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농 김상현 전 의원이 18일 별세했다. 여야를 넘나들며 막힌 정국을 속 시원하게 뚫어내던 낭만의 정치인 김 전 의원의 사망에 여야 정치권이 숙연해하는 분위기다.
김 전 의원은 DJ를 맹목적으로 옹립하는 분위기의 민주당 내에서 유일하게 자신의 계보를 형성한 정치인이었다. 1997년 괌 대한항공 추락 사고로 사망한 4선의 신기하 전 의원과 여수에서 3선을 지낸 신순범 전 의원이 대표적인 김 전 의원 계보다. 뿐만 아니라 YS의 문민정부 하에서 실세 사무총장으로 이름을 날린 강삼재 전 의원을 발탁하여 정계에 입문시킨 사람도 바로 김 전 의원이다.
권노갑, 한화갑, 김옥두, 이훈평, 윤철상, 최재승 전 의원 등으로 대표되는 동교동계의 가신들이 DJ에게 무조건적인 충성을 했던 것과 달리 김 전 의원은 DJ와 동지적 관계를 형성한 유일한 정치인이었다. 1985년 상도동계와 동교동계가 주축이 되어 만든 민주화추진협의회(약칭 민추협)를 결성할 당시 미국에 망명 중이던 DJ를 대신해 공동의장 권한대행을 역임한 것만 봐도 김 전 의원의 위상을 실감할 수 있다.
실제 김 전 의원은 1987년 13대 대선을 앞두고 '4자 필승론'을 주창하며 단일화 약속을 깨고 통일민주당을 탈당해 평화민주당을 창당한 DJ를 따라가지 않았다. "명분이 없다"는 이유였다. 13대 대선에서 DJ를 돕지 않고, YS를 도운 김 전 의원은 그 때부터 동교동계에서 질시의 대상이 된다.
신경림 시인이 내편 네 편이 없다는 의미로 김 전 의원에게 無境(무경)이라는 아호를 지어준 것만 봐도 故人(고인)의 성품을 짐작할 만하다.
학벌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재력이 풍부한 것도 아닌 김 전 의원이 6선 의원을 지낼 수 있던 배경에는 사람을 끌어들이는 매력과 부지런함이었다.
민주평화당 박지원(4선, 전남 목포) 의원은 1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후농 김상현 형님께서 선종하셨다. 담배를 지극히 싫어하신 DJ(김대중 전 대통령) 앞에서도 박상천 대표와 담배를 피우신 유이한 우리 모두의 형님이셨다. DJ를 형님이라 부르시는 분도 이용희 전 국회부의장과 함께 유이하셨다"는 글을 남기며 故人(고인)을 추억했다.
유족으로 부인과 3남 1녀를 둔 김 전 의원은 3남인 더불어민주당 김영호(초선, 서울 서대문을) 의원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 2세 정치인의 길을 걷고 있다.