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래호 작가의 밑줄 이야기] 연꽃 피는 소리 들리는 5월
[김래호 작가의 밑줄 이야기] 연꽃 피는 소리 들리는 5월
  • 김래호 작가
  • 승인 2018.05.1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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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래호 작가 / 뉴스티앤티
김래호 작가 / 뉴스티앤티

 진흙 묻은 소가 / 빗줄기 몇 가닥에 목을 씻고 지나간다 // 번개 짐승이 / 달려들어 소의 뿔을 물어뜯는다 / 깜깜한 지상 / 연꽃 피는 소리 들린다 - 이성선(1941-2001) 시 '뿔을 물어뜯다' 전문

산수유, 매화, 개나리, 벚꽃, 진달래, 목련... 이제 봄꽃들 죄다 지고 여름꽃들이 필 차례다. 꽃들의 왕인 모란이 입하절기 전후해 만개하니 봄꽃의 종결자이다. 그 화왕의 행차 뒤를 하화들이 신하들처럼 줄 잇는 것이다. 그런데 지천의 수많은 꽃들을 보았지만 이 시에서와 같이 소리를 내며 피는 '꽃'은 시쳇말로 '듣보잡'이다.

듣도 보지도 못한 소리를 내지르며 피는 꽃- 하지만 시인은 연꽃 피는 소리가 들린다고 노래한다. 도대체 어떤 소리인가? 두런두런 나지막한가? 대성통곡하듯 큰 소리인가? 또한 번개가 짐승이 되어 소의 뿔을 물어뜯는다고 태연히 읊조린다. 어떻게 번쩍하는 빛이 호랑이처럼 소를 물어버린다 말인가? 무슨 이 가당치 않은 망발인가? 그러나 고려 때 혜심 선사의 설법을 골똘히 천착해보면 숨은 뜻을 얼마간 이해할 수도 있으리라.

깨달은 자는 빈손에 호미를 쥐고 머리로 걸어가며, 물소를 타고서 사람이 다리 위를 지나는데, 다리가 흐르고 물은 흐르지 않는 이치를 알게 될 것이다.

더욱 점입가경 어렵기만 하다. 그렇다. 교외별전. 불립문자. 직지인심. 견성성불- 깨달음은 진묘하여 '선'의 경지에 근접해야 비로소 어렴풋이나마 그 실체가 파악된다. 그렇다면 그 선정은 어떤 상태이며, 어느 경지인가? 인도의 불교를 전파하러 동쪽 중국으로 온 달마선사는 제자와의 문답에서 이렇게 석명했다.

선은 어지러운 마음이 일어나지 않음을 말한다. 생각도 없고 움직임도 없는 것이 선정禪定이다. 말을 비우고 생각을 깨끗이 하여 마음으로 깨달아 고요 속에 침잠하여, 갈 때나 머물 때나 앉았거나 누웠거나 언제나 고요하여 흐트러짐이 없는 까닭에 선정이라 한다. - "남천축국보리달마선사관문"

한마디로 선은 저마다 마음속의 생각을 걷어내는 공부이다. 소위 성리학에서 말하는 '사단칠정'의 진원지 그 마음을 텅 비워 본래의 나와 만나는 순간인 것이다. 때문에 구구하게 설명하는 사변적인 길로는 도달할 수 없다. 그래도 사람은 말을 떠나서는 살 수가 없고, 말을 통해야만 속내를 전달할 수밖에 없지 않는가? 그래서 자다가 봉창 뚜드리는 듯 말도 안 되는 '말'이 모인 선시가 어렵다. 그렇다면 내친김에 '마음'의 실체는 무엇인가? 선종의 6대조종 혜능의 마음을 만나보자.

혜능은 일자무식으로 중국의 남쪽 오랑캐땅의 나뭇꾼이었다. 어느 날 혜능은 나무를 산 집주인의 불경 읽는 소리에 홀어머니를 남겨두고, 5조 흥인대사의 동선사에서 방아찧기와 장작패기를 하게 된다. 그런데 흥인대사의 수제자인 신수의 오도송을 접하고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몸은 깨달음의 나무 같고 / 마음은 밝은 거울 바탕 같은 것 / 틈틈이 부지런히 닦아야 하리 / 때 묻고 먼지 않지 않도록" 해서 다음과 같은 오도송을 구술로 전했다.

깨달음은 본래 나무가 아니요 / 마음 거울 또한 틀 위에 놓인 것이 아니다. / 본래 한 물건도 없는데 / 어디에 때가 묻고 먼지가 마음이 앉는단 말인가

본래무일물하처야진애- 이 10자가 마음의 진여 그 본래의 실상이다. 흥인대사는 법통을 잇는 의발을 혜능에게 전해주며 조계산으로 피신시켜 법을 일으켰다. 하나의 물건조차 부정해버린 그 자리에서 선학의 황금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러나 달마가 동쪽으로 오지도 않은 시대에 '선'을 알고 있었던 시인이 있었으니 바로 중국 남조의 도연명(365-427)이다.

산 기운은 저물녘이 되어 더욱 고운데 / 나는 새들이 더불어 돌아간다 / 이 가운데에 참된 뜻이 있으니 / 말로 밝히려다 이미 말을 잃었네 - '음주' 제5수 부분

망언- 노자는 "도는 그것을 도라고 말할 수 있다면 진정한 도가 아니다." 라고 단정했고, 장자는 "무릇 대도는 말로 일컬어지지 않는다."고 정언했다. 낮 동안 활발하게 날던 새들도 저녁이 되어 쉴 곳으로 돌아가니 나 도연명도 자연에 순응하며 한뉘를 마치리라 다짐하는 것이다. 말을 잊고, 마음을 비운 그 곳에서 진정 그 무엇과 하나 되는 몰아지경의 새로운 길이 열리는 것인가?

이달 5월 22일은 불기 2562년 부처님 오신 날이다. 석가부처님은 이 세상에서 '사람'으로는 유일무이하게 '진리를 깨달은 자'이다. 아시기성불 여시당성불- 석가는 자신을 이미 깨친 부처'라고 적시하고, '중생들은 마땅히 깨달을 부처'라고 법문하셨다. 우리는 모두는 부처이다. 묵언과 망언- 그 선의 경지에서 과연 무엇을 깨칠 것인가?

- 타성에 젖은 일상생활에서 뒤통수를 얻어맞는 듯한 선시나 법어를 읽어보는 5월이었으면 좋겠다. 귀 틔워 진흙탕 같은 세상 깨끗해지라며 피는 연꽃의 천둥 울림 들을 수 있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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