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복 극작가, 칼럼니스트 / 뉴스티앤티
김용복 극작가, 칼럼니스트 / 뉴스티앤티

"좌절과 위기의 대전에서 자녀교육 걱정 없고, 취업걱정 없고, 장사걱정 없는 미세먼지로부터 안전한 쾌적한 도시는 물론 다른 지역에 비해 뒤처졌던 도시에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선도하는 도시로 만들겠다. 그리고 제가 우리 대전을 웃음과 행복이 가득한 희망의 도시로 만들겠다"

 

인고의 8년 동안 펄펄 끓는 용광로 속에서 달구고 달궈진 인물 박성효.

그는 용광로 속에서 달궈지는 동안 결심했던 심정을 포효(咆哮)라도 하듯 "낙선의 실패에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아직도 저를 믿고 기대하는 수많은 시민들과 이웃들, 가족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장애인인 아들은 부족하지만 부끄럽지 않고, 언제까지나 대전에서 우리 가족과 이웃과 함께 살아가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장애인 아들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다.

 

필자는 장애 아들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는 박성효 후보의 모습을 보며

‘아, 저 눈물이 두 다리를 나라에 바친 내 친구는 물론, 수많은 장애인들에게 큰 힘을 실어주는 눈물이 되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럴 것이다. 오랫동안 가까이서 그를 지켜본 필자로서 그는 입으로 뱉은 말이나 결심한 바는 반드시 실행으로 옮기는 성격의 소유자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나 인고의 세월을 겪으며 다짐 했을까? 행사장에 초청 받아 가면 현역이 아니기에 축사의 기회는 마지막에 차례가 오거나 아예 차례도 오지 않는다. 그는 그런 과정을 수 없이 겪었다. 어쩌다 시청(市廳)에라도 가게 되면 장애우 아들 어깨를 다독여 주며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아야만 했다.

 

생각해 보라, 용광로.

높은 온도로 광석을 녹여 철, 구리, 납 따위의 금속을 제련하는 세로형의 가마이다. 제철용으로는 대형의 것이 쓰이며 고로(高爐)라고 하는데, 가마의 위쪽에서 원료 광석, 융제(融劑), 연료를 투입하고 아래쪽의 날개에서 열풍을 보내어 융해하고 제련하여 조금속(粗金屬) 또는 피(鈹)라고 불리는 중간 제품을 다시 만들어 낸다. 그러나 그는 용광로보다 더 따가운 대전시민들의 눈초리를 받으며 8년이나 견뎌 냈던 것이다. 그리고 전혀 다른 모습의 박성효로 재탄생 된 것이다.

 

혹자는 부부사이가 안 좋아 별거중이라는 둥, 부하직원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간섭이 심하다는 둥, 심하게는 암에 걸려 시장이 되더라도 제대로 수행을 못할 것이라는 루머도 필자에게까지 와서 걱정하듯 전달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개소식에 참석한 사람들은 보았을 것이다. 부인이 참석한 손님들 일일이 찾아다니며 고맙다고 손 잡아주는 모습을, 그리고 말하는 소리에 색(色)을 입히고 방점까지 찍어가며 그동안의 결심을 하소연하듯 포효하는 박후보의 모습을.

 

박후보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미국에서 이완구 전 총리가 날아왔다. 그리고 말문을 열었다.

"적어도 미래 대전을 누구에게 맡겨야 하느냐? 앞으로 남은 짧은 지방선거 기간 동안 어떻게 하면 박성효를 대전시장 만드는 게 후회하지 않는 선택인지 시민들을 설득시키느냐가 중요하다"고.

 

박성효 그는 해낼 것이다.

그는 대전을 떠난 적이 없고, 이리저리 당을 옮기려고 좌고우면한 적도 없는 확실한 신념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대전을 위해 태어난 인물, 장애인 아들을 생각하며 장애인들을 위해 온갖 정성을 다 할 인물. 그리고 남의 험담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그가 권선택 전 시장의 사람들을 이리저리 내치지 않고 그대로 적재적소에 두고 인재 활용할 인물, 대전시 사무관부터 시장까지 했으며10년 가까이 인고의 세월을 보내고 아픔을 아는 사람, 대전을 발전시킬 구상을 갖고 있으며 시행착오하지 않을 사람, 대전시장은 예행연습이 필요 없는 분이 맡아야 한다고 이 전 총리도 말했다.

 

기대가 크다. 8년 동안 인고의 세월을 보낸 그가 지난 4월 17일 한밭 공설운동장 체육관에서 있었던 ‘중앙위원회 한마음 필승 전진 대회’에서 무릎 꿇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아 아~6월 13일.

새로운 대전이 태어나는 기념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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