은 들과 산으로 농사일과 개간에 눈코 뜰 사이가 없었다. 그때부터 할아버지 또한 ‘감독’하시느라 손자들 공부에 소홀해지기 마련이었는데 그렇다고 마냥 놀게 두셨겠는가? 아이들은 소에게 풀을 뜯기는 일 따위의 깜냥 임무가 부여되었던 것이다. 아무튼 선새벽 모를 찌고, 해 뜰 무렵 시작된 모내기는 달이 떠야 내일을 기약했는데 손자들은 논둑에서 못줄을 연신 옮겨 꽂았었다.

“할배야! 저 달이 작아지면 저기 살던 사람들은 어데로 가는 기가?” 기실 그랬다. 안 보이던 초승달이 점차 왼 배가 불러와 보름달이 되었다가, 다시 오른편부터 빠지면서 그믐달이 되는 과정이 진정 궁금했던 것이다. 당시 이 물음에 어떤 답을 하셨는지 정작 기억은 없다. 하지만 연암 박지원의 “답창애”의 훈장처럼 응대하지는 않았으리라.

동네 학동이 “천자문”을 배우다가 훈장에게 여쭌다. “아니 하늘이 푸르기만 한데 왜 검다고 하는지요?” “이 녀석이 뭐라고 하는 게야!” 천지현황- 하늘 천은 검고, 땅 지는 누르다 씌여 있지 않는가? 꼬마 생각에는 아무리 생각해도 하늘은 검지 않고 푸르기만 했던 것이다. 그래서 읽기가 싫어졌고 게으름 피우다 훈장에게 야단맞자 물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줄 알고 그냥 외우란 말이다.”

하기야 대여섯 살 아이에게 해는 우주의 유일한 광원으로 붙박이인데 지구가 스스로 돌면서 밤과 낮 하루를 만들고, 크게 한 바퀴 돌아 한 해를 만든다. 달이 지구를 한 바퀴 돌면 한 달이다. ...... 이렇게 장황하게 석명한들 알아차리겠는가? 하루에 50분씩 늦게 뜨는 달은 서쪽부터 서서히 오르며 만월이 되었다가 다시 줄어들고, 회두리에 새벽녘 동편 하늘에 잠시 떴다가 사라져 없어진다. 이런 설명도 마찬가지이리라.

부다익과 칭물평시- 생각건대 ‘해’는 동사 ‘하다’의 명령어로 태양이 뜨면 사람들은 무엇이든 일을 해야만 한다는 뜻으로 새겨진다. ‘달’은 동사 ‘달다’의 명사형으로 하루의 잘잘못을 밤에 달아보라고 뜨는 것이라 여겨진다. 이런 낮과 밤의 하루가 바로 ‘오늘’인데 다석 류영모(1890-1981) 선생은 “오! 늘 감탄하며 하루를 뜻 깊게 지내라.“고 권유하셨다. 또한 ”물질의 법칙은 유한을 유한하게 만드는 것이고, 정신의 법칙은 무한을 무한하게 만드는 것이다.“고 규정하셨다.

킨포크, 라곰, 오컴, 휘게, 케렌시아... 이런 단어들을 한 번쯤 눈여겨보았다면 ‘좁고, 낮으며 느리게 사는 삶’에 조금은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다. 2011년 미국 포틀랜드 한 지역에 살던 화가나 작가, 사진가 등이 계간지 ‘킨포크 라이프kinfolk life’를 통해 자신들의 삶을 기록했다. 자연과 더불어 이웃들과 소박하게 사는 즐겁고 안락한 일상- 이런 운동을 스웨덴에서는 라곰, 프랑스에서는 오캄, 덴마크에서는 휘게, 스페인에서는 케렌시아로 각각 표현되면서 호응을 얻기 시작했다. 여기에 일본은 2011년 동일본대지진을 겪으면서 미니멀리스트 운동으로 확산되었다.

사사키 후미오는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2015년)는 책을 통해서 ‘최소한의 물건으로 최대한의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갖고 있는 물건을 죄다 버려라!’고 적시했다. 이는 1976년에 출판된 법정스님의 “무소유‘의 실천이며, 다석선생의 ’무한의 정신‘ 그 삶을 좇는 일이기도 하다. 우리는 웰빙을 부르짖다 힐링을 거쳐 이제 ’소확행‘ 시대를 맞았다. 일상에서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는 일- 미래의 행복을 위해 지금, 오늘을 무조건 희생하라는 초기산업사회의 성공신화에 반기를 든 가치관이다. 사사키 후미오는 미니멀즘에는 정답이 없다며 ”자신에게 진정 필요한 물건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진정한 미니멀리스트라고 단정하고 있다.

이미 이런 충고나 권면은 이미 2천 5백여 년 전에 노장자가 일러준 내용의 토끼의 뿔이자 뱀의 다리이다. 고전은 그래서 평생 곁에 두고 읽어야 할 경전이며, 인생길의 친구 도반이다. 이 글을 다 쓸 즈음에 영국의 문호 D.H 로렌스(1885-1930)가 슬그머니 자신의 책 “귀향”의 한 페이지를 펼쳐 보인다. 그쪽에는 이렇게 기술되어 있다.

말씀은 이미 대부분 다 말해졌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지 진정으로 주의를 기울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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